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41] 李昌彬(1920~1994)
상태바
[近現代 韓醫學 人物史41] 李昌彬(1920~1994)
  • 승인 2009.07.29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남일

김남일

webmaster@http://


한의학 교육계의 태두

원광대학교에서 학장을 역임한 李昌彬은 한의학 교육에 헌신했던 인물로 평가한다. 그는 평안북도 영변 출신으로 1950년대 동양대학관을 1회로 졸업한 후로 1953년 동양대학관이 서울 한의과대학으로 인가될 때 관장 朴鎬豊, 石柔順 등과 함께 대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1976년에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2대 학장으로 취임하여 한의학 교육에 열정을 불태웠다.

李昌彬이 학자로서 역점을 둔 것은 교육용 교재의 집필이었다. 그의 이름이 들어간 교재로서 『圖解經穴學 上下』, 『靈素病理學』, 『運氣學』 등이 있다. 특히 鍼灸學 분야에서 그는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교재들은 각종 학술잡지에 투고한 원고와 평소 집필한 원고를 모아서 만든 것들이다.

1955년 『東洋醫藥』을 통해 “鍼灸學講義”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한의사 독자들을 위해 침구학 관련 지식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몇 회에 걸쳐 진행된 이 코너에서는 十二經脈을 순서대로 나열하고 각 經脈의 소속 혈자리별로 부위, 취혈법, 해부학적 구조, 주치의 순서로 설명한다.

특히 바로 뒤에 備考를 두어 해당 혈자리의 各家學說을 기록하여 학술적 참고가 되게 하고 있다. 여기에 인용된 各家說은 『내경』, 『千金要方』, 『玉龍賦』, 『席弘賦』, 『鍼灸大成』, 『類經』 등이었다. 이것은 鍼灸學을 단순히 치료술로서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한 저자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의 관심은 臟腑學에까지 이르게 된다. 1955년 『醫林』의 창간호부터 ‘臟腑學講義’라는 제목의 강의형식의 글을 8회에 걸쳐 게재한 것이다. 이 글을 통해 李昌彬은 臟腑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臟腑學이란 것은 구조와 기능을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한의학 고유의 논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서양의학에 있어서는 인체의 구조를 주로 연구하는 해부학이 있고 인체의 기능과 작용을 주로 연구하는 생리학이 분립되어 있으나 동양의학은 人身의 구조와 기능이 불가분리의 유기적 연관성의 논법으로 설명되어 있으므로 장부학이라는 명칭으로서 人身의 주요구조와 기능을 한방의학적 논법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는 ‘臟腑學內譜圖表’라는 그림으로 臟腑學 전체를 도시하고 있다. 이것은 臟腑라는 개념에 통섭되는 것들을 도표로 圖解한 것이다.

1959년 『東方醫藥』 제5권 제1호에는 李昌彬과 蔡仁植의 對談이 나온다. 이것은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제목은 ‘李昌彬先生 對 蔡仁植先生 - 第八回世界保健日을 期해 精神疾患의 漢方的 治療와 豫防을 中心으로’이다. 李昌彬은 이 자리에서 정신질환을 七情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神經衰弱症은 肝實證으로 보아 肝氣를 瀉하는 치료가 효과적이니 柴胡抑肝湯, 歸脾湯, 白朮健脾湯 등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별히 그는 몸을 건강히 해야만 정신이 건강해질 수 있다면서 그중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 교양, 지식 등의 연마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학생회지에서도 그의 글이 발견된다. 1961년에는 東洋醫藥大學 學生漢醫學會에서 간행한 『東醫會誌』 제4호에 “동양철학과 한의학”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한다.
이 자료는 임일규(강원도 명예한의사회장) 회장이 올해 초 경희대 홈커밍데이 석상에서 경희대 한의학역사박물관에 기증하면서 공개되었다.
이 논문에서 李昌彬은 동양철학의 설명방법론으로서 太極說, 陰陽說, 三分說, 四象說, 五行說, 六合說, 七曜說, 八卦說, 九宮說의 아홉 가지를 들었다. 그리고 東西醫學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東洋醫學은 人間의 生命에 대한 根本的인 原理를 哲學的으로 究明하는 學問이라면 西洋醫學은 人間을 一個物質로만 규정하여 枝末的인 現實을 所謂 科學的으로 證名하는 學問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東洋醫學的 思考方法에 依하여 全體的인 生命現狀의 原理를 究明하여야 하고 西洋醫學的인 思考方法에 依하여 理化學的인 變化事實을 증명하여야 한다.”

그는 1966년부터 『內經』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醫林』에 ‘內經講座’라는 제목으로 5회에 걸쳐 지상강좌를 게재한 것이다. 이것은 『張氏類經』을 기준으로 『內經』의 원문을 해석하고 원문마다 상세한 주석을 붙여 설명하는 형식을 취한 학술 논문이다.
이후로 197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세계침구학술대회 대회장을 시작으로 필리핀에서 열린 제4회까지 대회장을 역임하면서 국제적으로 침구학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康舜洙는 “故 悟星 李昌彬선생을 追悼함”(1994년 1월 31일자 한의신문 게재)이라는 추도문에서 다음과 같이 李昌彬의 逝去를 追悼하였다.
“선생은 합리주의, 이상주의자이시기에 말과 행동이 분명하셨고, 반면 혼탁한 행위를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성품으로 인해 혼탁한 사회에서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셨습니다. …… 이제 선생은 영원히 말이 없으시지만 그 뜻은 우리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선생의 꿈 많고 순결무구한 마음씨 같이 부디 아름답고 평화로움을 찾으소서….” <월 1회 게재>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