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09 한의원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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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본 2009 한의원 탐구생활
  • 승인 2009.12.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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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성 기자

최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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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동의보감에 웃고 전문의에 울다

키워드로 본 2009 한의원 탐구생활

 
한의계 동의보감에 웃고 전문의에 울다
내년 의료환경 변화 개원가 고민 가중

저는 한의원을 운영해요. 오늘도 어김없이 오전 10시에 한의원에 출근했어요. 황금 같은 일요일을 무료 뜸봉사로 보냈더니 좀 피곤하네요. 보람도 있지만 최근 어떤 국회의원이 아무나 뜸을 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법안을 발의하는 바람에 봉사활동이 많아진 게 사실이에요. 생각 같아서는 직접 그 국회의원을 찾아가 무면허자가 뜸시술을 했다가 사고가 일어난 각종 사례와 부당성을 알려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대기실 한 구석에 붙은 <동의보감> 유네스코 등재 포스터가 보여요. 별 관심 없어요. 등재로 인해 한의학 위상은 올랐는지 몰라도 내원 환자는 거기서 거기에요. 처음에는 사회 각계 각층에서 축하 메시지도 보내고 언론에서도 동의보감과 한의학의 우수성을 경쟁이라도 하듯 보도하더니 요즘은 그 놈의 석면파동 때문에 쑥 들어갔어요.

어제도 한의원을 찾은 한 여성 비만환자에게 ‘방풍통성산’을 처방하려다 실패했어요. 뉴스에서 석면 위해성이 보도된 후 한약을 복용할 경우 일단 남편과 상의해야 한다고 돌아가더니 그 다음부터 연락이 없어요. 사실 석면과 활석은 전혀 무관한데, 이런 일을 당하니 억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요.

이제는 생각하다 못해 간호사들 복장을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의 스타일로 바꿔 볼까 하는 생각까지 해봐요. 금방이라도 내원 환자 수가 2~3배는 늘어날 것 같아요.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져요.

오전 진료를 마치고 잠시 웹서핑을 해요. 오늘도 침 환자만 있고 약 환자는 없어요. 요즘은 남는 게 시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그러던 중 <신의>라는 한의학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기사를 접해요. 주연은 원빈이 유력하데요. 하지만 그보다 드라마 <제중원>의 여주연은 한혜진 인데, 신의 여주인공은 누군지가 더 궁금해져요. 한의학 열풍을 일으킨 <대장금>도 여주연 덕을 봤잖아요.

요즘 동료 한의사들 중에는 의료일원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이 있어요. 저도 현대적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일단 참아요. 일원화가 한의사의 개선된 진료환경과 실효성을 가져다줄 지는 의문이에요. 과연 그 길만이 살 길일까 고민도 해보지만 판단이 서지 않아요.

이렇게 심란할 때는 차라리 내년에 도입될 KCDO 공부나 열심히 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해야겠다고 마음 먹어요. 한의대 동기 녀석은 벌써부터 KCDO 공부에 올인한 지 한참 됐어요. 자칫 나만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와요. 가뜩이나 한의원 경영도 어려운데 질병코드 하나라도 더 공부해야 나중에 진료할 때도 편하고 경쟁력도 생길 거라고 자기 암시를 걸지요.

갑자기 약재 거래업체 영업사원에게 전화가 왔어요. 신종플루 때문에 전국에 난리래요. 그러면서 면역력을 강화시켜 신종플루를 예방하는데 홍삼이 인기라고 하네요. 하지만 홍삼은 이미 건기식이 된 지 오래에요. 건기식 매장은 홍삼이 없어 난리법석을 떠는데 왜 한의원은 한산한 지 답답해요. 저는 이런 심정을 청빈협 카페에 올려요. 아무도 리플을 달지 않았어요.

올해 12월부터 한방물리요법 보험화가 적용되는데 저는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의협 보험팀에 전화를 걸었는데 하루 종일 통화가 안돼요. 알아 봤더니 학생들이 전문의 문제로 한의협을 점거해 직원들이 업무를 못 보고 있대요. 학생들이 많이 춥겠다는 걱정과 함께 저도 빨리 신규 과목 전문의를 따야하는지 고민이 들어요. 이러다 양방 뿐만 아니라 같은 한의사 동료들과도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내년부터 급변하는 한의원 진료환경과 의료정책에 갈수록 고민만 가중돼요. 저는 오늘 따라 더 마음이 무겁네요. 갑자기 간호사한테 쪽지가 왔어요. 내년 연봉을 10% 올려달라고 하는군요. 이러니 술을 못 끊어요.

키워드: ▲동의보감 등재 ▲뜸 자율화 ▲신종플루와 홍삼 ▲석면 ▲신의 ▲일원화 ▲물리치료 ▲전문의

091221-보도-송년특집-키워드-2009(p)-최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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