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녀위남이라니!’ 反論에 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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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녀위남이라니!’ 反論에 答함
  • 승인 2010.06.1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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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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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에서 믿음 아닌 관찰 찾아야
고전 속에서 믿음 아닌 관찰 찾아야
-이정우 원장의 ‘전녀위남이라니!’ 反論에 答함 

이번 호(760호) 민족의학신문에 시평 ‘전녀위남이라니!’에 대한 반론이 기고문 형식으로 실렸다. 신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가치 있는 논쟁이 될 수 있으니 답변의 글을 기고해 달라고. 많이 고민한 끝에 이런 논쟁이 약간이라도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우리 학문이 전환점을 마련하는데 미미하나마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견해를 추가로 말해 보기로 했다.

나는 ‘전녀위남이라니!’라는 시평에서 굳이 이정우 원장님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가 경전의 견해를 추상적 의미로 해석하여 우리 것을 옹호하려는 태도나 검증의 방법 여하를 막론하고 검증의 대상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반추해 보자는 데 중점을 두었다. 지금으로서도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정우 원장님은, 경전의 주장들을 검증해 보면 대부분 실제와 일치할 것이라 믿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런 견해에 대해서도 무언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조금 이야기해 보자.

동의보감의 정(精) 단원에는, 정액이 혈액에서 기원한 것이기 때문에 정액을 그릇에 담아 소금과 술을 섞어 하룻밤 바깥에 두면 다시 혈액으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허준 선생은 <眞詮>에서 인용한 글로 밝히고 있으나 현행 <道藏輯要>에 수록된 <진전>에는 다소 다른 표현으로 등장한다). 실험정신 투철한 ㅇ대학교 한의대의 이 모 교수님께서는 동의보감의 이 대목을 읽어본 후 실제로 정액을 모아 원문의 표현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변화를 관찰해 보았다고 한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굳이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이런 사례는 그냥 재미있는 한 가지 사례라 할 수 있지만 끔찍한 결말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100여 년 전 중국의 의화단 단원들은 맨몸으로 총알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서구 세력에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그들 앞에는 서구 열강 8개국의 연합군이 들이닥쳤고 그들은 무수한 총알을 맨몸으로 맞아내야만 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옛 의서를 보다 보면 주술적 치료법을 비롯하여, 손쉽게 검증해 볼 수 있는 주장이 종종 등장한다. 사실 동의보감은 이런 예가 매우 적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의 구급방류 의서를 보면 온통 황당한 주장으로 가득하다. 헌데 이런 주장들은 현실에서 쉽게 그 진위가 결정된다는 특징이 있다. 별다른 위해가 없는 주장이라면 실제와 맞지 않는다 해도 그냥 유지될 수 있지만 심각한 위해를 미치는 잘못된 주장은 어떻게든 교정되게 된다. 일본 전국시대의 장수 다케다 가쯔요리(武田勝賴)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조총 부대에 그야말로 ‘무데뽀(むでっぽう, 無鐵砲)로’ 돌진했다가 전멸을 당했다고 한다. 이후로 일본 각지의 군대는 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게 된다.

“현대과학은 한의학 ‘경험’들을 설명하는데 턱 없이 무력하다. 때문에 현대과학과 다른 독특한 지식체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한의학 연구도 마찬가지다. 일전에 어느 소규모 모임에서 나는 음양오행설을 ‘검증’하는 연구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제시한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한 분이 “그래도 한 번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만약 교수님께서 정부 예산 수백억 원을 집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합시다. 그럴 경우에도 음양오행설을 검증하는데 그 예산을 몽땅 투입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논의는 바로 정리되었다.

여기서 음양오행설의 검증이라 한 것은 동식물에 청적황백흑 오색을 비춰 주거나 각치궁상우 오음을 들려주면서 생장의 차이를 보는 식의, 경전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확인하는 연구를 말한다(참조: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연구 심포지움- 21세기 한약 연구의 뉴패러다임, 2005년 6월22일). 연구비의 규모가 크지 않다면 뭐 그런 것도 ‘검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그런 질문에 답을 얻으려 하는 데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손쉽게 “나 같으면 한다”는 답을 택하는 사람은 학문적 결함을 넘어 도덕적 결함이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는, 총탄 앞에 스러져 갔던 무수한 병사들처럼 허무하게 낭비되고 마는 백성들의 혈세를 목도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무데뽀 정신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이정우 원장님의 글에는 작금의 혼란을 해결할 한 가지 단서가 등장한다 -“전녀위남을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 합곡혈에 침을 놓는 것은 아주 웃기는 일이다” 나는 합곡혈의 침자를 통해 얼굴의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침 시술에서 하나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전의 많은 혈위 처방(또는 치료혈 집합)에서 그러한 경향이 반복 확인되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이 이 연관을 보증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합곡과 얼굴의 연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경락학설을 통해서만 설명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위의 원칙은 두 부위의 연관을 말하고 있을 뿐 두 부위 사이에 지금의 대장경에 해당하는 노선이 놓여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지 않다. 중간의 주행은 얼마든지 다른 형태가 가능하며 아예 노선을 상정하지 않는 새로운 설명체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시험 삼아 혈위의 경험적 효능을 모아 보면 이들을 설명하기 위한 최소·최적의 설명체계가 고전의 경락학설이 아님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고전은 혈위의 효능은 경락체계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경락이 존재함이 ‘옳은’ 것이라고, 즉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믿음일 뿐이다. 고인들이 진짜로 확인한 것은 경락이 아니다. 그들은 인체의 각 부위가 보여주는 현상을 관찰했고 그것을 종래에 알려져 있던 실체와 연결하여 해석했을 뿐이다. 침구 문헌 연구자인 황룡상(黃龍祥) 교수는 오늘날 침구의 연구과정에서 경락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은 마치 연소현상을 연구하며 종래의 화학자들이 연소를 설명하기 위해 가설적으로 설정했던 ‘플로지스톤’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몰두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정확한 지적이다.

고전에서 찾아야 할 것은 고인들의 믿음이 아니라 고인들이 관찰한 것들이다. 그 관찰을 설명하는데 현대과학이 최적이라면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이른바 이론적 ‘환원’의 과정이다). 그러나 아직 현대과학은 한의학의 ‘경험’들을 설명하고 치료를 지시하는데 있어 턱 없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바로 이 때문에 아직도 우리는 현대과학과는 다른 독특한 지식체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우리 학문의 실체다.

각종 대체의학적 요법들만 난무하고 거짓 침이 실제 침과 차이 없음을 보이는 연구 결과들에는 아무 반응이 없는 한의계 현실을 보면 이런 말을 꼭 하고 싶다 -우리의 학문을 바라보는 정직하고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허나 그것은 경전이 옳았음을 재확인하려는 신앙심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의 원천을 만들어 내려는 탐구심이어야 한다. ‘새롭다’는 것은 서구의 과학과도 다름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김기왕/ 부산한의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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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정 2010-07-27 01:39:40
이정우 반룡수진회장께서 이 글에 대해 다시 재반론을 기고하셨던데 그에 대한 반론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의학과 재학생으로서 공부를 하면서 "부정하고 싶지만 학교 교수님들께서 맞다고 하시니 네 알겠습니다 하고 지나가던 사실들"을 가려운 곳 긁어주시듯 조목조목 비판하시니 정말 시원한 느낌입니다

의사 2010-07-10 17:12:56
한의학이 의학으로 인정받으려면 교수님같은 분들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기왕 2010-06-15 06:40:25
경락은 실존한다구요? 적토마님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추동할 수 있습니까?
경락은 존재한다, 체득해야 한다, 개합추의 요체를 깨달아야 한다... 말로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듣고 현상을 해석하고 예측하는 기반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지속가능한 지식 생산의 원천을 마련하는 것, 여기에 한의학의 생존이 달려 있습니다.

적토마 2010-06-14 12:01:39
경락은 실존하는 것이지,, 믿음이 아니다,,
한의학은 종교가 아니다,, 어중간하게 아니까,믿음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한의학은 관찰해서 공부하는 게 아니다,,
물론 관찰도 일부 잇지만,,
핵심은 체득이다,,

경락을 뺴고 한의학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락을 모르고 도대체 무슨 강의를 하시는 건지 ,,,
경락체계의 기화규율, 개합추,,, 등등이 한의학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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