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충열 교수의 중국철학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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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충열 교수의 중국철학사1
  • 승인 2010.04.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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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영

홍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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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내경으로 가는 교량
황제내경으로 가는 교량

한국 학자가 처음 정리한 중국철학사

김충열 교수의 중국철학사1 - 중국철학의 원류
김충열 지음. 예문서원.

경희대 한의대 예과생을 대상으로 한 작년의 독서지도 프로그램 목록을 보다가 골똘해졌다. <자본론>은 있는데 <자본의 시대>는 없고, 철학은 있는데 철학사가 없다. 어떤 학문을 하든 먼저 그 학문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읽어야 한다. 이는 김충열 교수의 말이다. <관자>, <논어>가 목적지라면 철학사는 자동항법장치이다.

이 책은 한국 학자가 처음으로 정리한 중국철학사이다. 짧은 중국어 믿고 중국여행 갔다가 사투리에 된통 혼나고 돌아와 듣는 한국말이 이런 느낌일까. 역사가라면 피해 가기 어려운 우리 민족의 연원에 대한 저자의 견해도 덤으로 들을 수 있다. 우리 역사와 철학사의 공백기를 미루어 짐작할 만한 단서도 여기저기 보인다.

저자는 하, 은, 주 삼대의 철학을 논한다. 이 시기는 한의학이 태중에 자리 잡기 전이다. 뱃속 열 달보다 남자의 하룻밤 정성이 중요하다고 했든가. 한의학이 황제내경에서 황로사상으로 자양되기 전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농경문화인 하와 유목문화인 은이 만났다. 경험적 자연천과 신앙적 주재천이 얽혀 만리장성을 쌓았다. 하와 은의 정기를 받아 탄생한 서주의 인문사상은 천이 지녔던 일의 권능을 무너뜨리고 천‧지‧인의 구도를 성립시키는 한편, 음양이원론의 모태를 형성했다.

이처럼 이 책은 한의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황제내경으로 가는 다리를 놓아준다. 황로사상을 궁구하여 황제내경과 연계시킨 다른 연구자의 저술도 참고할 만하지만(<몸·국가·우주 하나를 꿈꾸다>, 김희정, 궁리출판사), <중국철학사>를 통해 황로사상의 밑그림까지 확인한다면 적어도 우리는 코끼리 뒷다리와 엉덩이까지는 만져본 것이다.

철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저자의 건강한 철학관으로 빈틈없이 메워놓은 이 책을 단순히 철학사 책이라 부르기가 미안하다. 이 책은 철학이 현학이 아닌 현실임을 상기시킨다. 서양철학에서 빠져들기 쉬운 신학의 함정을 무심히 보여주면서, 철학은 인간학, 생활학임을 일깨운다.

아쉽다. 저자는 총 일곱 권으로 중국철학사를 기획하였으나 1권만 내놓은 채 세상을 등졌다. 논문들을 모아 펴낸 <중국철학산고>가 이미 있어 위로가 되지만, 통사의 매력만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예과시절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온갖 번역서의 소화 덜된 문장에 눌려 나의 지성을 의심하느라 세월 보내지는 않았을 듯하다.

홍세영/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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