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51)- <仙僧秘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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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51)- <仙僧秘訣>
  • 승인 2010.05.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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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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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僧도 알아야 할 救急知識

고의서 산책(451)- <仙僧秘訣>

 

 


山僧도 알아야 할 救急知識

한글기록 많아 민간견문 채록 추정
仙家 服食 ‘扶桑至寶丹’ 효능도 소개


석탄절을 맞이하여 佛家 傳統의 의학자료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하자. 표지의 서명은 <선승비결>로 되어 있으니 어느 이름 모를 암자에서 수도하던 禪僧이 산중 생활에서 꼭 필요한 구급의약 지식을 간추려 모아 놓은 것으로 보인다. 필사본 1책으로 거칠게 변해버린 겉모습만 보아도 이 책이 그간 구도자의 운수행각 못지 않게 모진 풍상을 겪으며, 제 구실을 다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속가의 책이 아닌 만큼 책을 쓴 이의 이름자나 사유를 적은 글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목록이 앞쪽에 붙어있는데 제1장 中風昏仆로부터 제92장 婦人胸膈乳兒腹痛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구급질환이 차례대로 나열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제목이 좀 더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고 간단한 처치법이 몇 가지씩 열거되어 있는데, 조문마다 권점을 사이에 두어 구분해 놓았다. 또한 간혹 한글로 약명이나 병증을 혼용하여 기록하거나 한글로만 기술한 곳도 적지 않아 민간에서 그때그때 보고들은 바를 채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대체적으로 본문의 구성은 기존의 ‘구급방’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해 보인다. 우리가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다급한 병증은 거의 망라되어 있는데, 중풍, 파상풍, 담궐, 尸厥, 卒死, 中惡 등 위중질환과 金傷, 打撲傷, 打壓傷, 筋斷骨折, 刺傷 등 상해, 그리고 음식과 諸藥中毒, 邪祟, 癲狂, 霍亂, 誤呑金針, 井塚卒死轉筋, 自縊死, 溺水死, 凍死 등 사고와 구급질환뿐 아니라 부인, 소아, 두진 등 일상질환에 이르기까지 모두 망라되어 있다.

흥미로운 기록으로는 43조의 餓死를 들 수 있다. 흉년이나 난리통에 먹을 거리를 찾지 못하여 굶주려 죽는 자가 많았을 것인데 이때 한꺼번에 음식이나 고기를 주면 급사하게 되니 처음에는 묽은 죽을 조금씩 먹게 하여 장이 점차 활동하게 만든 다음, 하루가 지나거든 점차 죽을 되게 하고 며칠 후에 진밥을 먹여 평소대로 돌아오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또 구활할 수 있는 식재료로는 황정이나 삽주뿌리, 도토리, 연실, 토란, 무, 대추, 밤, 개암, 잣 등이 등장한다.

본문 가운데는 胡僧이 전해주었다는 처방도 수재되어 있다. 扶桑至寶丹이란 약방으로 뽕나무잎(桑葉)과 검은 참깨(巨勝子)로 환약을 빚어 장복하면 노인도 기력을 되찾고 백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진실로 仙家에서 服食할 만한 상품약이라고 적혀 있다. 예전에야 먹을 것이 궁했던 산 속의 선방에서 애용했을 처방이지만 요즘엔 온갖 오염된 음식을 물리치고 길어진 수명에 발맞추어 적게 먹고 신진대사를 높여줄 노인섭생의 묘방으로 재고해 볼만 하다고 하겠다.

烟炭熏毒조에는 재미난 사실을 알 수 있다. 70∼80년대 겨울철 연탄가스중독으로 비명횡액을 당하는 사람이 많았고 추위가 다가오면 응급 환자가 적지 않게 발생했는데 민간에서 응급처치법으로 동치미국물을 권유하곤 했다. 이 책에는 연기를 마시고 질식된 경우에 生蘿葍 즉 菁汁을 먹이라고 되어있는데, 그 옛날 백성들이 난리를 만나 석굴에 숨어들었는데, 이들을 잡기 위해 연기를 피워 질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이때 사경에 다다른 사람들에게 생무우를 씹게 하여 소생시켰다 하니 효과에 앞서 그 유래가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권말에는 藥銘記라고 이름 붙인 약성가가 붙어 있고, 불전에서 唐瘧이나 몹쓸 고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독송하던 주문들이 몇 가지 수록되어 있어 이 책이 불가에서 병든 이를 치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던 것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올 봄 입적한 法頂 스님은 입산할 때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좋아했던 애장서 가운데 고르고 골라 가지고 간 몇 권의 책이 산속생활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 그 때의 깨우침을 수필집 <무소유>에 담아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속세에서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세간의 지식들이 정작 산중에서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에 인간세의 가치판단에 문제가 있음을 갈파하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중생을 질고에서 구하고 최소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무엇인가를 돌이켜 보게 한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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