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서울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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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서울은 깊다
  • 승인 2009.09.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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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 생태 문화 역사학자 눈으로 복원
서울깎쟁이 땅거지 피맛골 원의 파악에 도움

대학 입학을 계기로 상경한 지 어언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생애의 2/3 이상을 서울 시민으로 살아왔음에도 ‘서울내기’가 아닌 ‘시골뜨기’(광역시, 아니 당시엔 직할시 출신인데도, 서울 사람들은 대개 고향 대신 살던 시골이 어디냐고 묻더군요^^)인 셈인데, 아무튼 고교 갓 졸업 후 올라온 촌뜨기에겐 서울이 정말 생경한 곳이었습니다. 숲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엄청나게 아파트가 많은 도시! 창문 너머로 행인들 발만 보이는 반 지하 연립주택에서도 사람이 사는 도시! 반나절 싸돌아 다닌 뒤 귀가해 코를 풀면 매연 탓에 시커먼 코딱지가 속출했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뭐,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서울에 수십 년 살더라도 거대도시 서울은 많은 사람(택시기사가 아닌 바에야)에게 여전히 낯선 곳일 겁니다. 워낙 크기도 하거니와, 삶에 치이다 보면 늘 가던 곳만 가기 마련이지 25개나 되는 구(區)를 샅샅이 훑고 다니진 안잖아요. 그래서일까요? 지난 주말 하릴없이 서점의 이 코너 저 코너를 넘나드는데 유난히 서울을 소재로 삼은 책들이 눈에 많이 띄었답니다. 특히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서울, 문학의 도시를 걷다> <서울은 깊다>에 눈길이 갔고, 저는 주저하지 않고 <서울은 깊다>를 집어 들었습니다. 파리·빈 등 도시를 여행할 때처럼 서울의 관광명소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박기’보다는,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산책하며 문학장년(?) 마냥 시문학의 정취에 젖기보다는, 서울이라는 시공간에 녹아 스며든 우리 선조들 삶의 무늬(人文)에 대한 궁금증 해소에 목말랐던 까닭이지요.

결과는? 해갈의 정도를 넘어 수습과다(水濕過多)로 현운까지 일 지경이었습니다. 지은이 전우용 님께서 내공 깊은 역사학자 답게 수도 서울에 속속들이 배어든, 아쉽게도 이제는 많이 퇴색해 빠른 속도로 잊혀지고 있는, 조상들의 생태와 문화를 생생하게 되살려 놓으신 덕택입니다. 따라서 저처럼 종로 ‘피맛골’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줄창 막걸리를 퍼부으면서도 이 지명의 유래를 모른다면, 땅바닥에 떨어진 먹거리를 주워 먹는 아이만을 ‘땅거지’라 부른다고 오해한다면, 검소함을 넘어선 서울 짠돌이를 곧 ‘서울 깍쟁이’와 동일시한다면, 무조건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아울러 독서 후에는 깨우침을 바탕으로 각 단어의 원의(原義)를 기회 닿을 때마다 주변에 알려야 합니다.
7월 말 <동의보감>이 우리나라의 7번째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는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금의 시대정신에 걸맞고 <동의보감>을 뛰어넘는 새로운 서물(書物)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동의보감>이 소위 ‘히스토리컬 에비던스(historical evidence)’임에 틀림없지만, 한낱 ‘역사적 유물’로 머물지 않으려면 현 시대에도 통용되는 이른바 <21세기 동의보감> 혹은 <동의보감은 깊다> 등 제목을 단 책이 출현하여 인구에 회자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세영(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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