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정 칼럼] 친절한 기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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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칼럼] 친절한 기백씨
  • 승인 2009.02.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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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질문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복합적 전제가 들어 있어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경우에 발생하는 오류이다.
(예) 금연하셨습니까?
- 예. (그럼 이전까지 흡연했다는 이야긴가?)
- 아니오. (계속 흡연하겠다는 이야긴가?)

그렇다면 위 질문을 받았을 때 만약 내가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너 금연했어?” / “난 원래 흡연한 적 없는데?” / “그게 뭔소리야. 지금 핀다는 거야 안 핀다는 거야?” / “안 피워” / “그럼 금연한거네” / “아니 처음부터 피지 않았고 지금도 안 피운다구. 세상의 모든 사람이 흡연할 거라는 생각을 버려. 흡연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 “예 아니오로 대답하면 될 걸 뭘 복잡하게… 금연했어 안했어?” / “아 둘 다 아니라니까” / “둘 다 아닌 게 어딨어? 피는 거 아니면 안 피는 거지! 둘 다 아니라면 니 말은 피면서 동시에 안 필 수도 있다는 거야?”

위 질문자의 오류는 아무런 근거 없이 “모두 담배를 피웠었다”라는 전제를 깔아버린 것이다. “애시당초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도 있다”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위 질문자의 질문이 매우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만약, 세상사람 모두들 “모두가 한번쯤 담배를 피운다” 라는 걸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이라면 처음부터 담배피우지 않았던 사람의 대답은 답답하고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결과물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하면서도 한의학에 대해 저런 복합질문의 오류를 너무도 당연하고 태연하게 자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항상 한의학이 내가 일찍이 알고 있는 상식과 닿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명백한 실험결과물과 통계자료 등에 배치되는 한의학의 글귀들에서 좌절하곤 한다.
‘상식이 틀렸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라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실험결과와 통계자료]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생각의 틀을 넓게 하면, 그 실험결과도 말이 되면서 동시에 그와 배치되는 한의학적 문구도 말이 되는 논거가 만들어진다.
‘모두가 흡연자였다’라는 무의식의 대전제는 “금연하지 않은 자는 흡연중이다”라는 논거를 낳지만, ‘애시당초 흡연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라는 걸 받아들이면 “금연하지 않은 사람 중에 흡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라는 논거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일전에 황제내경 소문의 기혈론편을 보며, 황제와 기백의 연극 같은 장구한 대화장면이 나오는데, 황제 왈 “기혈과 365의 관계는?”이라는 질문에 기백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 이거 어려운데 어쩌지”라고 하자 다시 황제께서 머뭇거리며 손을 받들고 겸손한 자세로 물러나면서 “도를 알려주세요. 제가 어리숙하나 노력할게요”라고 하자 거듭 기백이 “아 내가 쉽게 설명할 처지가 안 되는 하수인데요”라며 서로 어쩔 줄 모르며 겸양하다가 결국엔 기백이 알려주기로 하고 대신에 공개하지 말 것을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도 출판이 힘들고 책이 귀하던 시절 의학과 상관없는 이러한 부분을 삭제하지 않고 적어놓은 것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부딪히게 될 수많은 의구심에 대해 얼마나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떨치고 떨쳐내야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남겨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로 그 이후에 나오는 내용을 피상적으로 읽을 때와 모든 상식을 접고 읽을 때의 내용은 무궁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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