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Ⅵ] 창간에서 성년이 되기까지 20년사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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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Ⅵ] 창간에서 성년이 되기까지 20년사 조명
  • 승인 2009.07.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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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희망주기 프로젝트 - 한의학에 날개를 달아주자VI

한방의보 확대과정에서 신문창간 의기투합
시대적 흐름 반영, ‘실사구시’ 중시한 보도에 집중


하나의 언론매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대부분 힘의 결집수단이 생긴 것을 의미할까, 아니면 공동체가 지향할 나침반이 생긴 걸까?
언론매체가 가지는 다양성과 생존환경의 복잡성으로 존재의의를 판단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민족의학신문도 하나의 언론매체인 이상 이런 판단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20년 전 창간정신이 어느 정도 구현됐는지, 지금도 그 정신이 유효한지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자리에서는 다만 스스로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앞으로 펼쳐질 20년을 설계하는 데 지침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다고 본다.

■ 창간전야의 한의계

사회과학에는 역사의 필연이라는 말이 있다. 우연적인 현상같이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내재돼 있다는 뜻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신문이 창간될 수밖에 없는 遠因과 近因이 있기 마련이다.
우선 한의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한의학과 한의사의 소외현상이 신문창간의 遠因이라 할 수 있다. 학문의 연륜이 깊고 임상적 효능은 양방에 전혀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과질환에서는 오히려 양방을 월등히 능가하고 있는데 제도적으로는 사각지대에 놓여 의료인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게 한의학이고 한의사였기 때문이다.

의료법과 약사법을 비롯한 의약관련법에서 한의사는 ‘의료인’의 범주에 포함됐지만 한의학과 한의사는 법의 보호와 지원의 대상에서 거의 배제된 것이다.
한의사는 겨우 법 한 조항에 운명을 도맡기다시피 해야 했다. 모법과 하위법 사이의 심각한 괴리로 인해 한의사의 법적, 제도적, 사회적 위상은 지극히 불안정했다. 오로지 당시 보건사회부 의정국의 유권해석에 의존하는 정도여서 한의계는 무력감에 젖어있었다.
소외가 遠因이라면 한방의료보험의 도입 논의는 近因이었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한 한방의료보험제는 한의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제도권 진입의 호기였으나 정부와 한의계의 모습은 실망적이었다.
정부측으로부터는 한방의료보험 도입을 위한 청주·청원지역 시범사업의 마감과 동시에 끝내버리려는 의혹이 일었고 한의계내 노장층은 한방의보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방의료보험 도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한의대생들은 ‘민족의학발전추진위원회’를 경성하고 대내적인 교육환경 개선을, 대외적으로는 군진의학과 한방의보의 도입을 추진하다 86년 ‘전국 한의과대학 민족의학 발전추진위원회’로 발전하고 이후 젊은 한의사들이 결합해 ‘한방의보 전국확대 추진위원회(약칭 의확추)’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의확추 활동과정에서 대중홍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신문 제작에 뜻을 모으게 됐다. 이점에서 의확추활동은 민족의학 창간의 중대한 전기로 평가된다.
의확추 소속 젊은 한의사들은 마침 창간을 준비하고 있던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으로 참가하는 한편 4.13 호헌조치 철회서명운동을 하면서 신문창간의 철학적 조직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 신문의 성격변화

창간사에 나타난 창간정신은 대체로 ▲한의학의 특성을 고려치 않고 시행된 파행적인 한방의보의 시정 ▲의료의 상업주의 경계 ▲탈인간화에 빠지기 쉬운 전문세분화 문제 ▲인간전체의 관찰을 잊게 하는 연구지상주의 문제 ▲종합의료로서 한방의료의 역할과 기능의 개발 필요성 ▲궁극적으로 민족의학에 대한 가치체계 정립으로 요약된다.

이들 내용은 ①민족의학의 미래상 제시 ②평등의료의 정착운동 ③직능단체의 민주화 ④참된 민주사회의 실현이라는 社是의 형태로 표현됐다.
20년의 역사를 시대적 특징과 지면의 운용을 중심으로 분류하면 첫째 창간에서 한약분쟁시기까지, 둘째 한약분쟁에서 한약분쟁 마무리시기까지, 셋째 한약분쟁 마무리시기부터 지금까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신문이 한의계의 변화를 풀무질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밖으로는 제도적 소외를 지적하며 제도권 진입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무기력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의직능단체를 흔들어 깨우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한의협으로부터 정책기획예산 5천만원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그 돈을 종잣돈으로 해서 정책기획위원회를 한의협 내에 설치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신문사 운영위원들은 서울시한의사회가 추진한 정책백서 발간작업에 참여해 한의계의 장기정책과제를 정리했다. 한의협과 서울시한의사회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은 훗날 한약분쟁에서 한의계가 거대한 양약계를 상대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한의학을 제도권 의료로 진입시키는 과정이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것도 결과적으로 한의학의 양적 성장을 일궈내는데 일조했다. 정부입장에서는 한의계의 제도권 편입이 형평성 차원에서 한의계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국민의 요구가 컸다는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세 번째 시기는 한의학의 제도권 진입이 형식적으로 마무리된 이후의 시기에 해당한다. 형평의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정부-의료단체간, 의료단체 상호간, 의료단체와 시민단체간 의료공급의 질과 효율성이 최우선적인 목표가 되었다. 이 시기는 침수가가 인상되면서 보험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약의 공급형태가 첩약에서 한약제제로 이행되는 초기단계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신문의 논조도 자연스럽게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흐름을 띠게 됐다.

■ 신문이 다룬 주요 분야

1) 시대정신의 실천

민족의학신문이 지난 20년간 다분히 실험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는 시대적 요구와 국민적 요구에 귀 기울이며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사실이다. 신년사와 창간기념사, 기획특집, 사설, 칼럼의 형태로 담겨진 그런 가치는 일선에서 임상에 전념하는 일선한의사들에게 한의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정책당국에게는 한의정책의 보고가 되었다.

각종 기념사는 한의계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본지가 선도해왔다. 가령 ‘이제는 정치력 발휘할 때’,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한의학시대 열어야’, ‘어둠을 걷고 신세계를 향해’, ‘시대에 부응한 정보 생산할 터’ ‘한의학 公的 기반 확립에 박차’, ‘임상여건 조성에 주력하겠습니다’, ‘생활문화의 현장으로’ 등은 한의학에 대한 음해와 비방으로 한의사들이 시름할 때 신선한 청량제 역할을 했다.

기념사에서 제시한 메시지는 반드시 기획에 반영됐다. ‘한의사의 정체성 탐구’ 시리즈를 통해 한의학에 내재된 가치를 재조명한 것이나 ‘왜 한방보건학인가!’, ‘생명을 살리자’, ‘공적 기반 없이 한의학 발전 없다’, ‘기초질환을 살리자’ 등의 시리즈는 한의학의 영역을 예방의학과 1차의료, 공공의료의 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시론적 성격이 강했다.

2) 기획보도로 약재시장의 변화 일궈

약재분야 측면에서는 ‘살아있는 본초의 바다로’, ‘한약재 이야기’, ‘본초서의 한약재를 찾아’ 등을 연재하기를 거듭하고, 취재기자를 중국과 동남아 현지에 파견해 해외의 약재 생산·유통실태를 현장르포형식으로 보도함으로써 한의계로 공급되는 약재의 품질을 질적으로 개선시켰다.

3) 학술에 대한 비상한 관심

신문초기에 주력했던 제도의 종착역은 역시 학문이었다. 의료제도는 학문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신문이 학문에 눈을 돌린 것은 당연했지만 제도당국도 제도화의 전제조건으로 학문적 근거를 요구한 것이 학문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원인이 됐다. 본지는 먼저 의학교육의 본질에 천착하면서 한의학교육방법론을 모색했다. 나아가 교육과정, 국시의 문제, 한의학과 서양의학 교육의 문제, 적정 교수인력의 문제, 그밖에 박사학위논문의 질, 연구여건, 국립대 한의대 설치, 학회발전방안 등을 심층 취재해 한의대교육과 한의학회 운영의 쇄신을 촉구했다.

4) 새로운 임상기법 도입

개원가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임상이다. 임상실력이 좋아야 환자가 한의학을 신뢰하고 한방의료기관의 경영도 개선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주목해 신문은 새로운 임상기법의 도입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렇게 해서 한의계로 유입된 치료법은 약침, 첩대요법 등 다양하다. 한의계의 주요 치료법으로 자리잡은 추나요법의 도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기존의 치료법을 개원가로 보급하는 일도 본지의 몫이었다. 류주열 원장의 사상의학, 김광호 원장의 일침요법을 비롯해서 코질환·비만·안면성형·봉독임상·영양학·형상의학, 그리고 최근의 상한론에 이루기까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강좌를 개최했다.

5) 정책담론의 산실 한의학미래포럼 발족

한의사는 기본적으로 임상의 전문가라는 점에서 정책능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본지는 정책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2006년 4월 한의학미래포럼이라는 정책담론의 장을 발족시켜 지금까지 21차에 걸친 토론회를 열었다.

이밖에 문화측면에서는 ‘생활 속 과학이야기’, ‘우리문화·우리과학’이란 시리즈를 통해 우리문화·우리과학 속에 깃들어 있는 과학성을 드러냄으로써 한의학도 과학성을 담지하고 있는 엄연한 과학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한의학을 의학으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로서 접근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한의학에 대한 친근감을 고취코자 했다.

■ 새로운 20년을 향해

민족의학신문은 광고시장이 절대 협소한 언론환경에서도 한의사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내며 지난 20년간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존재 자체만으로 위안을 삼기에는 시대가 급변했다. 한의학과 한의사가 처한 환경도 20년 전과 또 다르다. 새로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0년을 쉼 없이 달려온 민족의학신문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한의계를 창조적 개혁이라는 창간정신과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20년을 헤쳐나갈 것을 다짐해본다.

민족의학신문 김승진 기자 sjkim@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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