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39] 崔光守(1932~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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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39] 崔光守(1932~1990)
  • 승인 2009.06.0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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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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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의료문화계의 대부

예로부터 한의학을 하는 인물들은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조선 순종에서 헌종 연간에 醫官으로 활동하면서 西園餘意圖라는 그림을 그려 예술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관직이 정3품 僉知中樞府事까지 이르렀던 金景球(1789~?)가 그 예이다. 예술을 하면서 산다는 것은 극단적 감성의 세계에서 창조적 작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차원 높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한의학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린 한명의 한의사가 있다. 崔光守 畵伯이 그이다. 호가 石影인 崔光守는 1975년 경희대 한의대를 만학으로 졸업한 후로 한의학의 문화적 진흥을 위해 솔선수범하였다.
그는 특히 현재 공인되어 있는 許浚, 李濟馬의 영정을 직접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동양화, 서양화 모두에 뛰어난 필치를 드러낸 그의 화법은 서화계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놀라운 경지를 개척한 것이었다.

崔光守는 표준영정뿐 아니라 許浚, 李濟馬의 초상을 그려서 한의사협회, 경희대 등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현재 경희대학교 한의학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유화로 그린 許浚像은 그의 화풍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1980년 4월 12일에 한의사협회(당시 회장 卞廷煥)에 許浚, 李濟馬의 초상화를 그려서 기증하여 한의계의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西厓 柳成龍의 표준영정도 제작하여 문공부에서 심의를 거쳐 제38호 영정으로 지정받았다. 그는 이때 柳成龍의 영정을 제작하기 위해 경북 안동의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문집, 왕조실록, 역사서 등을 두루 섭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2년에는 「延齡固本丹이 白鼠의 內分泌 및 造血促進에 미치는 影響」이라는 논문으로 韓醫學博士를 취득하여 학계에도 자신의 학설을 등재하였다. 그는 이 논문을 통해 延齡固本丹이 健康增進, 老衰豫防에 유효하므로 常服에 適合하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그의 학설을 담고 있는 글로 1977년 『月刊 杏林』을 통해 발표한 “漢方文獻에 나타나 있는 生體의 自然適應機構解說”이 있다. 그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東洋文化生活面에는 지금까지 比較的 自然生活에 適應하고서는 安貧樂道의 歷史였고(溫突, 綿衣, 自然生食) 治療에도 個體的인 自然良能을 適應케 調整해주는 治法이다. 그리고 우리 生體에는 自己環境에서 自然에 適應하면 自然治癒가 되는 自然良能이 있으니 格言에 ‘病은 自然的으로 낫고 醫는 不過 조금의 도움밖에 없다.’ 그리고 또한 病에 걸려도 治療를 하지 않고 放置해 두어도 恒常 中等醫의 效力을 갖고 온다고 할 수 있다. 卽 醫原性病을 招來하는 人工藥을 投與하는 것보다 또 阻工醫(돌팔이)에게 잘못 治療를 하는 것보다는 放置 그대로 두어도 自然治癒되는 것이 또한 生體에서는 自然適應의 回復良能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①말씀을 적게 하여 속기운을 배양할 것(少言語養內氣) ②색욕을 삼가 정기를 배양할 것(戒色慾養精氣) ③음식을 담백하게 하여 피를 맑게 할 것(薄滋味養血氣), ④흥분과 분노를 삼가 간기를 배양할 것(莫嗔怒養肝氣) ⑤음식을 절도있게 먹어 위기를 배양할 것(節飮食養胃氣) ⑥탐욕을 줄이고 근심을 적게 할 것(少貧怒戒心憂) ⑦아름다운 노래를 자주 들어 심신을 기쁘게 할 것(聽聲樂悅心神)”이라는 일곱 가지 禁戒를 箴言으로 주장하였다.

1986년에는 한의사협회에서 허준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허준동상건립 소위원회를 구성하였을 때 소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어 활동을 시작하기도 하였다.
그의 예술적 능력은 國際東洋醫學會의 旗를 그가 손수 디자인하여 제작하여 기증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85년 일본 경도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을 때와 1988년 서울에서 열렸을 때 모두 旗를 만들어 기증한 것이다.

그의 문화적 감각은 70년대에 공중파에서 나왔던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연속극 ‘執念’의 제작에도 발휘되어 학술적 고증 등 자문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漢醫學’이라고 표기해온 한자 표기를 ‘韓醫學’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그의 오랜 연구 끝에 나온 것이다. 그는 이의 관철을 위해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을 여러 차례 『漢醫師協報』에 게재하였고 대한한의사협회의 적극적 추진으로 1986년 관철되게 되었다.

이렇듯 崔光守의 일생은 한의사로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어떻게 기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전형이었다. <월 1회 게재>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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