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54)- <醫家神方>
상태바
고의서산책(454)- <醫家神方>
  • 승인 2010.06.16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contributor@http://


自生 천연두 接種法의 시행

고의서 산책(454)- <醫家神方>

 

 


自生 천연두 接種法의 시행 

소아 두창의 치료법에서부터 種痘方까지 기술한 종두서의 일종이다. 서발이나 목차도 없이 서명 다음에 곧바로 ‘初熱三朝’부터 본문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가 오죽이나 다급했으면 격식을 차릴 여가도 없었을까 하는 심정이 든다. 혹심하게 창궐했던 전염병만큼이나 옮겨 적는 이의 마음도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내용 또한 흔히 보는 두창 전문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대개 이러한 선입견은 기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初熱三朝’, ‘出痘三朝’, ‘起脹三朝’, ‘貫膿三朝’, ‘收靨三朝’로 3일 단위로 두창의 전변 단계를 나누어 기술하고 있는 방식이 허준의 <언해두창집요>나 박진희가 쓴 <두창경험방>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언해두창집요>에서는 ‘初熱’, ‘出痘’, ‘起脹’, ‘貫膿’, ‘收靨’까지의 전변 단계가 그대로 적용되어 있고 다만 三朝 대신 三日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두창경험방>에서는 ‘初熱’ 단계가 생략된 대신 稀痘方과 延生第一方이 먼저 수재되어 있는 것이 차서의 구성상 서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기재된 내용은 상당히 달라 독자적인 경험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예컨대 본문 중에 상당수 기존에 잘 알려진 처방의 내용을 기재하지 않고 과감히 생략한 점, 다소간 미심쩍은 부분이나 잃어버린 조문에 대해 ‘八溪全氏方’을 참조하여 보완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이 나름대로 기존서와 다른 변형된 집필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게다가 ‘收靨’ 다음으로는 병발 증상이나 속발증에 해당하는 ‘痘後雜症’이 이어지는데, 가장 주목할 점은 본문 중간부터 ‘八溪全氏曰-’로 시작하는 두창론이 전개되고 다시 ‘發熱三朝’, ‘出痘三朝’, ‘起脹三朝’, ‘貫膿三朝’, ‘收靨三朝’로 이어지는 두창 변증치료법이 단계 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여기에는 保元湯, 四聖回天湯을 비롯한 自作方의 치료경험과 다수의 醫案이 기록되어 있어 참고가치가 크다.

변증치료법 단계 별 구성… 自作方 치료경험 기록
농창 생기지 않을 경우 足太陰脾經 위주 치료 주장


특히 앞서 말한 ‘八溪痘瘡論’에서는 錢乙과 潔古, 朱氏, 丹溪 등 제가들이 모두 두창을 癘疫으로만 여겨 疎泄과 瀉熱만을 위주로 치료하였기에 오히려 內虛를 유발하여 죽게 만들었다고 공박하였다. 아울러 두창을 옹저와 같이 여겨 농창이 생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나 이럴 경우 거꾸로 안으로 흡수되어 죽게 된다고 하고서 足太陰脾經을 위주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補脾土해야 한다는 자신의 견해에 대해 저승에 가서라도 李東垣과 朱丹溪를 만나 시비곡직을 바로잡겠다고 자신하였다.

八溪全氏經驗方에 이어 三山尹氏의 두창론이 수재되어 있다. 그의 두창론이 역시 독창적인 東國經驗에 속한 것이나 두 사람 모두 어떤 인물인지는 자세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끝으로 醫學初行入門과 種痘方이 실려 있는데, 입문에는 발반이 급속하게 진행하여 痘粒이 보통보다 큰 경우 竹針으로 破腫하고 眞墨을 갈아 바르는 賊痘法이 수재되어 있다. 또 種痘方에는 두창의 痂皮를 가루로 만들어 鼻腔에 접종하는 이른바 人痘法이 소개되어 있다.

조선 후기 이러한 두창서의 유행은 <攷事撮要> 雜用俗方篇이나 <山林經濟> 醫藥門에 ‘두창경험방’이 수록된데 기인한 바가 크다. <동의보감> 간행 이후 점차 지식인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건강상식으로 자리 잡은 의약지식은 17∼18세기에 이르러 <고사촬요>나 <산림경제>, <고사신서>와 같은 가정백과전서의 보급과 궤를 같이 하여 사대부 계층에 급속도로 파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