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밖의 한의사, 그들의 삶(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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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밖의 한의사, 그들의 삶(9)
  • 승인 2009.12.0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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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성 기자

최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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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재 티테라피 한의원장
진료실 밖의 한의사, 그들의 삶(9)
이상재 원장이 한방차를 만들기 전 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다.

“한방차 티테라피스트 한의학 저변 확대할 것”
이상재 티테라피 한의원장

압구정에 있는 티테라피 한의원 입구에 들어서면 티테이블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 쪽 벽면에는 각종 약재를 투명 유리병에 담은 한방차 진열장과 전시용 한방차 세트가 자리를 잡고 있다. 진료실은 카페 안 가장 깊숙한 공간에 위치하고 있어 차를 마시러 온 손님들도 여기에 한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듯하다.

“한의사가 꼭 한의원만 하라는 법이 있나요? 한의학은 환자의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의료로써 영역 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곳곳에 적용 가능한 문화로써 영역이 공존합니다. 저는 한의학이 가진 다양한 문화적 가치와 가능성을 통해 미병(未病)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관리방법을 한의계는 물론 한국사회에도 선보이고 싶습니다.”

이상재 티테라피 한의원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담담히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 경희대 한의대에서 예방의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 재학시절 인간의 삶을 보다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이에 대한 경영 수익모델을 늘 고민했다고 한다. 한의학에 대한 그가 이러한 고민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가까운 동기들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와 동기인 모 원장은 “한 번은 국순당 전통주 만들기 공모전에 한약재를 이용한 술을 출품해 상을 받아온 것이 기억난다”며 “단순한 일은 참 싫어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하고 무엇인가 창조적인 일을 할 때 가장 활력이 넘치는 친구”였다고 회고했다.

한약 맛에 대한 배려 부족
매력 넘치는 한방차 세계

이 원장이 한약의 맛과 제형 변화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한 건 일본에서 겪은 특별한 경험 때문이다.

“예전에 일본에서 한약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샘플로 먼저 맛을 보게 한 후 선호하는 맛에 따라 약을 내주더라고요. 그 순간 우리나라는 왜 한약 먹을 때 코를 막고 먹어야 하고 먹고 나면 사탕을 먹어야 하는지 등 맛에 대한 배려가 참 부족했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이때의 충격(?) 탓인지, 이 원장은 몇 년 동안 한약이 가진 고유한 맛을 차로 만들 결심을 했다고 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박하나 감초, 곽향 등 한약재를 이용한 한방차 50여종을 탄생시켰고, 지금의 카페를 열었다. 그 중 이 원장이 개발한 향통차, 원기차, 온경차, 감모차 등은 커피나 홍차가 흉내낼 수 없는 깊고 그윽한 향과 맛을 낸다는 평이다.

이 원장과 인터뷰 도중 한글과 일본어로 표기된 ‘나만의 차’라는 설문지가 눈에 띄었다. 설문지에는 ‘머리가 자주 아프다’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다’ ‘손발이 찬 편이다’ 등 평소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들이 적혀있다.

“우리 카페를 찾는 손님들 대부분이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아직은 그 비율이 7:3 정도에 불과하지만 일본인들은 차를 마시고 난 후 선물용 한방차 세트를 구매하는 등 호응이 크고 우리나라 손님보다 객(客) 단가가 높은 편입니다. 여기에 설문지 작성 후 개인 별 변증에 맞는 차를 권해 주는 시스템에 무척 신기해 합니다.”

이 원장의 티테라피 카페는 현재 일본 후쿠오카와 나고야에 분점을 두고 있고 조만간 동경에도 제3호 분점이 문을 열 예정이다. 그는 티테라피 카페가 어느 정도 정상 궤도에 오르면 기(氣) 테라피요법과 마인드 테라피 프로그램도 개발해 특허를 낼 계획이다.

기 테라피요법은 <황제내경>에 있는 도인안교에 근거해 요가와 다른 형태로 평소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건강체조를 만들 생각이고, 마인드 테라피는 유․불․선에 나타난 전통적인 명상요법이나 마음 수련법 등을 소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도인안교 강좌 3D 애니메이션을 제작 중에 있다.

이 원장의 카페가 단순히 한방차만 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카페를 열자마자 그가 동시에 진행한 일은 한방차 티테라피스트(티컨시어즈) 양성이다. 보통 1달에 1~2회 정도 7~8명의 사람과 함께 한방차 만들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한 번 교육할 때마다 7주 정도의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한방차를 맛있게 끓이는 방법이나 브랜딩하는 법 등 단순한 기술교육 외에도 한의학에 대한 전반적인 기초지식과 체질이론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나중에는 생활 속에서 직접 한의학을 홍보하고 한방문화 저변을 확대하는 중대한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그가 배출한 티테라피스트들은 가정주부에서부터 교사, 전통 찻집 운영자, 회사원까지 다양하다. 티테라피스트 교육 초기에는 동료 한의사들로부터 ‘돌팔이’를 양성하는 것은 아니냐는 다소 우려스러운 지적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런 지적에 대해 “한의학의 우수성과 가치를 알고 경험한 사람들이 실제로 한의원을 찾는다고 생각한다”며 “한의학은 그 어떤 의학보다 뛰어난 의학이지만 이 강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어디가 아플 때 한의원을 찾아야 하는지 등은 아직까지 국민들에게 충분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상재 원장은 젊은 후배 한의사들을 볼 때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길 권한다. 본인이 개원의에 치중하기보다 한의학을 활용한 사업가로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의학이 가진 문화적 가치와 가능성을 특유의 젊은 감각으로 새롭게 재창조한다면 경제적인 보상 뿐만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구현에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한의사들에게 한의사 이외에 다양한 모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한의학의 가능성을 믿고 두려움 없이 모든 일에 도전해 보세요.”

<취재 후기>

티테라피 카페 21세기형 한의원 초기모델

눈 덮인 광야를 걷는 발자국이 훗날 걸어갈 이들의 이정표가 된다고 했든가? 이상재 원장과 인터뷰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남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 가면 성공도 재미도 없다”는 말이었다. 한의대를 졸업하면 개원을 한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스스로 거부한 그이기에 그의 이런 말이 설득력을 갖게 한다.

어쩌면 티테라피 카페는 21세기형 한의원의 초기 모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치료의학으로서 한의학이 아닌 문화로서 한의학이 얼마나 그 열매를 맺을지 궁금해 지면서 그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최진성 기자

091121-기획-진료실 밖의 한의사-이상재(p)-최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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