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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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36)
  • 승인 2009.07.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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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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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미되 소박하게 ■

역경(易經)에서 화뢰서합(火雷噬嗑 : 괘)괘 다음으로 나오는 괘가 산화비(山火賁 : 괘)괘입니다.
산 아래에 불이 있는 모양으로 울긋불긋한 꽃들이 산속 여기저기에 피어서 ‘꾸며 놓은 것’같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조개껍질(貝)에 여러 가지 무늬들이 달려가듯이 꾸며져 있는 모습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산에 여러 가지 울긋불긋한 색깔들이 나타남은 봄에 꽃이 필 때도 그러하고, 가을에 단풍이 질 때도 그러합니다.

맨 아래와 맨 위가 단단한 양효(陽爻)이고 가운데에 하나의 양효(陽爻)와 4개의 음효(陰爻)가 있는 모습은 화뢰서합(火雷噬嗑 : 괘)괘와 비슷합니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뢰서합(火雷噬嗑)괘에서 합해짐(合)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다음 순서로 모여진 물건들이 잘 배합되어 꾸며져야 하기 때문에 ‘꾸밈’의 의미를 나타내는 산화비(山火賁 : 괘)괘가 오는 것이라고 서괘전(序卦傳)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嗑者合也 物不可以苟合而已 故受之以賁 賁者飾也). 이렇게 물건들이 모여서 형형색색 잘 꾸며진 모습을 ‘문채(文彩)’라고도 합니다(物之合則必有文 文乃飾也).

계속해서 산 속에 온갖 풀과 나무들이 많이 모여 있어도 밝게 비추어져야만 그 아름답게 꾸며진 모습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산(山)과 불(火)이 모여서 비(賁 : 괘)괘를 이룬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爲卦 山下有火, 山者 草木百物之所聚也 下有火則照見其上. 草木品彙 皆 被其光彩 有賁飾之象 故爲賁也).

◆ 꾸며서 형통해짐에는 조금 가야 합니다

이 산화비(괘)괘를 맨 처음 풀이하기로는(卦辭) ‘꾸밈은 형통함이니 조금 이로움이 가는 바를 둠에 있다(賁 亨 小利有攸往)’입니다. ‘꾸밈’을 좋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오래하지 말라는 ‘충고’의 느낌도 곁들여진 것 같습니다.
화창한 봄날에 산속에서 노랗고, 분홍색으로 피어나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1년이라는 긴 세월에 비추어본건대 1~2달밖에 가지 않습니다.
가을의 단풍 또한 그러합니다. 울긋불긋하여 오색찬란한 듯한 느낌마저 주는 색색 단풍은 곧 다가오는 겨울의 차가운 서리에 하나둘씩 떨어져 어느 덧 앙상한 가지만이 남게 됩니다. 모두 가되 오래 가지 않습니다. 꾸밈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너무 오래 기대지는 말라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꾸밈’하면 떠오르는 것이 ‘화장(化粧)’입니다. 현대인, 특히 현대여성들에게 외출할 때에, 혹은 다른 사람 앞에 나설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얼굴을 화장하고, 옷매무새를 이쁘게 꾸미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성장(盛粧)’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게 꾸미고 활동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피곤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느덧 집으로 돌아오거나, 사람들이 떠나게 되면 다시 화장을 지우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편안한 휴식시간을 가지게 마련입니다.
세상과 소통하고, 물건을 모을 때는 꾸밈이 필요하지만, 꾸며서 얻는 이익은 작게 취할 것을 맨 처음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화비(괘)괘를 판단하여 말하기로는(彖曰) ‘부드러움이 와서 강한 것을 꾸며 형통함이요, 강함을 나누어 위로 올라가 부드러움을 꾸미는 고로 가는 바를 둠에 조금 이롭다고 한 것이니 하늘의 꾸밈이고, 꾸며서 밝음으로 그치니 사람의 꾸밈이라(賁 柔來而文剛故 亨, 分剛 上而文柔故 小利有攸往 天文也 文明以止 人文也). 하늘의 꾸밈을 봄으로 때의 바뀜을 살필 것이요, 사람의 꾸밈을 봄으로 천하를 만들어 이룸이라(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고 하였습니다.

해와 달과 별자리들의 꾸며져 있는 모습들을 보고 시간·공간의 흐름과 규칙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외모와 예의를 갖추어 꾸밈으로서 문명사회를 이루어 나감을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문명화된 인간이 야만인이나 동물들과 차별화 되는 것이 바로 ‘꾸밈’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火)’의 사용이 인류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과 같이 ‘불’에 의한 밝은 꾸밈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괘의 상을 보고 말하기로는(象曰) ‘산 밑에 불이 있는 것처럼 밝게 정치하여 함부로 형벌을 사용치 말라(山下有火 賁 以明庶政 无敢折獄)’고 하였습니다. 공명정대한 법의 집행으로 무리한 형벌을 피하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첫 번째 양효(初九)에는 ‘발을 꾸며서 수레를 버리고 걸으라(初九 賁其趾 舍車而徒)’고 하여 꾸미되 너무 과하게 앞서감을 피할 것을(義弗乘也), 두 번째 음효(六二)에는 수염을 꾸미듯이(賁其須) 주변과 함께 함을(與上興也), 세 번째 양효(九三)에는 꾸며서 윤택하게 됨을 오래 유지해야 좋고(賁如 濡如 永貞 吉) 업신여김을 받지 않게 됨(終莫之陵也)을, 네 번째 음효(六四)에는 희게 꾸며서 흰 말이 나는 것 같음에 방해꾼이 없으면 짝을 만나게 되어(賁如皤如 白馬翰如 匪寇 婚媾) 결국에는 좋게 됨(終无尤也)을 말했습니다.

◆ 꾸미되 소박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섯 번째 음효(六五)에는 동산에서 꾸밈에 비단이 적음이 겸연쩍으나 결국에는 좋아져서(賁于丘園 束帛戔戔 吝 終吉) 기쁨이 있음(有喜)을, 마지막 여섯 번째 양효(上九)에도 소박하게 적은 색으로 꾸밈이 괜찮아서(白賁无咎) 높은 뜻을 얻게 되는 것(上得志)이라 하여 꾸미되 소박하게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모아서 꾸미는 것과 같이 음식물(草木百物)을 먹고 잘 씹어서(噬嗑) 소화시켜 내 몸에 유용하게 만들어 정혈(精血)로 바꾸면(化成), 곧 몸이 윤택(濡如)하게 되어 빛나게 꾸며진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이 먹어 영양과잉이 되는 것보다는 적당한 섭취가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白賁无咎). 그 소박함에는 앉아서 편안하기보다는 걸어다님(舍車而徒)이 좋다는 것과 폭식(暴食)같이 급변함보다는 늘 한결같음(永貞吉)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음식물(草木百物)이 잘 소화(不化成)되지 못해서 몸이 윤택하게 되지 못함(非濡如)은 ‘내상(內傷)’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상(內傷)의 대표적인 병기(病機)에는 음식상(飮食傷), 노권상(勞倦傷), 주상(酒傷), 비기허(脾氣虛), 비기하함(脾氣下陷), 비양허(脾陽虛), 비음허(脾陰虛), 한습곤비(寒濕困脾) 등이 있습니다.

상한론에서는 ‘태음병(太陰病)’과 ‘소음병(少陰病)’에 설명하고 있으며, 동의수세보원에서는 소음인리병증(少陰人裏病證)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탄산(呑酸), 토산(吐酸), 조잡(嘈雜), 오뇌(懊憹), 애기(噯氣), 곽란(癨亂), 구토(嘔吐), 열격(噎嗝), 반위(反胃) 등도 모두 비불화성(脾不化成)의 내상(內傷)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계속>

박완수
경원대 한의대 병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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