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자 한 명도 없는 ‘대한민국 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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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자 한 명도 없는 ‘대한민국 학술원’
  • 승인 2009.12.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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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기자

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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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학문 푸대접… 서양학문 무비판적 추종 결과
한의학 전공자 한 명도 없는 ‘대한민국 학술원’
전통학문 푸대접… 서양학문 무비판적 추종 결과

한의학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는 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의학을 주류의학에서 지웠다. 그러나 1951년 한의사 제도가 부활되자 1955년 동양의약대학(경희대 한의대 전신)이 설립되고, 1966년 경희대 한의학과가 설치돼 현대 한의학 관련 고등교육이 이뤄졌다. 지금은 전국에 12개 한의대가 설치, 운영 중이다. 매년 850명의 한의사가 배출된다.

더구나 한의학 역사성과 학술적 성과는 <동의보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이미 세계적 공인을 받은 상태다. 헌데 대한민국 학술계를 상징하는 학술원이 한의학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분과회에도 없고, 회원으로 한의학 전공자를 단 한 명도 두지 않았다. 때문에 의도적 ‘이지메’가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 학술원은 인문사회학/자연과학으로 대별되고, 그 밑에 각 6개 분과회와 5개 분과회를 두고 있는데 자연과학 분야 제4분과(의학/수의학/치의학/약학)에서 한의학은 찾아볼 수 없다. 한의계는 또한 학술원이 매년 시상해온 학술원상 추천도 요청 받은 바가 없다. 한의학은 분야 자체가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회원을 추천한 적도 없다<참조 관련 박스기사>. 이는 한의학의 학술적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의학 수의학 등 포함된 분과회에 한의학 없어
학계 무관심 일관… 학술원 모르는 경우 태반

반면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는 한의학 전공자가 2명이나 포함돼 있다. 이혜정 경희대 한의대 교수와 김성훈 경희대 한의대 교수가 그들이다. 기초과학연구진흥법에 근거해 설립된 한림원의 경우 학술원과 달리 기초과학 분야에 한정돼 있고, 정원이 500명이다. 기존 회원 3인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우선 진입이 가능하고, 이후 논문 등 학술 업적에 대해 내부 심사를 통해 인정받으면 정회원이 된다.

때문에 한림원과 학술원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학술원은 국가 조직이며 회원에게 매달 150만원의 수당을 준다. 정원도 150명이고, 각 분과회 정원도 15명으로 한정돼 있다. 학술원 회원의 임기는 4년이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연임이 가능하며 종신회원이 6명에 이른다. 현재 제4분과에는 종신회원 1명을 포함해 14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1명의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있다.

학술원 회원 선출은 철저히 기존 회원들의 심사기준에 따른다. 심사기준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고 분과회의를 거쳐 총회에서 최종 결정될 뿐이다. 즉 기존 회원들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회원 선출의 불투명성, 폐쇄성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학술원의 상징성은 무시하기 어렵다는 게 학계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학술원 회원이 전무한 데는 한의학계 책임이 크다. 원로 학자인 A한의대 교수는 “학술원 회원이 되기 위해 한의학계가 나섰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며 “그동안 한의학계가 학술원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의 지적대로 한의대 교수들 중에서는 학술원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또는 한림원과 학술원을 헷갈려 하는 인사가 적지 않다. B한의대 교수는 “현대 고등교육 기관에 한의학 전공이 생기긴 했지만 체계적인 발전을 이룩하지는 못한 듯하다”며 “한의학의 학술적 성과가 쌓아가고 있는 만큼 이제 학술원에 대해 관심을 갖고 내부 논의를 진행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역설했다.

논의 진행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건 분과회에 한의학을 넣는 일이다. 학술원 관계자는 “분과회에 새로운 학문 분야를 넣는 것은 학술원 총회를 거쳐야 한다”며 “그동안 몇몇 학회가 자신들의 학문 분야를 분과회에 넣어달라는 의견 요청이 왔지만 안건이 쉽게 통과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분과회에 들어가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는 곳으로는 신문방송학, 사회복지학 관련 학회가 있다. 한국언론학회의 경우 학술원에 학문 분야 추가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며 학술원 분과회 추가라는 숙원사업을 이루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술업적 높은 추천 학자 있나” 자성론 일어
분과회 가입부터… 한의학 별도구성 추진할만

한의학 분야가 진입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분과회 정원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정원이 늘어나면 150만원의 회원 수당도 늘어나고, 이는 정부 예산과 직접 관련돼 있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학술원 내부에서 정원을 늘리는 문제가 제기된 바 있으나 인구가 우리보다 2배나 많은 일본의 학상원도 정원이 150명이란 점을 들어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학술원이 원로학자들의 모임이고 보수적 성격이 짙다 보니 논의 자체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학술원 회원 담당 정만수 씨는 “안건으로 올라와 있다고 해서 의결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다”며 “학술원 조직의 특성을 헤아려 길게 보고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존 분과회원들의 입김이 센 만큼 이에 대한 대처도 필요하다. 학술원 관계자는 “한의학의 경우 자연과학 분야 제4분과에 소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의학계 원로들의 성향에 따라서 안건 상정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며 “한의학에 대해 배타성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장현 대한한의학회장은 학술원과 관련 “그동안 학회의 자리를 확고히 잡는데 매진하느라 학술원 진입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며 “앞으로 학회 내부에서 관심을 갖고 추진 방향에 대해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다.

학문적 업적을 쌓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한의학계의 학술적 성과에 대해 자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C한의대 교수는 “학술원 분과회에 한의학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우리 내부의 반성도 필요하다”며 “원로 한의학자 중에서 학술원 회원으로 추천할 만한 학자가 몇 명이나 될 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학술적 성과를 일궈낸 학자들에 대한 격려와 응원 역시 필수조건이다. 이혜정 경희대 한의대 교수는 “내가 한림원 회원으로 선출됐을 때도 한의학계에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며 “대내외적으로 학술적 공로를 인정 받은 한의학자가 많이 나오려면 한의학계가 학자들을 격려하고 지원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지연 기자

박스기사- 학술원 회원 자격과 선출 절차

학술원 회원의 자격, 임기 및 선출 절차는 대한민국 학술원법 제4조 내지 제6조에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학술원 회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교육법에 의한 대학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교를 졸업하고 학술연구의 경력이 20년 이상인 자로서 학술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자’ 또는 ‘학술연구의 경력이 30년 이상인 자로서 학술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자’로 회원심사위원회(분과회의)와 부회에서 선출되고 총회의 승인을 받은 학자가 회원이 될 수 있다.

회원의 임기는 선출된 날부터 4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다. 회원 선출 절차를 보면, 신규 회원 충원계획을 수립→신규 회원 충원 인원 수 및 추천 학술단체 협의(2월 분과회)→선출 예정 인원, 전공 분야, 후보자 추천단체 지정 심의 및 의결(3월 임원회)→추천 의뢰 및 추천자 접수(3~4월)→심사위원회(5월 분과회 의결)→회원 후보자 결정(7월 부회결정)→회원 후보자 선출 승인(7월 총회승인) 등의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 추천자란 학술원 회원 또는 학술원이 지정하는 해당 분야의 학술단체장(단 학술원 회원은 소속 분과 후보자 1인에 한함)을 일컫는다. 심사위원회는 회원 자격심사 및 예선, 정족 수는 재적 과반수 출석,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091124-보도-학술원-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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