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의학고문헌 大학자 탐방기(하)
상태바
일본 의학고문헌 大학자 탐방기(하)
  • 승인 2010.05.15 1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유상

백유상

contributor@http://


문헌학 연구자들 교류 확대 절감
문헌학 연구자들 교류 확대 절감
일행이 레이타쿠대학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장 왼쪽이 필자이고, 오른쪽 여자분 레이타쿠대학의 연구원. 다음 순으로 후지모토 유키오 교수, 정창현 교수. 나머지는 경희대 연구생들이다.

기초학문 연구자세 치열… 일본 한방의학 도움 줘야

일본 의학고문헌 大학자 탐방기(하) 

후지모토 유키오(藤本幸夫) 교수를 알게 된 것은 작년 8월경 언론을 통해서다. TV의 역사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후지모토 교수가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 고문헌을 전부 조사하여, 그 서지 정보들을 정리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바로 이메일을 통하여 연락을 취하였다.

후지모토 교수는 원래 한국어와 한국 고대언어를 전공하였는데 도야마(富山)대학에서 정년을 마칠 때까지 일본에 현존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한국 판본 고문헌을 조사하고 서지학적 계통을 연구하였다. 약 40년 동안 조사 건수는 무려 15,000건이며 권수로는 5만권에 달한다.

그는 조사한 문헌을 전통 분류방식인 經, 史, 子, 集으로 분류하였으며, 그 중 集部를 2006년 쿄토(京都)대학 학술출판회를 통하여 간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2007년 한국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의학 고문헌에 대하여 정리된 목록이 있는지를 물어보았으나 아직 정리 중에 있으며 2011년에 子部를 간행하면 그 속에 의학문헌이 포함될 것이라 하였다.

후지모토 유키오 교수는 처음에 한국어를 연구하다가 한국의 고문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 서지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구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오랜 시간과 노력을 통하여 실현시키는 것을 보고 모든 학자가 보고 배워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되었다. 그 많은 문헌을 혼자서 직접 보았다는 점이 놀라웠는데 후지모토 교수는 서지학은 원래 한사람이 해야 하며 그래야 그 속에서 계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명예나 사회적 지위에 연연하지 않는 성실한 연구자들이 보다 많이 나와야 기초자료에 대한 연구 부족을 극복할 수 있다”

사실 서지학의 핵심은 단순한 관찰에 있다. 고문헌은 간행 연도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내용 형식과 판본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서 연대와 출간한 곳을 판정해야 한다. 하나의 고문서가 가지고 있는 세부 특징들을 얼마나 자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가가 관건인데 여기에 미리 정해진 방법은 없다. 수많은 문헌들을 보다 보면, 그 과정에서 판정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얻게 되고 여러 판본에 대한 계통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후지모토 교수는 한국 고문헌의 세부적인 특징들을 28개의 항목으로 나누었다. 書名, 撰者, 版種, 刊者, 刊年, 刊地, 裝幀, 寸法, 紙質, 版式, 版心, 構成, 序文, 跋文, 刊記, 原刊記, 刻工名, 內賜記, 諺解, 吐, 封面, 藏書印, 識語, 註記, 撰者傳, 藍本, 私案, 所藏者 등이 그것으로 매우 자세하게 항목이 정해져 있다. 조선의 고문헌은 중국‧ 일본의 판본과 비교하여 책과 글자의 크기가 크고 양질의 종이를 사용하여 간행되어 당시 출판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귀중한 문화재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도 마음 속에 일어났으나 그보다 먼저 이러한 유산에 대하여 한국의 학자들이 연구하여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지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후 DB작업 과정을 참관하였다. 후지모토 교수가 판본을 살펴보고 나서 위의 항목들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작은 글씨로 종이에 빼곡하게 적은 것을 다시 연구자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經, 史, 子部와 색인집, 도록, 증보판 등이 간행되려면 앞으로도 10년 가까이 소요될 것이라서 본인도 힘든 작업이라고 설명하였다.

후지모토 교수는 도야마대학에서 정년을 마친 후에 5년의 단기계약으로 현재 레이타쿠대학에 와있으며 계약기간을 마치면 다시 도야마대학의 명예교수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하니 70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력을 다하여 연구하는 모습에 다시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후지모토 교수와 조교의 배웅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동경 시내에 있는 고서점 거리를 찾았다. 칸타진보쵸(神田神保町)를 중심으로 2블록 정도의 거리에 고서점들이 밀집되어 있는데 각 서점들은 보통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주로 고서나 헌책을 다루는 곳이 많았으며 일반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도 있었다.

후지모토 교수가 소개해준 서점을 찾아서 고서들이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듣기로는 간혹 한국판본의 고서들이 유통된다고 하여 조금 기대를 하였으나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서라고 해봐야 19세기 말 이후의 책들이고 원본을 다시 영인하여 고서처럼 만든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옛 고문헌만 취급하는 전문 서점을 알아서 귀국 후 연락을 하여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로 하였다.

“서지학 연구가 실증주의적 역사관에서 정통 역사주의로 복귀해 의학의 본질을 탐구한 뒤 한방의학을 부활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문헌학 분야에 연구가 많았다. 이러한 전통은 무언가 꼼꼼히 정리하고 분석하는 일본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연구 풍토와 차이점을 살펴보면 한국은 일차적인 자료의 분석보다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만큼 실용적 측면이 강하였다. 그러나 문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서지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동안 의학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기초자료에 대한 연구에 투자가 부족하였던 것이 사실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명예나 사회적 지위에 연연하지 않는 성실한 연구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일본의 문헌학 연구자들과 교류가 늘어나야 하는 이유는 단지 한국 고서가 일본에 많이 소장되어 있어서 뿐만이 아니다. 한국 한의학이 한 단계 더 도약을 하기 위해선 기초의 토대가 튼튼해야 하는데 해방 후 지금까지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이 많지 않았다. 기초 학문에 대한 성실한 연구자세와 세밀한 방법 등은 한국의 학자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며 민족적 성향을 떠나서 학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라 할 수 있다.

교류가 늘어야 하는 또다른 이유는 일본이 가지고 있지 않은 측면을 통하여 일본의 한방의학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화를 추진하면서 전통의학을 원래의 모습과 달리 개량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정하였다. 그 결과 현재 일본에는 전문교육기관인 한의과대학이 없으며 전통의학에 대한 독립적인 면허도 없는 실정이다.

한국과 중국처럼 <黃帝內經>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에서 시작하여 <傷寒論> 등 정통 텍스트에 대한 기초이론 연구가 선행되어야 의학이 발전할 수 있다. 일본의 서지학 연구는 실증주의적 역사관과 맥락이 닿아 있으나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 정통 역사주의로 복귀하여 의학의 본질을 깊이 탐구한 후에 이를 토대로 한방의학을 다시 부활시켜야 할 것이다. 일본 내경의학회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아직 성과가 미흡한 실정이다.

이번 일본 탐방은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문헌학 연구가 안고 있는 과제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었으며 교류 확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연구자를 교환하고 공동 저서를 내는 등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후지모토 교수가 알려준 일본 소장의 조선각본 <黃帝內經>을 찾아보는 작업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훌륭한 연구자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권위적이지 않다고 한 코소토 선생의 말처럼 이번 방문을 친절하게 맞아주신 모든 분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며 통역에 도움을 준 경희대 한약학과 추명정 학생에게도 지면을 통해 감사를 드린다.

백유상/ 경희대 한의대 원전학교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