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代名醫醫案166] 李惟聖의 醫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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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名醫醫案166] 李惟聖의 醫案①
  • 승인 2009.09.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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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惟聖의 醫案①

李惟聖(1581~?) : 李惟聖은 1518년에 출생한 후 선조 39년인 1606년에 丙午 增廣試에서 生員 3등 12위를 하여 찰방을 지냈고, 光海君 8년인 1616년에 丙辰 增廣試 乙科에 3위로 합격하여 관리로서 성공한 인물. 의학에 뛰어나 논리 정연한 醫論을 전개하고 있다.

■내용 : ○ 藥房提調 徐?과 副提調 洪瑞鳳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中殿의 症候은 벌써 수 개월이 되어 약물을 여러 가지로 썼지만 여전히 드러나는 효과가 없습니다. 御醫인 趙興男 등 네 사람이 傷寒 이후에 泄痢가 이어지고 腹脹面浮의 증상이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補藥으로 치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閔?과 李惟聖 등 두 사람은 이 증상이 오로지 血虛生熱로 말미암으니 下部寒冷의 증후 같은 것은 모두 熱氣의 所致이므로 반드시 먼저 ?血治熱의 약제를 사용해야 하며 만약 빨리 치료하려고 補藥을 사용한다면 熱氣가 흩어지지 않아 補血의 공적이 또한 적어진다고 하였습니다.
○ 藥房에서 또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엎드려 성상의 가르침을 받들어 다시 李惟聖에게 물어보니 즉 四物湯에 黃連酒炒, 升麻 各二錢, 柴胡, 黃栢酒炒, 澤瀉 各一錢, 地楡, 靑皮 各七分을 加하고 熟地黃을 빼고 乾地黃酒炒를 대신 넣고 當歸, 地黃을 배로 넣고 生薑三片, 桑白皮, 木通 各三寸을 넣어 부수어서 같이 끓여 10회 연달아 복용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承政院日記> 1627년 인조 5년 5월 17일)

■설명 : 李惟聖은 中殿의 질환에 대해 趙興男 등이 中殿의 傷寒後遺症에 補藥을 쓸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補藥을 사용하면 熱氣가 흩어지지 않게 되므로 ?血治熱의 약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辨證分析 : 李惟聖의 주장을 분석하면 熱氣?鬱로 인한 寒冷證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준다. 이것은 한국 한의학의 학술 유파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발언이다. 이 발언은 御醫인 趙興男의 溫補를 위주로 하는 치료법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趙興男은 傷寒 이후에 泄痢가 이어지고 腹脹面浮의 증상을 虛證으로 보고 있는데 대해서 李惟聖은 血虛生熱로 말미암으니 下部寒冷의 증후 같은 것은 모두 熱氣의 所致인 것으로 보았다. 趙興男과 李惟聖은 변증에서 학파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 중기 한의학의 다양성을 엿보게 해준다.

■治療分析 : 李惟聖의 처방은 다음과 같다. 四物湯에 黃連酒炒, 升麻 各二錢, 柴胡, 黃栢酒炒, 澤瀉 各一錢, 地楡, 靑皮 各七分을 加하고 熟地黃을 빼고 乾地黃酒炒를 대신 넣고 當歸, 地黃을 배로 넣고 生薑三片, 桑白皮, 木通 各三寸을 넣는 것이다. 이 처방은 四物湯으로 生血시키고 나머지 약물로 淸熱, 瀉火, 散瘀, 行氣 등의 의미를 취한 것이다.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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