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선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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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선방일기
  • 승인 2009.05.0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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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에서 이뤄지는 禪 수행과정의 기록

지난 주말부터이던가? 연구실 건물의 옆쪽에 위치한 절, ‘연화사(蓮花寺)’에 연등(燃燈)이 곱게 내 달렸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인 음력 사월 초파일(初八日)을 기념하는 연등축제기간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진료실 오가며 절에 걸린 연등을 볼 때마다 시방세계의 어둠과 무명을 밝히는 그 지혜의 빛이 제게도 좀 비추어졌으면 하고 소망했는데, 이 역시 탐욕(貪)과 어리석음(痴)이겠지요?

작은 생채기에도 쉽게 덧나는 피부 마냥 대인관계에서의 사소한 불협화음에도 쉬 마음에 상처를 받는 성격 때문인지, 가끔씩은 절에 틀어박히기를 꿈꿀 때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순전히 자신의 밴댕이 소갈머리 탓인데도, 제 성깔 못 이기고서 속이 상한 다음에는 ‘부조리한 세상’ 운운하며 속세를 벗어나고파 하는 것이지요. 심산유곡의 사찰과 암자는 그야말로 부처님 도량일진대, 한갓 도피처인 양 마음대로 격하시키며…….

이번에 소개하는 『선방일기』는 한 달여 전 아버지께서 건네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우파새(優婆塞)’로 불릴지라도 전혀 손색없을 엄친 - 퇴직 후부터는 등산·바둑과 함께 『반야심경』·『금강경』·『유마경』·『벽암록』 등의 ‘사경(寫經)’을 소일거리 삼으며 지내신다 - 께서 불교서적 전문서점에서 구독하셨다가 급기야 제게도 권하신 것이지요. 밥상이 뱀이라도 나올 만큼 식물성 반찬으로 가득할 때 유독 희색만면 하는 부자(父子)라서 그럴까요? 아버님과 저는 여타 취미는 물론 좋아하는 책까지도 이리 비슷하니…….

『선방일기』는 제목 그대로 불자(佛子)들의 선(禪) 수행이 이루어지는 ‘선방’에서 쓴 ‘일기’ 형식의 글입니다. 정확히는 동안거(冬安居) 시작 보름 전인 음력 10월1일부터 용맹정진의 공부가 끝나는 음력 1월15일, 소위 ‘해제(解制)’까지 3개월 여의 기간 동안 쓰여진 수상록이지요. 저자 ‘지허 스님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도량) 중의 하나라는 오대산 중대(中臺) 상원사(上院寺)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불도를 닦는 틈틈이 쓴 많지 않은 분량의 수필인 것입니다.

글쎄요? 저는 일찌감치 이 책을 제가 올해 읽은 최고의 책으로 선정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이 제 성 마른 기질 탓은 절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간결하고도 유려한 촌철살인의 필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제된 글맵시! 견성(見性)을 위해서는 시종일관 자아에 충실해야 한다는, 진실로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적이어야 할 뿐이라는, 결국 모순의 극한에는 조화가 존재한다는 통찰! 우리 용어로 태극체(太極體)엔 상반(相反)되는 등가(等價)의 음양이 공존한다는 깨우침! 이토록 아름답고 멋진 글이 최고가 아니라면, 대체 어떤 글이 최고이겠습니까?

아쉬운 점은 ‘지허 스님’(法名이 知虛일까요?)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고행(苦行)임을 전혀 잊고 무의식적으로 고행해야 참된 고행이듯이, 스님께서는 수행자로서의 본분에 딱 걸맞게 행동하셨기 때문입니다. 1973년 한 월간 잡지의 논픽션 공모에 당선된 이 작품을 발표한 이후,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는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으신 것이지요. 우매(愚昧)한 저로서는, 스님께서 이 풍진(風塵) 세상의 허명(虛名)에 집착하지 않고 이자정회(離者定會)를 기약하며 떠나심으로써 불자의 참모습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도 뵙고 싶습니다. 50을 코앞에 둔 사람도 ‘늦깨끼’라며 받아주시려나? <값 5,000원>

안세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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