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 전략, 사안 별 분리추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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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 전략, 사안 별 분리추진 필요
  • 승인 2010.06.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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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석

강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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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 함몰 경계… 잘못된 표준화 ‘옥석’ 가려야
표준화 전략, 사안 별 분리추진 필요
도그마 함몰 경계… 잘못된 표준화 ‘옥석’ 가려야 

지난 ‘한의약 발전의 토대 마련을 위한 대정부 운동(한의약 발전 운동, 일명 한약분쟁)’의 핵심은 “한의학의 제도권 진입”이다. 이후 가장 기초적인 제도가 마련되면서 한의계의 최대 화두는 “한의학의 표준화, 과학화 또는 객관화, 그리고 세계화”로 옮겨갔고, 이것에 의해 한의계는 많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표준화, 한의계 현안들의 키워드= 표준화 관련 사안들로는 최근에 많은 논란을 가져왔던 한의표준질병사인분류(KCD-OM3)라든가 한의사국가시험의 개정안,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 계발, 전국 한의과대학의 공통교재 계발, 경혈 명칭이나 위치 및 한의학 용어에 대한 재정리, 규격화된 약재의 유통 및 안전성 확보, 한약제제의 품질 관리뿐 아니라 심지어 학회지의 심사규정이나 투고규정, 표준 도량형의 사용 등에 이르기까지 한의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다수의 일들이 모두 포함된다.

국제적으로는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사무처(WPRO)가 추진하고 있는 전통의학의 표준질병사인분류나 2008년에 있던 표준경혈 위치에 대한 표준화, 그리고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추진하는 전통의학과 관련한 기술표준 등의 사안이 있다. 한국 측에서는 이 ISO의 기술표준과 관련하여 일회용 침의 재질 및 관리 등에 대한 규격화 안을 준비했던 반면, 중국에서는 전통의학 관련 분야의 명칭을 중의학(TCM, Traditional Chinese Medicine)으로 하자는 제안을 하여 한의계를 크게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표준화는 획일화를 의미하는데, 한의학은 중의학보다 획일화를 덜 거쳐 전통의학으로서 장점이 많다는 주장이 나온다”


표준화, 다양한 의미 내포= 폴커 샤이드(본지 688~690호 폴커 샤이드 교수와의 대화) 같은 유럽의 학자들, 중의학을 배운 많은 해외의 전통의사들 뿐 아니라 중국 내부에서조차 표준화를 이루었다고 하는 중의학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표준화가 획일화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전통의학의 많은 장점을 잃어버렸다고도 한다. 또 한국의 전통의학은 중의학과 달리 획일화를 덜 거쳤기 때문에 전통의학으로서 배울 점이 많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의계는 그동안 많은 표준화를 이루어 왔고, 또 그만큼 성숙해졌다. 우리는 한의학이 표준화를 하면 한의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도그마에 빠졌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할 시점이 되었다. 표준화를 해야 한의학이 제도권에 진입하고 학문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는 것은 맞지만, 표준화를 했다고 해서 한의학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의계가 성숙해진 만큼 막연히 표준화가 필요하다고 외칠 때는 지났다. 표준화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좀 더 세분화해서 필요한 표준화와 잘못된 표준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아래와 같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표준화를 세 가지로 분류해 보았고, 각각의 단계들에 대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려고 한다.

입증 가능한 분야 시급히 추진= 첫번째는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진 분야의 표준화이다. 이러한 분야의 표준화는 더욱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 분야의 상당수는 한방의료행위가 현대사회에서 효과를 입증하기 이전에 갖추어야 될 기본적인 요건인 경우들이며, 한의학의 제도권 진입과 관련된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표준화에는 추가비용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국가의 의지와 협회의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그만큼 국민들에게 한의약이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식약청에서 제시한 생약(한약)의 품질 관리를 위한 표준품 가이드라인 2010,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활동, 침의 중금속 함량기준 신설, 의약품 성분명칭 표준화 마련, 한약재 제조공정 지침서 등이 이와 같은 분야에 해당된다.

“침의 중금속 함량기준 신설 등은 정책 당국이나 협회가 앞장 서 더욱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입증 어려운 분야 학문적 토론 우선= 두번째는 한국의 한의학계 내에서 경혈 위치, 한의학의 전문용어, 교육과정, 한의사국가시험, 공통교재, 논문의 투고 관리와 같이 객관적으로 입증할 방법을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한의사들이 토론과 합의를 통해 추진해야 되는 분야의 표준화이다.

이러한 분야야말로 한의학의 학문적 발달과 관련 있는 것들이다. 제도권 진입을 위한 첫번째 분야의 표준화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무조건적으로 추진할 수도 없고, 현재 시점에서 보다 합리적인 방안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조차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향후 이 분야의 표준화 방안을 많은 한의사에게 활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답게 지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논문 한 편 없이 정책가들의 스케쥴에 맞춰 몇몇 권한을 갖고 있는 개개인들의 의견과 학문적 욕심, 열정만으로 밀어붙이듯 추진하는 것은 한의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의학을 표준화하려는 시도가 한의계를 분열시켰던 몇몇 사례들을 주목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선 대결보다 협력을= 세번째는 국제사회에서의 표준화 분야이다. 국제사회에서의 표준화는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분야의 표준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논란이 벌이질 수 있는 분야는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에 국제무대가 국내보다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더 어렵다.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주장에 따른 표준화를 억지로 추진하기보다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동안 WPRO에서 다양한 표준화 안이 추진되고, 몇몇 성과물들을 산출해 내었다. 우리가 ISO에서 중국으로부터 받은 충격 못잖게 중국 측이 WPRO에서 한국으로부터 받은 충격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 역풍이었을까? 중국에서는 ISO의 표준화 안을 중국의 주장대로 끌고 가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표결 처리를 할 준비를 마쳤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인력과 자금을 투입하여 아프리카에까지 중의사들을 파견시켜 온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반대할 국가들은 별로 없다고 한다. 전세계 전통의학 전문가들 사이에 한국의 한의학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조차 중의학의 아류라고 생각할 뿐이라고 한다. 현 시점에서 국제사회에서 한의학의 할 일은 표준화가 아니라 중의학과의 차별성, 고유성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말이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다행히 6월 7~8일 북경에서 열렸던 ISO 회의에서 전통의학과 관련한 카테고리 명칭을 TCM으로 하자는 중국 측 안이 지연되었지만, 보건복지부와 대한한의사협회는 국제사회에서의 표준화 전략에 대하여 전면 재검토해야 될 것이다. 향후 국가 간의 대결보다는 국제적인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표준화 방안, 그리고 한의학과 중의학 간의 통일된 표준화 방안보다는 고유성을 부각시키는 쪽의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한중 FTA에 대한 MOU가 체결된 이 시점에 두 나라 전통의학 간의 표준화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 지도 모른다.

“한의학은 국제사회에서 표준화가 아니라 중의학과 차별성, 고유성을 주장해야 한다는 말이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힘을 갖고 있어야 표준화 가능= 우리는 역사적으로 표준화를 통해 문명이 발전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시황, 한무제, 당 태종을 비롯해 조선의 세종까지 잘 나가던 군왕들은 문자, 복식, 제도, 음악, 도량형은 물론 심지어 사상까지도 표준화를 추진하였다. 또한 송대의 교정의서국이 한의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국가 출판물이던 조선의 동의보감이나 중국의 의종금감과 같은 책들이 조선과 중국의학의 표준이 되어 양국의 의학을 크게 발전시켰던 것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표준화를 추진하는 세력이 힘을 갖고 있어야 실질적인 의미의 표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잘 나가는 군왕들은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최고의 학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최고의 학문적 성과물들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실질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표준화 안을 제공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문가 집단들 중에서 한의계 만큼 중앙의 힘이 약한 곳은 없다. 한의계의 중앙이란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학회, 그리고 한의과대학이다. 이들 한의계의 중앙은 2만 한의사들을 제도적으로 통제할 수는 있어도 학문적으로 장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 스스로가 학문적 결과물로서 표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법과 제도를 이용하여 통제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전문가 집단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표준화 4원칙(목적과 방법)= 앞으로도 우리가 표준화해야 될 것들은 매우 많은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산적해 있다. 어떠한 것들은 시급히 추진해야 하며, 어떠한 분야는 좀 더 시간을 갖고 학문적 성과를 기다려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에서도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다양한 배려 속에 국제적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분야의 표준화를 추진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표준화의 요구를 받거나 추진하게 될 것이다. 이때 아래와 같은 목적과 방법에 따른 네 가지 원칙에 따라 표준화를 추진할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어떠한 방향으로 추진할 것인지를 판단하자는 제안으로 마무리한다.

① 인류의 건강과 복지 증진을 위할 것
② 한의학의 발전을 위할 것
③ 한의학과 현대의학의 협력을 이끌어 낼 것
④ 국내외의 협력을 이끌어 낼 것

강연석/ 원광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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