고의서산책(455)- <五洲衍文長箋散稿>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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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55)- <五洲衍文長箋散稿>①
  • 승인 2010.06.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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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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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紙가 될 뻔한 ‘不朽의 名作’

고의서 산책(455)- <五洲衍文長箋散稿>①

破紙가 될 뻔한 ‘不朽의 名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가운데 한 분으로 五洲 李圭景(1788~1856)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정조대 朴齊家, 柳得恭, 徐理修와 함께 이른바 문예부흥을 주도한 4명의 檢書官 가운데 한 분인 雅亭 李德懋(1741~1793)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인 光葵도 역시 검서관을 역임(1759-1817)하여 규장각에서 근무하였다. 하지만 서얼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듯 당대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내내 빛을 보지 못하다가 근세에 이르러서야 우연한 기회에 그가 남긴 백과전서 <五洲衍文長箋散稿>가 발견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오주연문장전산고>란 어떤 책인가? 이 책은 필사본으로 이루어진 60권 60책 분량의 방대한 저술로 백과사전에 실려있는 다음의 간단한 내용만으로도 대단한 학문적 성과가 담겨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원래 60책보다 더 巨帙이던 것으로 추정되나 고물장수의 손에 파지로 사용되다가 우연히 길을 가던 崔南善의 눈에 띄어 구제된 60책만이 현재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주제 별로는 역사 · 경학 · 천문 · 지리 · 불교 · 도교 · 西學 · 禮制 · 災異 · 문학 · 음악 · 음운 · 병법 · 광업 · 화폐 등 뿐만 아니라 광물 · 초목 · 어충 · 의학 · 농업 등 한의약 관련 항목을 포괄하여 총 1,417 항목에 달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들 주제에 대한 개별 항목은 모두 하나의 논설 형태로 이루어진辨證說이라는 형식을 취하여 고증학적인 방법으로 해설하였다.

원래 60책보다 巨帙 추정… 崔南善, 고물장수 손에서 발견
총 1,417 항목 각각 논설 형태 구성… 고증학적 방법 해설


1800년대에 접어들어, 그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사회 내부에 축적된 학문적 성과와 청나라 고증학 영향을 받아들여 <林園經濟志>나 <林下筆記>와 같은 백과전서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이 책은 이러한 학풍을 대표할 만한 역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규장각 검서관 출신인 조부 이덕무가 지은 <靑莊館全書>로 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규경은 서문에서 “名物度數의 학문이 性名義理之學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가히 폐할 수 없다”고 하여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적고 있다. 실제 그는 대물림한 家學에 근원을 두고 일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채, 오직 초야에 묻혀 지내면서 실증적인 학문 연구에 전념하며 고증하고 분별하는 일에 골몰하여 祖父 2대에 걸친 실학의 골격을 체계화하였다.

보통 저자의 학문적 특징은 博學과 사상적 개방성에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저자는 유교의 13經에 대해 모두 주석을 달 정도로 성리학에 해박하였지만, 불교와 도교는 물론이고 나아가 西學에 대해서까지도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였다고 말한다. 예컨대, 釋典總說에서는 “유가 · 도가 · 석가를 3교로 일컬어 세발솥(鼎足)처럼 동등하게 여겨온 지가 오래되었다”고 하였으며, 壽辱辨證說에서는 老子를 聖人의 반열로서 평가하였다.

특히 地球辨證說 ․ 用氣辨證說 ․ 斥邪敎辨證說 등의 내용을 통해 서구 학설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볼 수 있는데, 서양으로부터 도래한 발전된 과학기술은 수용하되, 洋人이 가져온 천주교는 邪敎이니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의 입장은 東道西器論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그의 의학관 역시 동양의학의 이론적 토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약물이나 개별 지식에 있어서는 철저히 분석하고 변증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다. 이규경의 삶과 한의약학과 관련한 변증설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이어진다.

안상우/ 한구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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