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轉女爲男이라니!’에 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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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轉女爲男이라니!’에 答함
  • 승인 2010.06.1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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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기

박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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肉眼과 慧眼
박석기 원장이 김기왕 부산대 한의전 교수의 ‘轉女爲男이라니!’를 읽고, 그에 대한 답글을 보내왔다. ‘轉女爲男’를 둘러싼 논쟁은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한의학 현대화 과정에서 한 번쯤 치열하게 논의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두 시각은 분명 한의학 정체성에서 한의학 연구방법론에 이르기까지 대척점을 이루기 때문이다.

헌데 이 문제가 그동안 공론화된 적이 거의 없다. 눈에 보이지 않게 내연만 지속됐다. 그 바람에 뒷담화만 무성하고 소통을 방해하고 학문적 시각차가 차이가 아니라 백안시하는 풍조만 낳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격렬한 토론과 논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대척점 중간에 서있는 의견은 또한 무엇인지 간파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숨기는 게 능사가 아니다. 시대 흐름에 맞춰 지상 토론을 유도하기 위해 박석기 원장의 글을 전재한다. -편집자 주

논쟁- 肉眼과 慧眼
‘轉女爲男이라니!’에 答함 

조선 開祖 이성계와 그의 王師인 무학대사 관련 얘기를 보면, 이성계 눈에는 무학대사가 돼지로 보이는데 비해 무학대사에게는 이성계가 부처님으로 보인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분자생물학 입장에서 보면 轉女爲男이나 轉男爲女는 마치 신화처럼 들릴 수도 있다. 서양의 과학법칙은 실험에 의하여 언제나 동일한 결과를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 세계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하이젠베르크의 ‘不確定性 原理’를 보라. 원자나 소립자와 같은 미시적 세계에서는 관찰자 입장에 의하여 실험결과가 변한다. 즉 관찰자 마음에 따라 실험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마음이 에너지라서 크든 작든 실험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작용은 모두 에너지 현상이라는 것이다.

본래 서양의학에서 정신이나 마음은 에너지나 물질현상이 아니므로 성직자나 심리학자의 대화에 의존해 정신질환을 치료해 왔다. 그러던 것이 마음이나 정신이 물질이라는 전제 없이 정신과에서 투약으로 치료하는 상황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황제내경에 정신이 오장에 귀속하여 뇌에서 종합하는 것으로 명확히 표현하였다(腦爲髓之海*영추*海論) (頭者精明之府*소문*脈要精微論). 과연 어느 쪽이 과학적인가?

“성염색체도 특정 주파수의 氣를 받으면 돌연변이가 올 수 있다. 陽의 주파수 영역대가 크면 양(男)으로, 陰의 주파수 영역대가 크면 음(女)으로 공명이 일어날 것이다”


인간이나 남녀의 특성을 나타내는 게놈 역시 물질(DNA)의 집합체이고, 이 물질은 에너지의 凝聚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DNA도 에너지의 凝聚에 의해 형성된 물질이기 때문에 특정 주파수의 에너지를 받으면(간섭과 공명)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러시아에서 달걀에 오리알의 파장을 전사하여 달걀을 부화시켰더니 물갈퀴 달린 병아리가 부화된 예가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성염색체도 특정 주파수의 에너지를 받으면 얼마든지 돌연변이가 올 수 있다. 陽의 주파수 영역대가 크면 양(男)으로 공명이 일어나고 陰의 주파수 영역대가 크면 음(女)으로 공명이 일어날 것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기본물질은 원자(atom)다. 즉 남녀는 물론 존재하는 모든 것은 atom의 연속체라는 것이다(성리학에서 이를 氣一分殊라 함). 하나의 atom은 17개의 에너지 입자를 가지고 있다(힉스입자 포함). 쿼크가 6개 렙톤이 6개 매개입자가 5개(힉스입자 포함, 단 힉스입자를 찾을 수 있는가는 별개로 함). 이 atom의 에너지 구조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 인간이다. 한의학적 관점에서 인체의 에너지 구조는 상부에 6경(3음3양- 쿼크 3쌍, 6개) 하부에 6경(3음3양- 렙톤 3쌍, 6개) 그리고 5臟(매개입자 5개, 힉스입자 포함), 이것이 天人相參이다.

한의학은 에너지를 本으로 하는 학문이다. 어찌 저차원의 분자생물학적 입장에서만 보려고 하는가? 한의학 치료에서 一鍼 二藥이라 함은 치료순서에서 氣 조절이 먼저라는 얘기고, 본초학에서 氣味論이라고 하여 氣를 앞세우는 것도 치료의 우선순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한의학도는 신장의 기능 가운데 腎主納氣를 어떤 의미로 공부하였는가. 현대의학 입장에서 호흡은 폐 기능 외에 다른 4臟이 대신하거나 깊게 간여할 수 없다. 옛 선인들이 왜 그러한 표현을 하였을까? 임상에서 관찰해 보면 폐로 호흡(흉식호흡)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이고 복식호흡(腎主納氣) 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鍼刺로 榮衛氣의 흐름을 조절하고 氣海(하단전)를 열면 환자는 금방 몸이 상쾌함을 느끼면서 기운이 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신의 기운이 폐호흡에 관여하여 기의 승강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다. 선조들의 정확한 신 기능 관찰이다. 더 명확한 예를 들어보자. 고단위 항생제를 처방해도 1주일 이상 걸리는 급성 편도선염이나 인통의 경우 한 쪽이 심하게 통증이 있을 때 반대 쪽 수폐경 수양명경 수궐음경 수소양경의 井穴 중에서 氣가 가장 항진된 경혈 2개를 찿아서 사혈하면 즉각 통증이 가벼워지고 아무리 심한 통증도이라도 추가로 1~2회 사혈하면 모두 완치된다. 氣가 항진된 穴을 찾는데 8초면 충분하고 치료 또한 간편하다. 단지 교육을 통해서 氣가 항진된 穴을 찾는 氣感法을 가르치면 된다. 환자들이 침 치료를 선호하는 것은 이와 같은 한의학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의학 치료에서 一鍼 二藥이라 함은 치료순서에서 氣 조절이 먼저라는 얘기고, 본초학에서 氣味論이라고 하여 氣를 앞세우는 것도 치료의 우선순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의학의 지름길은 원전을 충실히 공부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저서 가운데 經자를 쓰는 곳은 內經 佛經 聖經 뿐이다. 經이란 혜안 이상의 눈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뜻이다. 원효 같은 대선사도 평생 연구 끝에 <대승기신론>에 疏 字 한자를 더 붙였을 뿐이고, 서양 중세 최고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일생에 걸친 삼위일체의 연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못나갔다. 육안의 관점에서 혜안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내경을 저술한 동등한 慧眼의 눈이 필요하다. 한의학은 이러한 혜안이 필요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肉眼으로 보아서 기록한 서양의학은 외우면 만사가 형통이다. 한의학도 물론 기본은 암기이지만 본 바탕은 적어도 格物致知라도 해서 육안을 벗어나야 본의에 가깝게 도달할 수 있다. 그리하면 현재 각종 암종 뇌경색 녹내장 간경화 고혈압 당뇨병 아토피 등 서양의학적으로 치료가 어려운 많은 질환을 다스릴 수 있다. 우리 주위에서 이러한 치료를 하고 계시는 훌륭한 임상 선배님들이 그 증거다.

오늘날 한의학 위기는 환자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정확하고 객관적이고 공통된 의료소견의 부재가 또 하나 원인이다. 자연과학 발달과 더불어 진보된 의료기기를 한의학적 옷을 입혀 학생에게 교육하여 졸업 후 임상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학교가 적극 나서야 한다.

전술한 두 가지를 만족시키면 한의과대학에 天才로 입학한 우리 후배들은 졸업할 때는 眞人之才가 되어 자기의 가정은 물론 사회의 건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될 것이다.

朴錫紀/ 前 맥진학회장. 박석기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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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근거 2010-07-02 16:00:07
지적하고 싶은 것은 물리적인 의미에서 1. 마음 = 에너지 라는 근거와, 2. 쿼크입자가 6개라는게 삼음삼양의 6개가 숫자가 같다는것 말고 물리적으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논리적 근거가 너무 약하다는것이 문제입니다.

긍정적 사고 2010-07-02 15:14:42
저 또한 한의학의 이론적인 부분들에 대해 깊을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논쟁을 위한 비판을 하고자 했을 뿐 결코 아무 근거없이 비방하거나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었음을 너그러히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의견 또한 전녀위남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한의학과 동양철학을 물리학으로 풀이할 수 있다는 박석기 원장님의 견해에 대해선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긍정적 사고 2010-07-02 14:49:55
다른 분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분명 저의 주장에도 오류가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방금 백상용 원장님의 "토론자 모두 자기 논리에 매몰" 이라는 글을 보고 왔습니다. 저도 저만의 논리에서 빠져있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지난 3일동안 저와 논쟁하셨던 분과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 중 혹시라도 저의 댓글들로 인해 조금의 불쾌감이라도 느끼셨다면 지금 사과 드리겠습니다.

과학 2010-07-02 10:25:30
측정자체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서 대상의 상태를 바꾸게 됩니다 - 이 말은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이런 설명을 논리적인 인식론의 철학적 체계 안에서 사용했다- 이 말은 철학적인 진술입니다. 다른 학자들의 존재론적 해석 등도 있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것은 철학적 기반입니다.이해가 가시나요? 그리고 저는 윗본문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PositiveMind 2010-07-02 06:36:01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에너지를 측정할때 필연적으로 측정에 소요되는 에너지 때문에" 생긴 것입니까? 백번 양보해서 위치의 측정이 운동량을 변화시키고, 반대로 운동량의 측정이 위치를 변화시킬때 생기는 오차가 "측정에 소요되는 에너지"라고 가정을 한다고 쳐도, 하이젠베르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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