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씨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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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씨 표류기
  • 승인 2009.05.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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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섬에 갇힌 남녀의 소통 버라이어티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날 수 있었던 시골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돈, 명예…도 중요할 수 있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情)이 아닐까. 하지만 현재 우리는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가족 간의 대화조차 끊긴지 오래다보니 사람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정을 느낄 사이조차 없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혼자 해결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나 한강의 밤섬에 불시착한 남자(정재영)는 죽는 것도 쉽지 않자 일단 섬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모래사장에 쓴 HELP가 HELLO로 바뀌고 무인도 야생의 삶도 살아볼 만하다고 느낄 무렵 익명의 쪽지가 담긴 와인병을 발견하고 그의 삶은 알 수 없는 희망으로 설레기 시작한다. 자신의 좁고 어두운 방이 온 지구이자 세상인 여자(정려원)는 홈피 관리, 하루 만보 달리기 등 그녀만의 생활리듬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유일한 취미인 달 사진 찍기에 열중하던 어느 날. 저 멀리 한강의 섬에서 낯선 모습을 발견한 후 그에게 리플을 달아주기로 생각하고 3년 만에 자신의 방을 벗어나 무서운 속도로 그를 향해 달려간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여자가 되고 싶어 씨름을 하게 된 남학생의 이야기를 사람 냄새 물씬 나게 표현했던 이해준 감독이 서울에 있는 무인도인 밤섬에 표류한 남자와 자신의 방에 갇혀 있는 여자의 이야기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김씨 표류기>는 이미 <로빈슨 크루소>나 <캐스트 어웨이> 등 외딴 곳에 표류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영화들을 통해 너무나 익숙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타의 영화들과 확연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현대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섬에 갇힌 사람들을 통해 소통 불가능의 우리 사회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록 그들이 사회와 떨어져 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포기보다는 희망이라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별로 없고, 영화의 남녀 주인공들이 한 번도 만나지 않는 독특한 상황 때문에 영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관객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과 영화 속 주인공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장면들에서 아이러니하게 큰 웃음을 얻게 된다. 특히 자장면을 먹기 위해 고생하는 장면은 영화의 압권으로 영화 감상 후 제일 먼저 자장면이 먹고 싶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연이어 개봉하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 속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오랜만에 따뜻하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상영 중>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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