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구급이해방 저술… 아들 김세달 太醫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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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구급이해방 저술… 아들 김세달 太醫 역임
  • 승인 2010.06.0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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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규

황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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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창원시 한의계 열전(1)
김흥수 구급이해방 저술… 아들 김세달 太醫 역임
서병희 이승규 김관제 방주혁 선생 ‘한의사 독립운동가’ 명성

통합 창원시 한의계 열전(1)

“1989년 마산시 51명, 창원시 9명, 진해시 7명이지만 2010년 현재 ‘통합 창원시’ 회원은 267명으로 거대 분회가 됐다” 

◆ 통합 창원시의 한의사= 올해 7월부터 마산, 창원, 진해 지역이 합하여 ‘통합 창원시’라는 명칭으로 행정구역이 바뀌게 된다. 과거 조선시대 이 지역은 창원은 대도후부로 마산의 일부는 진해현으로 불리고 진해는 웅천으로 불리던 곳이었는데 일제시대 행정구역은 창원의 경우 ‘웅천, 진동, 창원, 경화동, 진해’를 말하며 마산의 경우 ‘구마산, 마산’으로 행정구역으로 불리었다. 1983년 ‘경상남도 도청’이 창원시에 이전을 하였고 마산과 진해를 포함한 ‘통합 창원시(인구 108만)’로 바뀌게 되었다.

 <진해현지>의 이제마 관련 부분. 
일제시대 마산, 창원 지역의 한의사(의생)로 관보에 등록된 이는 120여명(평생 의생면허: 90여명)이 있었으며 1922년에 실제 생존한 한의사는 마산 지역에 12명과 창원(진해) 지역에 60명이 있었다. 해방 후 한의사 회원은 1962년 통계에 마산시 13명, 창원시 10명, 진해시 5명이고 1989년에는 마산시 51명, 창원시 9명, 진해시 7명이지만 2010년 현재 ‘통합 창원시’ 한의사회 회원은 267명(마산 105명, 창원 124명, 진해 38명)으로 거대 분회가 탄생하게 된다.

◆ 조선시대의 역사= 마산 창원 진해는 예로부터 한의학자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金興壽(자헌대부, 知樞, 태의원 太醫)의 경우 조선시대 <구급이해방>을 저술하였고 아들 김세달은 太醫였다. 이외에도 內鍼醫 겸 議藥同參醫인 黃述은 치종교수와 活別을 하였고 議藥同參醫로는 黃益俊 등이 있다.

마산의 맑고 아름다운 경치를 거쳐 간 한의학자 중에 이제마의 경우 <동의수세보원>을 서술하기 전에 ‘진해현’에서 관직을 하였는데 향토사학자는 그의 흔적이 <동의수세보원>에만 기술될 뿐 찾을 수 없다고 하지만 <진해현지>를 자세히 보면 그의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 일제시대 한의학 역사= 이 지역 출신의 한의사로 구한말 유명한 한의학자로 <수진 경험신방: 1912년>의 저자 李麟宰(호: 慕晦/ 의생번호: 4581)가 있는데 그는 마산 완월리 출신의 한의사이다. 또한, 1958년 <경험신방 학낭보결>을 쓴 허송암(鶴囊)은 부산‧경남한의사회 원로들의 처방을 수록한 서적을 썼으며 <동방의약>에 “宇宙政策과 生理”를 기고하였다. 이외에도 한의사 지산 박인규(형상학회)가 마산 출생 한의사이다.

통합 창원시의 한의사 독립운동가로는 대표적인 분들이 있는데 의병활동을 하신 서병희 선생, 노산 이은상의 부친 한의사 이승규(호: 南荷)와 마산 삼진의거(3.1 운동)의 김관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 이외에 侍醫이며 정치가 독립운동가인 侍醫 方周赫(의생번호 5번, 경남 창원 웅천 혹은 합천 출신, 서울 자도한의원 원장)도 이 지역과 관련 있다.

“수진 경험신방의 저자 李麟宰가 있고, 허송암은 경험신방 학낭보결을 쓰고, 지산 박인규가 마산 출생 한의사다”

◆ 한의사회의 시작= 마산, 창원시 한의사회의 경우 1914년 의생제도와 함께 탄생하였고 본격적인 활동은 1920년대 마산 추산동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26년 마산시 회관을 신축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초창기 1920년대 마산 분회는 회장 金基鍾(1866년생, 면허번호 5602번: 동서의학연구회(한의사 단체) 마산 지회장), 부회장 金在鍾, 서기 徐奇錫(1905년생, 한지한의사 151번, 서처진의 아들: 대구 최해종과 교류), 재무 김우권, 이사장 廉仲燮, 평의장 鄭雲會이며 김진환(1859년생, 의생번호 2580)은 창원군(진동 포함) 의생회장이었다. 특히 서처진(면허번호 3602번: 1874년 6월10일~1962년 10월25일: 한지한의사)은 서기석의 부친으로 창원군 웅남면 귀곡리가 고향으로 대한한의사협회의 전신인 의생회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마산 창원 진해 한의사회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외에도 金玟圭(1882년생, 의생번호 3140), 金宜顯 (의약월보: 평양강습회 출신 성적 우수자), 李和實(1863년생, 의생번호 1929), 李承鳳(1869년생, 의생번호 2307), 朴湘溧(1888년생, 의생번호 2649), 변영철(의생번호 2586번)이 있다. 특히 李仁宅(1868년생, 의생면허 3263: 동서의학연구회 교수(강사), 1923년 경남한의사회 회장. 충남한의사회 회장)의 경우 1920년대 한의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 노산 이은상의 부친 한의사 이승규= 경남지역의 한의사이며 독립운동가로 이은상의 부친인 李承奎(호: 南荷)는 마산 지역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교육가, 사회사업가, 종교지도자이며 한의사인데 그는 3.1운동 때 활동을 하였고 당시 독서숙을 설립하였고 현재의 창신고등학교 설립 공로자이며 1921년 ‘워싱턴 회의’ 때 마산 대표자로 서명을 한 분이다. 마산 문창교회의 장로로서 민족교육에 이바지 하였다. 이 학교 출신으로는 1952년 한의사제도의 설립에 관여했던 ‘五人同志會’의 한 분인 권의수가 있다. 이외에도 3.1운동(삼진의거)과 관련하여 김관제가 있는데 그의 기록은 ‘허당 명도석’ 관련 비석에 그의 이름이 誤記되어 남아있다. 그는 대구 지역의 한의사로 활동하였다.

1948년 경남한의사회 창립 발기인으로 장현재(1917년생: 의생번호 9653번, 한지한의사 156번, 한의사 번호 4180번)가 있는데 해방 후 ‘동양의약회’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서 ‘동양의약회 부속 한의원’을 부산 대청동에 개설하기도 하였으며 부산에서 분리된 경남한의사회 고문으로 활동하였으며 기고문으로 ‘삼음삼양론과 위기를 앞둔 한방의약의 이야기’, ‘갈근탕과 계지가갈근탕의 치험예’가 있다.

◆ 1950년대 한의사= 1950년대 이후 한의사의 경우 관보에 기록되어 있는데 배기록(면허번호 162번), 배현찬(면허 176. 1907~1988년), 문달옥(면허 369. 진해), 천기홍(면허 424), 조순제(면허 586) 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의생이던 분이 한의사로 등록된 분은 이병주(면허 108), 이규창(면허 117), 장승현(면허 256), 조홍순(면허 257), 장기룡(면허 326), 최재범(면허 349), 백재현(면허 684) 등이 있다. 50년대 한의사 중에는 진해를 고향으로 중국(만주국) 한의사에서 한의사 국가고시를 치른 배원식(1914년~2006년, 면허 618번,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의림지 창간)이 있는데, 그는 대한한의사협회장(8대~9대)을 역임하였고 국제동양의학회 창립, 지산의학상 수상(03년) 등의 한의계 거목이었다.

80년 이후까지 생존해 계신 일제시대 한의사로는 김병길(1915~1987년, 의생번호 8937번, 한지한의사 85번, 한의사면허 4183번), 임혜근(의생번호 9324번, 한지한의사 175번, 한의사면허 4184번), 앞에서 언급한 장현재(1917~1988년, 의생번호 9653번, 한지한의사 156번, 한의사번호 4180번)가 있다. 이들은 ‘통합 창원시’ 회원으로 의생, 한지한의사, 한의사면허를 취득하셨던 분이다. 또한, 의생에서 한의사국가고시 시험을 치른 박종곤이 있다.

이외에도 진해 배정호(1933년~2005년, 면허번호 1142번, 신진한의원, 57년 경희대 졸업, 경남한의사회 부회장)가 1972년 사무처장으로 활동하였다. 

황연규/ 마산 성신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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