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부탄 국제아시아전통의학학술대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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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부탄 국제아시아전통의학학술대회 참관기
  • 승인 2009.09.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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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국제아시아전통의학학술대회 한국서 개최
부탄에서 열린 국제아시아전통의학학회


신호등조차 없는 소박한 마을이 수도인 부탄에서 국제아시아전통의학학회(International Congress on Traditional Asian Medicine)가 2009년 9월7일부터 10일까지 4일 간 열렸다.

부탄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세계 여느 빈국에서, 중국의 빈민지역에서 혹은 몇십 년 전 한국에서 볼 수 없던 정갈함이 넘친다. 우선 영어가 통하고 깨끗하며 매너를 아는 사람들이 많다. 부자도 적지만 딱히 가난한 사람도 적다. 마리화나가 도처에 잡초처럼 널려 있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외진 곳에서, 더구나 교통이 무척 불편한(부탄 파로공항을 다니는 비행기는 Bhutan DrukAir 하나 뿐이다. 그래서 부탄에 가려면 델리, 카트만두, 방콕을 경유해야 함) 곳에서 30여 국가의 200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학회가 열렸다는 사실이 내심 놀랍다. 이 학회는 IASTAM(International Association of Studies in Traditional Asian Medicine)이 주관하는 국제학술대회이다.

IASTAM은 1979년 호주에서 발족됐고 올해로 7번째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원래 이 모임은 아시아 전통의학이 현대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나중에 학술대회가 커지면서 아시아권 연구자들을 포섭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다양한 전공자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사들이 참여한다.

학회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학회가 열린 지역적 문제인지는 몰라도 유독 아시아계 참석자가 적어 이채로웠다. 한국에서 참가한 사람은 필자를 포함해 4명이고, 한·중·일·대만까지 합쳐도 20명이 채 안됐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구미인들의 아시아의학

아시아의학 하면 한의학 중의학 등 동아시아의학이 가장 큰 주제로 생각되는데, 이 학회의 구성과 방향은 달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중량급 인사들이 주로 포진해 있고 패널 발표자의 수가 많은 세션으로는 의학의 다중성과 통합의학 그리고 공중보건(Medical Pluralism, Integrated Care and Public Health), 아시아전통의학에 있어서의 여성과 성(Women and Gender in Medicine and Healing Across Asia), 효율과 실증을 위한 새로운 실험(New Frontiers in Effectiveness and Evidence), 생약 재배(Cultivating the Wilds), 티벳의학(Tibetian Medicine - Diagnosis, Treatment and the Practioner’s Experience) 등을 꼽을 수 있다.

내 생각처럼 중의학이나 한의학, 감포의학이 더 이상 아니다. 기실 이 학회에 참가한 인사들은 동아시아의학의 전공자이거나 임상가들이다. 중국의 문화, 의학, 한자 등에 대해 조예가 깊은데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학이나 중의학이라는 용어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세부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동아시아의학 아닌 것이 없지만, 이들은 이미 동아시아의학의 특색을 논하는 단계를 넘어섰고, 그래서 중의학을 대표로 하는 동아시아의학은 보다 진화된 주제 안에 이미 녹아 버린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티벳의학이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큰 명목상의 로컬토픽이 됐다.

서양인들이 그들의 ‘동의학’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와타나베 겐지 교수의 기조강연을 대하는 서양 임상가들 태도에서도 엿보였다. 와타나베 겐지 교수는 경희대학교 최승훈 학장님과 WHO에서 동서의학의 조화, 표준화를 위해 무척 열심히 뛰던 분이고, 이번 학회에서도 그 동안 WHO가 추구해온 방향과 성과에 대해 정리해서 발표하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의학의 실질적인 종주인 한·중·일의 대표가 만나 동아시아의학의 글로벌화, 표준화를 위해 노력한 성과가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한·중·일 3국의 일로만 비춰지는 듯싶어 못내 아쉬웠다.

미국 뉴욕의 Pacific College of Oriental Medicine에 다니는 Keiko Golambos의 인터뷰는 그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게이코는 “침술을 배우는데 그 문화적인 배경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실 전 어머니가 일본인이어서 일본 나아가 동양의 문화가 주는 힘을 많이 느낍니다. 그렇지만 같이 배우는 학생들 특히 저처럼 동양적 백그라운드가 없는 경우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때가 오지 않을까요”라고 역설했다.

중국 청대의 설진(舌診)에 대해 발표한 Nancy Holroyde-Downing는 서양의 동양의학연구자들이 어느 수준까지 진화할 것인지를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저는 중국의학을 배우긴 배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문화적 장벽이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진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서 원서를 읽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엄청난 것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미국 어느 대학에서는 중국의 고의서를 강의한다고 합니다. 유럽도 점점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낸시는 다소 앞서가는 특이한 경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점이다. 앞으로 낸시 처럼 동양학의 진수를 터득해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동양은 더 이상의 동양이 아니다.”


동서의학의 결합과 의료인류학


이번 학회에 모인 서양 임상가들은 전통의학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현대의학biomedicine과 융합·대립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한·중·일의 전통의학자들이 현대의학과 교류에서 고민하는 것 이상으로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상황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낳는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고민과 담론은 인류학자들에게 그야말로 최고의 재료인 셈이다. 의료인류학자들은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이 만나는 현상이 대단히 복잡한 문화적 현상이며, 결국 치료와 의학도 문화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번 학술대회장인 폴커 쉬드(Volker Shied) 교수는 “왜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은 동아시아의학의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하면서 왜 동아시아의학자들의 담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동아시아의학이 분명 의학이지만 의학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고 동아시아의학을 배워 임상을 하는 서양 임상가들은 강변하고, 그러한 현상을 거시적으로 보는 의료인류학자들은 그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한의학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시선

학회 마지막 날, 뉴욕주립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김태우 선생의 한의학에 대한 인상 깊은 발표가 있었다. 한의학의 현재 모습을 문화인류학적으로 해석한 내용이다. 청중은 숨 죽여 그의 발표에 집중했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서양에서 동아시아의학을 배워 임상을 하는 사람들은 외롭다. 솔직히 말해 많이 고달프다. 자신들의 전통도 아닌 동아시아의학을, 그것도 제대로 배우 것 아닌, 몇 가지 잔기술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자니 보통 고달픈 일이 아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우리 전통의학과 비견할 바는 못 된다.

전통의학 전공자들은 고소득층으로 분류되고, 제도적으로 인정 받고 보호 받으며, 전국 방방곡곡 전통의학이 없는 거리가 없다. 전통의학자들은 사설 스터디모임, 학회활동, 방과 후 워크샵을 통해 자발적으로 전통의학지식을 재생산한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김태우 선생의 눈에는 마치 이 사회 전체가 전통의학을 계승 발전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김태우 선생의 말을 다시 빌어 표현해 본다. “한의학 만큼 전통을 계승해 현대에 제대로 승화해낸 예가 드뭅니다. 한의학은 살아 꿈틀대는 전통입니다. 때문에 더 가치가 있고 더 연구할 내용이 많습니다.”

홍세영 박사 제1회 찰스네슬리 젊은학자상 수상

대회 마지막 날, 최근 작고한 세계적인 인류학자 찰스 네슬리를 기념하여 제1회 찰스 네슬리 젊은학자상을 제정했는데, 홍세영 박사가 그 상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 홍 박사는 ‘아시아전통의학에 있어서의 여성과 성’이라는 세션에서 ‘조선시대의 의녀’에 대해 발표하였다. 발제 내용도 독특했지만, 유창한 영어와 조리 있는 발표는 그 자리에 참석한 중진 학자들이 홍 박사에게 젊은학자상 몰표를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 세션의 좌장이던 샤롯 퍼스(Charlotte Furth)는 “Korea is always underestimated”라며 홍 박사의 발표를 추켜세웠고 세션 뒤에는 홍 박사의 손을 꼭 잡고 어디 학회지에 꼭 발표하라고 당부한 뒤 혹시 발표할 곳이 없으면 자신이 대신 알아보겠다며 진지한 관심을 표출했다.

See you in Korea, 2013

2013년은 한의학에 특별한 해이다. <동의보감> 간행 400주년을 맞기 때문이다. 그 해에 국제아시아전통의학학술대회가 한국에서 한국한의학연구원 주관으로 열릴 예정이다. 학회 유치를 위해 태국과 스리랑카가 나섰지만 결국 한국으로 결정되었다. 학회장인 폴커 쉬드 교수의 영향력과 홍보가 큰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현재 웨스트민스터 교수인 폴커 교수는 작년에 경희대학교 한의학연구소와 한국한의학연구원 초청을 받아 내한한 적이 있다. 그 분이 어디 가서 한국에 대한 인상을 말하면 꼭 이런 말을 하신단다. “나는 세계 어디를 가도 그렇게 진지하고 구체적이며 열정적으로 질문하는 학생들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내한 중에 그 분은 경희대 한의과대학 학생들에게 특강을 했는데, 그때 학생들에게 받았던 인상이 아주 강렬했던 모양이다. 여하튼 2013년 제8회 국제아시아전통의학학술대회 개최 결정을 공식 전달하고 추후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제임스 플라원(James Flower) 학회 사무총장이 조만간 한국한의학연구원을 방문한다. 4년 뒤 일이라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지만 멋진 학회가 되기를 바란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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