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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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의 1년...
  • 승인 2009.02.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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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환희에 찬 피날레 만들어낼 것”

한의학전문대학원(이하 한의전)에 들어와서 두 번째 맞는 방학이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필자는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며 베토벤의 9번 교향곡<합창>을 감상하고 있다. 1시간 10분의 연주시간 동안 지난 1년이라는 시간들이 흔히들 말하는 영화속 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 제1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un poco maestoso(빠르게,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그리고 좀 위엄을 가지고)

신입생오리엔테이션(이하 OT)을 9박 10일이나!!! 게다가 학교에서 보내준 일정표에는 한문, 동양철학, 시험 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통 OT는 친목시간이어야 하는데, OT 기간 동안 시험 때문에 서로에 대해 잘 알기도 전에 자습실에서 공부한 기억이 더 많다. 이 모습이 지금까지 쭈~욱 계속 될 꺼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 제2악장 - Molto vivace(매우 빠르고 생기 있게)

양산캠퍼스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임시로 장전캠퍼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50개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서 들어갈 정도의 작은 강의실에 50명의 학생이 하루 종일 수업 받는 모습이 고등학교 모습 그 자체였다. 오전 9시에 시작하는 수업은 가끔 특강이나 보충강의로 밤늦게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오후 4시 정도면 끝났다.
전체적으로 자기주도적 학습 분위기를 많이 유도하였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 두 시간은 무조건 시험시간으로 배정되었다. 시험은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고, 기말에 가까워져서는 두 번씩 볼 때도 허다했다.

입학 전부터 다른 한의대와 달리 통합교육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 1년 동안은 기초교과목에 관한 통합교육을 받았는데, 인체의 장상과 양생, 인체의 구조와 기능, 현대사회와 한의학, 인체 질환의 인식과 해석, 인체 반응과 질병의 원리, 분자세포의학 등의 과목명으로 한의학원전, 해부, 세포, 조직, 한·양방생리, 한·양방병리 수업 등이 연달아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통합 강의는 각 과목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을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배우게 되어 반복으로 인한 번거로움이나 집중도 저하를 해결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각 과목마다 현대연구동향이라는 시간이 있다. 교수님께서 관련 주제에 대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와 관련 이슈 등을 설명해 주시고, 학생들은 논문을 읽고 발표하는 시간이다. 빡빡한 학사일정에 시간을 쪼개어 준비한다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이때만큼은 우리가 대학원생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것 같았다.

■ 제3악장 - Adagio molto e cantabile, Andante moderato(매우 느리게 노래하듯이, 중간 빠르기로)

한의전 1기의 학문적 배경은 정말 다양하다. 학부 전공을 보면 생물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계열과 컴퓨터공학, 화학공학 등 공학계열, 수의학, 약학 등 의약계열, 법학, 경영학 등의 인문계열 등이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도 상당수다. 그래서인지 교수님들께서 가끔 농담반 진담반으로 학생들 때문에 수업 준비를 더 철저히 준비해오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만큼이나 생각도 다양하다. 과 총회를 하면 여러 다양한 의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과대가 난색을 표한 경우도 종종 있고, 토론 수업 때면 각자 자신의 생각이 끊이지 않아 수업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이 많았다.
하루하루 빡빡한 수업과 과제, 거의 매주 치르는 시험 속에서도 생일파티니 조별 뒷풀이니 하는 명목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고, 수업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직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놀란 것은, 일반 대학원에서 교수와 학생과의 관계는 대체로 서먹하거나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학생의 인원이 적어서인지 교수님들께서는 학생 개개인에 대해 모두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행여 아픈 학생이 있으면 일일이 챙겨 주시며, 한의학 공부방법이나 정보를 찾아서 알려 주시고 조언해 주시는 등 선배로서의 역할도 해 주신다. 그리고 가끔 우리와 야구나 뒷풀이도 함께 하신다. 때로는 서로에 대한 오해로 틈이 나는 경우도 생기지만 말이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한가족”을 만들어 온듯하다.

■ 제4악장 - 피날레(finale)를 향하여

방학이라고 했지만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방학은 아닌 셈이다. 12월 23일 마지막 시험을 끝내자마자 연구논문 지도교수님의 지도로 각자 배정된 연구실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한의학 연구과정” 시간이다. 방학 전 2주 정도의 수업인데, 지난여름에는 통계학, 실험기법, 논문작성법 등에 관한 연구를 위한 기초 과정을 배웠고, 이번 겨울에는 각자 연구실에서 앞으로 자신이 연구할 주제를 정하고 관련 논문을 탐독하고 실험·연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연구하기에는 2주라는 시간이 턱없이 짧기 때문에 대부분 방학을 반납할 각오를 하고 있다.

현재 한의계는 많은 어려움과 마주하고 있다. 타의료기관이나 주변단체와의 갈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부 선진국이나 중국과 한의학 산업을 둘러싼 갈등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 가운데 최초로 국립 한의전이 설립되었고, 한의전 1기로 한의학을 향한 열정과 기존 전공 지식과 한의학 지식의 결합을 통해 한의학을 세계화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달려온 지 이제 겨우 1년이 지났다. 앞으로 남은 3년 동안 우리는 빠르게 혹은 느리게 달려 1, 2, 3 악장을 계속 반복하며 연주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피날레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연주는 어느덧 4악장의 도입부이다. <합창> 교향곡이 만들어졌을 때 베토벤은 완전히 청력을 잃었고,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당시 정치 및 경제상의 불안은 그의 생계를 궁지에 몰리게 하였으며, 유일한 조카는 금전문제 등으로 그를 괴롭혔다. 그 와중에서도 베토벤은 일어서서 명랑하게 “환희에의 송가”를 노래하며, 예술로 인생의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의 모습에 우리의 모습을 비춰본다. 우리 역시 언젠가 환희에 찬 피날레를 멋지게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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