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47)- <三和子鄕藥方>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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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47)- <三和子鄕藥方>①
  • 승인 2010.04.0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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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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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고려의 鄕藥醫方

고의서 산책(447)- <三和子鄕藥方>①

 

 


부활하는 고려의 鄕藥醫方 

조선이 새로 건국된 이후 고려의 많은 의서가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향약구급방>이 중간(1417년)된 것 말고는 고려의 의서가 다시 조선조에서 간행된 경우가 없으며, 전존되던 고려 의서는 세종대에 전개된 대규모 편찬사업에서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에 선별 수록된 이후로 임진‧정유 양대 왜란을 맞아 그나마 傳本조차 거의 인멸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고려시대 향약의학의 실체를 그려보기에는 많은 애로가 있다.

<三和子鄕藥方>은 고려 말에 폭 넓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향약의서이다. 이 책은 저자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고 현재 원본이 전해지지 않아 失傳醫書로 분류하고 있다. 다만 權近의 문집인 <陽村先生文集>에 남아있는 <鄕藥濟生集成方> 서문에 “일찍이 <三和子鄕藥方>이 있었는데, 자못 간단하고 요긴한 것만 뽑아 놓아, 논평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너무 간략함을 결점으로 여겼다. 이에 判門下府事 權仲和가 徐贊에게 시켜 수집한 내용을 더하여 <簡易方>을 짓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 책은 아직도 세상에 널리 퍼지지 못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이 책이 <鄕藥簡易方>의 저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같은 책에 실린 <향약제생집성방> 발문에는 “또 醴泉伯 權仲和와 더불어 그가 전에 저술한 <향약방>을 토대로 다시 더 수집하여 全書를 만들어서 中外에 반포하여, 모두 지역에 따라 약을 구하고 병에 따라 치료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하여 <향약간이방>이 <향약제생집성방>의 저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 관련 기록 전무… <鄕藥簡易方> 저본
임상의약 경험 향약의서 備預百要方가 모태
한의고전명저총서DB 흩어진 유문 모두 복원


그런데 <향약제생집성방>이 증보된 것이 곧 <鄕藥集成方>이므로 <삼화자향약방>은 <향약간이방> 및 <향약제생집성방>, <향약집성방>으로 이어지는 여말선초 향약의서의 계통에서 가장 원천을 이루는 중요 저작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실물이 남아있지 않고 문헌 기록도 미미하여 관련 연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향약집성방>에 일부 유문이 남아있어 이를 바탕으로 <삼화자향약방> 조문의 연원에 대한 연구나 간행 시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한편 그간의 연구에서 <의방유취>에 나타나는 여러 방서와 <經史證類備用本草>를 기준으로 연원을 조사하여 이 책이 <備預百要方>을 모태로 삼았음을 밝혀내었다. 하지만 <향약집성방>에 남아있는 <삼화자향약방>의 유문들 중 일부가 빠져 있어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이들 일련의 향약의서의 계통에서 정점을 이루는 <備預百要方>이 고려 말 독자적인 우리 민족의 임상의약경험이 담긴 향약의서라는 점이다.

그간 <御醫撮要> 및 <簡奇方>, <瘡疹集> 등 몇 종의 실전된 의서를 복원한 사례가 있었다. 이 모든 성과들은 <醫方類聚>와 <향약집성방> 등에 전래 의서들을 정보 처리한 한의고전명저총서DB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삼화자향약방>의 복원도 이러한 전산 검색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신속하고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유문을 누락시키지 않고 복원할 수 있었다.

이번 복원에서는 <향약집성방>에 남아있는 유문을 중심으로 <醫方合編>이나 <醫寶> 등 다른 의서의 인용문을 보충하여 마무리하였다. 아직은 원모에 미흡함이 많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600여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三和子鄕藥方>의 복원을 자축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향약의학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안상우/ 한의학연구원 전통의학정보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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