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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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28)
  • 승인 2009.03.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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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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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칠고 험난한 곳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

역경(易經)에서 천택리(天澤履 : 괘)괘 다음에 나오는 괘는 지천태(地天泰 : 괘)괘이고, 지천태(地天泰)괘 다음에 나오는 괘는 천지비(天地否 : 괘)괘입니다. 지천태(地天泰)괘는 본 연재의 9회에서, 천지비(天地否)괘는 본 연재의 15회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천지비(天地否)괘 다음에 13번째로 나오는 천화동인(天火同人 : 괘)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지가 사귀지 못하는 것이 막힘이 되나(天地不交則爲否), 세상이 끝끝내 막혀 있기만 한 것은 아니므로, 드디어는 위아래가 서로 함께하여 막힘이 풀어지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上下相同則爲同人, 世之方否, 必與人同力乃能濟)입니다.

◆크게 함께 하는 길(大同之道)은 공명정대함에 뿌리 두어야

천화동인(天火同人)괘의 모습(象)이 나타내는 또 다른 의미는 하늘(괘) 밑에 불(괘)이 있는 것(乾上離下)입니다. 하늘이란 것은 위에 있는 것(在上)이고, 불의 성질은 위로 타오르는 것(炎上)이라서 자연스럽게 ‘함께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한다’고 했을 때 위아래의 사람들이 함께 하여 동화되는 것(上下相同)도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천인합일(天人合一)이나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천화동인(天火同人)괘를 풀이함에는 ‘거친 들에서 사람과 함께하면 형통할 것이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며 훌륭한 사람의 바름이 이로움이라(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利君子貞)’고 하였습니다. 문득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들에서 사람과 함께 한다’는 의미가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들(野)’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반적으로 들판이라 하면 탁 트인 곳을 말합니다. 그래서 동서남북 어디로도 갈 수 있고 사방어디에서도 닿을 수 있으며 멀리서도 훤히 바라볼 수 있는, 조금은 ‘공개’되고 ‘사사롭지 않은 곳’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은밀한 거래를 바탕으로 ‘동화’한다는 것은 곧 공명정대하지 못한 밀실의 연합일 것입니다.

천화동인괘의 ‘동인우야(同人于野)’는 이와는 반대의 ‘공명하고 바른, 크게 함께 함의 길(大同之道)’을 가도록 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형통할 수 있어서 큰 물길 같은 위험한 상황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지도자가 바루어야만 이로울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이나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달성하기 위한, 바르지 못한 결탁은 형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힘을 합쳐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잘 풀리지 않고 형통하게 되지 못하는 것은 ‘공명성이 부족한 결탁’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지역출신이라서, 같은 연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연합해서 일을 치루어 나간다는 것은 자칫 공명정대함을 잃기 때문에 큰일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실패하기가 쉬움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것은 ‘동인(同人)’이 가진 진정한 의미의 ‘함께 함’이 아닐 것입니다.

◆거칠고 험난한 곳에서 사람과 함께 해야

‘거친 들에서 함께 한다(同人于野)’는 또 다른 의미에는 ‘힘든 곳에서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간다’라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상황이 편하고, 물질이 풍요로운, 이른바 ‘황금의 시절’에는 누구나 쉽게 동조하며 같이 일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 힘들어지고, 부족한 것이 많아서 고통스러운 상황이 지속될 때에는 ‘함께 고통을 짊어진다’는 마음을 가지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슬그머니 힘든 곳을 피해서 다른 곳으로 도망가거나, 형편이 좋아질 때까지 외면하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때에 어려움을 같이 하고 사람들과 함께 험로를 헤쳐나간다면 결국은 큰 물길도 건널 수 있는 ‘형통함’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모세가 이집트에서 핍박받던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하여’ 거친 들판과 홍해라는 거대한 물길을 지나 결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과 ‘함께 함’은 위대한 결과를 만들 수 있음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특히 어려운 시기일수록 ‘함께 하려는, 그리고 바르게 실행하려는 동인(同人于野 君子貞)’의 정신은 빛날 것입니다.

◆대동(大同)의 길은 고난의 과정을 이겨내는 사람들에게 열린다

이 천화동인(天火同人)괘 각각의 효(爻)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양효(陽爻)인 초구(初九)는 문밖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듯 처음부터 공정하게 동참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初九 同人于門 无咎).
두 번째 음효(陰爻)인 육이(六二)에 대하여는 지나치게 자신의 일족과 같은 편협된 사람들과만 함께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六二 同人于宗 吝).

세 번째 양효인 구삼(九三)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강한 것만을 믿고 세력을 키워나가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九三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 군사들을 숲에 매복시키거나, 높은 산위에 배치하더라도 3년동안이나 흥할 수가 없다). 즉 사람들과 함께 하더라도 너무 성급히 세력을 확장한다던지, 큰 일을 빨리 해내는 것은 힘들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양효인 구사(九四)에 대해서는 보루(堡壘)나 진지 위까지 올라가기까지 하였으나 결국은 공격을 하지 않아서 좋은 것이라 하였으니(九四 乘其墉 弗克攻 吉), 세력을 많이 키우더라도 결국은 싸움이나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멈춤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충고입니다.

다섯 번째 양효인 구오(九五)에 대해서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함이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아서 울부짖게 되나 결국에는 잘 되어 웃음을 짓게 될 것이되, 큰 군사를 일으키듯 노력을 해서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함께 만남을 이룰 수 있다 하였습니다(九五 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천화동인(天火同人)괘와 관련된 증(證)으로는 몸에서 당여(黨與)를 주관하는 간이 큰(肝大) 태음인(太陰人)에게 잘 나타나는 조열병증(燥熱病證: 引飮, 小便多, 大便秘) 등이 있으며, 동의수세보원에서는 이러한 병증에 열다한소탕(熱多寒少湯) 등을 권하고 있습니다. <격주연재>

박완수
경원대 한의대 병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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