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학과의 신설과 한약사 배출
한약사 역할 제고… 한의학 내실 더욱 공고해져 진로 다양화 직능 전문화로 한약사 비전 밝다
상생‧ 공존, 한의학 살길이다(2)- 한약학과의 신설과 한약사 배출
이번 회에서는 한약분쟁의 결과로 한약학과가 만들어진 과정과 지금까지의 한약사 배출 현황에 대하여 알아본다. 1993년 1차 한약분쟁이 경실련 중재안을 바탕으로 일단락되었을 때 이미 3년 후인 96년도에 한약학과를 설치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분쟁의 후유증 속에서 세부적인 개설안을 확정하지 못하다가 신입생 모집을 불과 몇 달 앞둔 95년 9월에야 여러 진통 끝에 이를 발표하게 된다. 그때까지 약계는 한약학과 설치를 유보하거나 기존 약학대학에서 한약 관련 이수과목 95학점의 보강교육을 통하여 이를 대체하여야 한다고 일관되게 요구하였고, 한의계는 이에 맞대응하여 약속대로 한약학과를 신설하고 이를 한의과대학 내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부 확정안의 골자는 한약학과를 신설하되 한의학과 약학의 공동연구 가능성 등을 고려해 한의대와 약학대가 함께 있는 대학에 한약학과를 신설하도록 하며, 96년도에는 초기단계임을 감안하여 규모를 최소화하여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의약분업의 전제 하에 양약학의 학문적 기초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약대 내 설치를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96년부터 경희대학교와 원광대학교의 약학대학 내에 20명의 정원으로 한약학과가 신설되었고, 98년부터는 우석대학교에 신설하고 정원을 늘려 3개 대학 40명씩 총 120명의 정원으로 현재까지 운영되어 오고 있다. 2000년에 첫 졸업생이 나오면서 제1회 한약사국가고시가 시행되어 28명이 합격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약 80여명의 한약사가 배출되고 있으며 2009년 현재 복지부 면허등록자는 1,365명이다.
“이제는 한약학과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한의계와 약계의 이해가 상충하는 영역이 줄어들고, 문제를 현실에 기반해 합리적 사고로 해결하려는 세대들로 인적 인프라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한의계와 약계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절충하면서 만들어진 한약학과는 계획단계부터 준비가 미흡했으며 직능에 대한 정확한 수요예측 없이 규모를 최소화한 것도 상징적인 학과 설치에만 비중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약대 내 설치의 명분으로 한의학과 약학의 공동연구를 표방하였으나 실제 두 학문 간의 연구 교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특히 졸업생의 진로에 있어서는 여전히 한약사의 직능범위를 둘러싸고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2000년 1기 한약사가 배출된 이후 실제 개업을 통한 자립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자 2001년에 수업 거부 끝에 학생‧ 교수‧ 학부모가 폐과 신청을 하는 사태가 있었고, 2003년에는 원광대 한약학과 대학원에서 운영하던 한약국이 한의대 재학생들에게 한약 주문을 받고 판매한 것에 대해 고발과 과징금이 부과되는 과정에서 한약사의 ‘1인 시위’가 이어지기도 하였다.
최근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한약학과 총 졸업생의 39% 정도만 한방병원 또는 한약국 및 약국으로 개업, 취업을 하였으며 기타 공직이나 제약회사 근무가 22%, 대학원 진학이 10%이었고, 전공을 바꾸거나 전혀 취업하지 못한 경우가 30%에 육박하였다. 근본적으로 졸업생이 자신들이 선택한 본업에 안정적으로 종사하지 못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 하에서는 대학교육과 외부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한약학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최근에 발생한 원외탕전실 도입 사태와 그로 인한 약사제도일원화 주장 등은 한약학과 재학생과 교수, 졸업생들에게 가장 절실한 이슈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물론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관련 정책 결정에 있어서 정치적인 개입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 한약학과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이 여전히 많은 편이나 과거처럼 어느 단과대학에 설치해야 하는가를 놓고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적어졌다. 이는 의료계 전반적으로 한의계와 약계의 이해가 상충하는 영역이 줄어든 데에 원인이 있으며, 또한 모든 문제를 현실에 기반하여 합리적으로 사고하려는 세대들로 사회 구성이 바뀌고 있는 것도 하나의 긍정적인 요소이다. 내부적으로는 한약학과 설립 이후 십여 년 동안 교수인력 확충과 연구분야 확대를 통하여 조금씩 전문학과로서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으며, 1,000명이 넘는 한약사 배출도 스스로 자신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여러 관련 직능들과 합리적인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인적 인프라를 갖추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한약사제도와 한약학과에 관한 체계적인 정책연구보고서가(2005, 임종필, 한약학과 학제개편 타당성 연구) 본격적으로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한약사의 직능범위와 업무내용에 대하여 정확한 근거와 미래 예측을 바탕으로 여러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한의계의 관점이든 약계의 관점이든 한약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취급하는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의계에서는 안전한 한약을 정확한 효능에 따라 투여하여 치료효과를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그 프로세스 중에서 한약사의 역할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수요를 제대로 충족하였을 때 한의학은 학문적으로 더욱 내실을 다지게 되고 위상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약사의 진로도 훨씬 다양화되고 업무도 전문화할 것이므로 한약사의 비전은 결코 어둡지 않다. 다만 대의를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솔직하게 미래를 논의하는 장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로 간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이다.
백유상/ 경희대 한의대 교수
김진주/ 경희대 약학대 한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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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든 와중에 원외 탕전에 관한 법률은 과연 "한의사가 한약사와 동반자인가?" 하는 의문을 줍니다.
여러 한의사님들, 협력하고 상생하고 같이 노력하면 많은 시너지가 생깁니다. 한약사 문제 말고도 고민이 많으시겠지만, 전향적인 사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