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녀위남 비웃으며 합곡혈 시침하면 ‘코미디’
전녀위남 비웃으며 합곡혈 시침하면 ‘코미디’ 김기왕 교수의 ‘전녀위남이라니!’에 대한 反論
김기왕 교수는 서양의학 또는 과학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한의학만 남아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전녀위남이라니!’라는 기고문(민족의학신문 758호 시평)을 보니 김 교수는 경악만 하고 전녀위남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서양의학과 맞지 않으면 부끄러워하거나 치워버려야 할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동의보감>의 내용이 다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진가(眞假)를 구별하는 잣대는 경전(經典)에 근거한 한의학적 원리에서 찾는 것이 옳다. 과학의 잣대를 가지고 한의학을 재단하면 뭐가 남을까? 최신 과학은 아직까지 기(氣)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했으며 경락(經絡)의 실체도 규명하지 못했다. 전녀위남과 함께 기와 경락을 기초로 한 침법까지 웃어 넘겨야 할까?
그렇다면 대장경이 인중에서 교차하는 것, 이빨이 썩었을 때 둘째손가락에서 피를 빼라는 방법도 마찬가지로 가볍게 무시해야 할 내용이겠다. 최신 기법으로 열심히 한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전녀위남을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 합곡혈에 침을 놓는 것은 아주 웃기는 일이다.
“과학의 잣대로 한의학을 재단하면 뭐가 남을까? 현대과학은 아직 氣의 존재 증명은 물론 經絡의 실체도 규명 못했다”
<의학입문>의 원문에 ‘못 믿겠으면 닭의 둥지 아래 도끼를 놓아 보라’고 하면서 ‘실험(實驗)해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직접 해봤다는 말이다. <천금방>에는 험(驗)이 없다. 의학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인 허준 선생께서도 <동의보감>에 전녀위남법만 기재했다. 이렇게 후세로 내려오면서 실험도 하고 정선되었다. 이미 해봤다는 기록이 있으니 믿지 못하는 사람이 해보고 틀렸다고 하는 게 선후에도 맞다.
재미있는 내용이라 실험해 보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도끼다. 전녀위남법에는 도끼라는 말만 있지 어떤 도끼를 사용하는지 설명이 없다. 도끼는 기를 변화시키는 매개로 사용된다. 안테나 또는 증폭기의 역할이다. 그럼 어떤 도끼를 써야 할까. 양날도끼? 외날도끼? 새 도끼? 아니면 6년근 인삼처럼 6년 사용한 도끼? 크기나 재료는? 과거로 돌아가 직접 물어보고 싶지만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
닭도 문제다. 요새는 옛날처럼 닭을 놓아길러 낳은 유정란을 얻기 쉽지 않으며, 있더라도 닭들이 대부분 알을 품는 방법을 잊어먹어서 품을 줄 모른단다. 아주 간혹 알을 낳고 품을 줄도 아는 정신 똑바로 박힌 닭이 있다고 한다. 대학원에서도 실험논문에 쥐를 잡지 말고 정신 멀쩡한 닭과 다양한 도끼를 구해서 실험해 보면 좋겠다.
“장상학이 서양의학과 맞지 않는다고 옛사람들이 몰랐다고 하면 된다는 식의 말은 의대 교수의 입에서나 나올 말이다”
심각한 것은 경전의 내용들을 한의학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경악과 함께 유물론에 치우친 서양과학과 서양의학이라는 칼로 무참하게 난도질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주로 의사들이 비방했지만 지금은 의사뿐 아니라 상당수의 동료 한의사와 함께 일부 교수도 공공연하게 옛사람들이 몰랐다고 말한다. 틀렸다고 할 때의 기준이 서양과학이 되어선 곤란하다.
장상학을 현대 생리학에 비춰봐서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것은 어떨까. 현대 생리학이 다루지 못하는 신령혼백(神靈魂魄)까지 현대 생리학에 비춰서 판단할 수 있을까. 폐장의 24공과 심장의 3모7규는? 추상적인 해석 역시 마찬가지다. 경전의 저자들이 당시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을 지금에 와서 추상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기각해서는 안된다. 특히 그 기준이 서양 생리학이면 더욱 곤란하다.
한의학의 장상학이 서양의학과 맞지 않는 것을 가지고 옛날 사람들이 몰랐다고 하면 된다는 식의 말은 의대 교수의 입에서나 나올 말이다. 한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는 함량 미달이다. 더 이상 강단에서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정확한 해석은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저자의 의도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많은 번역서는 원서의 오역이 지나치다. 망망대해의 등대 역할은커녕 자기 손발도 구별하기 어려운 안개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런 해석도 해롭지만 경전을 경시하고 대충 보고 틀렸다거나 억지라고 쉽게 말하는 태도는 더 해롭다.
옛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정확하게 하는 것이 온고(溫故)다. 지신(知新)도 온고에서 시작해야 한다. 온고는 오해 없이 경전을 해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내 지갑의 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의학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든 원인은 도끼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한의학을 서양의학의 틀에 맞추는 행태에 있다.
이정우/ 동의형상의학 반룡수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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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일반인들, 의료인들의 이해를 더 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