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41)- <山家要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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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41)- <山家要錄>②
  • 승인 2010.01.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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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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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毒 함께 담긴 세종시대 양주법

고의서 산책(441)- <山家要錄>②

藥毒 함께 담긴 세종시대 양주법 

앞 쪽의 잃어버린 내용을 제쳐두고서는 酒方, 즉 釀酒方이 가장 선두에 배열되어 있다. 기존에 알려진 양주방이나 술방문이 대개 1800년대에 작성된 것들이며, 빨라야 1600년대를 상회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기에 수록된 양주방들은 조선 전기의 양주법들을 채록한 것으로 보여 조선조 초기의 식치 혹은 약주 제조법을 고구해 볼 수 있는 연구 가치가 높은 내용들이다.

특히 이 술방문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소제 아래 달려있다. “米必百洗”, 쌀은 반드시 100번을 씻어야 한다는 것인데, 술을 담그기 위한 준비부터 엄청난 정성과 공력이 소요된 것이다. 첫머리에 取燒酒法을 시작으로 香醪, 玉脂春, 梨花酒, 松花天露酒(一名 紅露酒), 三亥酒, 碧香酒, 鴉黃酒, 綠波酒, 流霞酒, 杜康酒, 竹葉酒, 呂家酒, 蓮花酒, 黃金酒, 進上酒, 乳酒, 節酒, 四斗酒, 五斗酒, 六斗酒, 九斗酒, 牟米酒, 三日酒, 七日酒, 粘酒, 無麴酒, 少麴酒, 辛薄酒, 夏節三日酒, 夏日節酒, 過夏白酒, 孫處士夏日酒 등 50여 가지 다양한 전통술의 향연이 펼쳐져 있다.

그 중에서도 三亥酒, 碧香酒, 粘酒, 綠波酒, 流霞酒, 浮蟻酒, 黃金酒 등은 후대의 양주방에도 그대로 전승돼 강한 세전성을 갖고 있는 전통술임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한편 각 술마다 이름 아래 쌀 몇 말, 몇 되가 소용되는 지를 적어두었기 때문에 손쉽게 전체 분량을 감안하여 제조할 수 있다.

조선초 식치‧ 약주제조법 고구할 연구자료
좋은 누룩 구하고 술맛 보관법 등도 수록


또 여름철에 술이 상하지 않도록 단속하는 방법(夏酒不酸酒), 급할 때 청주 만드는 방법(急時淸酒), 향온주 빚는 방법(香醞酒造釀式), 오래도록 술맛이 변하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收酒不損毁), 또 좋은 누룩을 구하는 방법(良麴法), 누룩을 만드는 방법(造麴法)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화려한 주방문들도 당대에는 많은 폐단을 야기하고 양식이 넉넉하지 못했던 관계로 심심치 않게 관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종대왕 재위 15년째이던 1433년에는 당시 藝文館 應敎였던 柳義孫(1398∼1450)에게 지시하여 과도한 음주를 경계하는 글을 지어 주자소에서 인쇄하여 반포하게 하였다. 그 내용의 요지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대개 술로서 화를 불러일으킴이 심하다. 어째서 穀食을 없애고 財物을 허비할 뿐이겠는가? 안으로는 心志를 어지럽히고 밖으로는 威儀를 잃어서 혹은 부모에 대한 奉養을 폐하고 혹은 남녀의 分別을 문란케 하며, 크게는 나라를 잃고 한 집안을 망치고 작게는 (자신의)性品을 해치고 생명을 잃어버려 綱常을 더럽히고 風俗을 무너뜨리는 등 이루 다 말하기 어렵다”고 말해 과도하고 무절제한 음주 관습으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아! 술로써 화를 빚어내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또한 무슨 심사인가? 비록 국가를 염려하지는 못할망정 자기 한 몸의 성명조차 돌아보지 못한단 말인가? 朝臣 중에 학식이 있는 사람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閭巷의 백성들이야 무슨 짓을 못하랴”라고 통탄하여 당시 사대부 관료 가운데서도 무절제한 과음으로 몸을 상하고 파탄에 이른 인물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에 걸쳐 금주령이 내려지곤 했는데, <중종실록>에는 ‘酒戒文’이 수록되어 있고 영조 임금도 친히 ‘御製戒酒綸音’을 펴내었다. 한편 영조의 戒酒綸音’에는 술중독의 폐해를 경계하고 해독하는 요법을 담아 기록하였는데, 당시 만연해 있던 4색 붕당의 폐해를 은근히 술에 빗대어 비유한 것이다. 여하튼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술을 즐겨하여 술을 빚는 다양한 양조기법을 개발하고 전승시켜 왔다는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술은 우리 의학에서도 일찍이 ‘百藥之長’이라 하여 모든 약 가운데 으뜸으로 여겨왔고 <황제내경>에도 ‘湯液醪醴論’을 두어 약을 달여 먹는 탕액법이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약술을 담가 사용하는 방법이 상고시대로부터 이어져 왔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 자세히 살펴보니 <동의보감> 잡병 편에도 약술 만드는 법이 수재되어 있는데, 枸杞子酒, 地黃酒, 天門冬酒, 戊戌酒, 神仙固本酒, 葡萄酒, 蜜酒, 鷄鳴酒, 白花春, 煮酒, 作酒本 같은 여러 종류의 약술에 대한 제법과 효용이 적혀 있다.

食醫로서 上醫治未病 구현한 전형적 의인
<동의보감>도 枸杞子酒 등 약술제법 기록


조선 전기의 酒造 방식이나 소주의 전래 그리고 누룩 제조법이나 전통 약용주의 효능에 대해 폭 넓게 상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헌기록을 세종대 명의 全循義가 남긴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그가 ‘上醫治未病’의 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던 食醫로서 전형적인 의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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