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 뜨끈한 라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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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 뜨끈한 라면 맛
  • 승인 2010.05.2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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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영

홍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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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얼큰 뜨끈한 라면 맛

反 유럽 중심주의… 자료 풍부 

<서구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존 M. 홉슨 지음. 정경옥 옮김. 에코리브르 간.

마틴 발저는 <어느 책 읽는 사람의 보고서>에서 “사람은 자신이 읽은 책으로 만들어 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반쪽 짜리 책 읽기는 ‘반쪽이’를 만들까?

이 책은 출간된 지 5년이 지났다. 제목의 구태의연함, 그리고 쉽게 예상되는 본문 내용으로 인해 한동안 손이 가지 않았다.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온 이슬람 관련 신간들과, 최근 유럽의 반(反)이슬람 정서를 대표하는 부르카 논란을 접하면서 이 책을 다시 펴게 되었다.

고전으로 꼽히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종가집 반상이라면, 이 책은 도시락처럼 가뿐하다. 유럽 중심주의와 반(反) 유럽 중심주의에 관한 보고서로 읽어도 좋을 만큼 풍부한 자료와 인용 문헌을 동원했으니, 푸짐한 면도 있다. 유재원의 <터키, 1만년의 역사> 역시 이슬람 문명에 주목한 신간으로서 저자의 평생 공부가 빛나지만,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에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식은 밥상을 받은 느낌이다. 반면, 이 책은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으므로 후후 불어가며 먹는 얼큰 뜨끈한 라면 맛이다. 이국의 식탁을 원한다면 또 다른 신간 <신의 용광로>도 괜찮은 선택이다.

서양 제국주의의 빌미가 되었던 오리엔탈리즘은 의학사와도 긴밀하다. 우리에게 서양의학이 이식된 과정을 면밀히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한편, 열대의학을 통해 서양의학 ‘발전’의 방향성을 확인시켜 준다.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추종을 온몸으로 보여준 일본의 제국주의. 이들이 배태시킨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이라는 사생아는 아직도 우리 밥상을 축내고 있다. 서양에 대한 몰아적 선망으로 살짝 자세만 바뀌었을 뿐이다.

20세기 초에 각각 한국의학사를 정리했던 김두종과 미키 사카에, 이들이 모두 존경했던 인물이 바로 후지카와 류였다. <일본의학사>를 저술했던 후지카와는 서구 근대화의 우월성을 신봉했던 인물이다. 지금 우리 눈에는 후지카와의 신념이 우스워 보이지만, 이러한 신념은 전혀 우습지 않게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적통 행세 중이다.

동화 속 ‘반쪽이’는 힘도 세고 마음도 너그럽다. 그러나 반쪽 짜리 지식과 반쪽 짜리 신념으로는 ‘반편이’ 되기 십상이다. 책만 가지고 내가 만들어 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교과서나 방송국에서는 반쪽밖에 보여주지 않으니, 다시 책을 펴들 수밖에 없겠다.

홍세영/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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