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44)- <醫學撮要>
상태바
고의서산책(444)- <醫學撮要>
  • 승인 2010.01.29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우

안상우

mjmedi@http://


고의서산책(444)- <醫學撮要>



마음이 온몸의 주인, ‘작은’ 東醫寶鑑 

이 책의 겉표지나 내지에는 ‘千六集’이라는 서명이 붙어있는데, 목차의 첫 장에는 제목이 ‘醫學撮要’로 돼있 다. 한눈에 보아도 <동의보감>의 체제를 그대로 준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따로 편별 구획은 하지 않았다. 맨 먼저 身形, 精, 氣, 神으로부터 소변, 대변까지 內景篇의 편차가 앞머리에 들어있다. 이어 頭, 面, 眼, 耳, 鼻로부터 前陰, 後陰까지 외형편의 항목들이 이어지고 天地運氣, 審病用藥으로부터 내상잡병에 이어 부인소아에 이르기까지 잡병편의 여러 항목이 골고루 망라되어 있다. 다만 이후 탕액편과 침구편이 빠진 것이 구성상 <동의보감>과 가장 차이가 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본문을 펼쳐보면 각 항목마다 긴요한 내용의 논설 몇 조문과 처방만을 선별하여 편집한 것이 <동의보감>보다 차라리 <제중신편>과 유사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심지어는 항목의 소제목만 열거하고 상세한 내용은 과감히 삭제해 버린 곳이 많다. 아마도 번쇄한 이론과 복잡다단한 여러 의가의 학설이나 감별 진단 같은 것들은 실용에 시급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금과옥조로 삼을 만한 명구를 놓치지 않고 표제어로 뽑아 놓는 솜씨를 보여주는데, “神統於心, 氣統於腎, 形統於首”라고 한 구절이다. 이것은 神門의 ‘神爲一身之主’에 들어있는 작은 글귀인데, 과감하게 전면에 등장시켜 놓았다. 이 같은 사례는 다른 병증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에 따라 변용된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氣門의 경우에는 아예 몇 조문의 소제와 내용 가운데 주요 골자를 압축하여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제시하기도 하였다. “氣爲精神之根蒂, 氣者神之祖, 精乃氣之子, 人受氣穀, 膻中爲氣之海, 肺室也.”

병증문, 저자의 독특한 시각 돋보여
臨證요점 간결하게 정리한 임상방서
탕제 위주 처방… 임상 활용도 높아

기실 이와 같은 편술방식은 이미 허준이 역대 문헌의 정수만을 가려 뽑아 대의를 잃지 않고 독자적인 기술방식으로 재편해낸 것과 동일한 방식을 원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본서가 <동의보감>의 내용을 그대로 준용하고 있는데도 새로운 의서로 거듭날 수 있는 이유이다. 아울러 이 책의 편집체계는 <제중신편>의 경우와 매우 흡사한데, 앞서 필자가 이 책을 한번 보고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기문에서는 오직 ‘氣不足生病’ 한 조항만을 채택하여 표제로 삼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아마도 허로소기로 인한 제반 질병이 모두 虛火와 사기를 불러 병이 생기게 된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통치방으로는 ‘通治氣藥’에 제시된 蘇合香元과 至聖來復丹을 실어 놓았다.

아울러 저자의 임상적인 견해가 엿보이는 곳도 찾아볼 수 있다. 淋門의 苦杖散은 소변 가운데 모래알 같은 結石 조각이 빠져나오는 沙淋에 쓰는 처방이다. <동의보감> 원문에는 虎杖根을 가늘게 잘라 1合에 물 5잔을 붓고 달인다는 말이 있는데 缺文이 있는지 ‘每一合兩一, 水五盞煎耗其四’라는 문구가 있다. 문구만으로는 해석이 애매한데 이 책의 저자는 두주에 ‘一合卽一兩也’라 주석을 달고 원문도 약재 1냥에 물 5잔을 붓고 달이는 것으로 명료하게 바꿔 놓았다. 바로 이런 부분이 저자의 임상적 판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은 이러한 면에서 성격상 이론서나 체계적인 종합방서라기 보다 임상에 유효적절한 처방을 요령 있게 골라 놓은 임상방서에 가깝다. 물론 처방도 긴요하지 않은 내용이나 장황한 설명을 과감히 축소하고 臨證의 요점을 중심으로 간결하게 정리해 놓았다. 또 처방명의 상단에 간략하게 주치나 적응증을 한두 마디의 표현으로 압축하여 적어 놓아 한눈에 찾아보기 좋게 표기해 둔 것도 간편함을 배려한 장치 가운데 하나이다.

맥법은 꼭 필요한 항목의 경우에 한해서만 간혹 요약해 놓았으며, 치법은 거의 탕약 처방 위주이고 단방약이나 식치방, 혹은 침구치료법 등이 거의 수재되어 있지 않다. 이로 보아 저자는 아마도 약방을 운영하는 임상의가로서 탕제만을 위주로 처방한 의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발도 없고 지은이도 알려져 있지 않아 저술 경위나 편찬 동기를 전혀 알기 어렵다. 하지만 담겨진 내용과 책의 성격으로 보아 17~18세기 <동의보감>을 전범으로 삼아 임상적인 활용도를 높여 간결하게 개편한 임상의가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이나 이름 석자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평생 경험한 바를 손때 절은 한 권의 책으로 남긴 무명의 의가들, 우리는 그들의 노고를 밑바탕으로 오늘의 한의학을 일구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