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조선잡기(朝鮮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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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조선잡기(朝鮮雜記)
  • 승인 2009.02.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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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정보원의 조선정탐록

조선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 풍속들을 표현한 것이 사뭇 재미있다. 비록 대륙경영에 나선 일본 낭인(浪人) 정보원들의 정탐기록이긴 하지만, 100년 전의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생활상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재미있는 시간여행을 하는듯한 착각을 가질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은 개항이후 일본의 지사들이 대륙경영에 뜻을 품고 조선에 건너와 내정을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야욕을 드러낼 무렵의 기록이다.

풍전등화 같은 조선의 실정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 정말 이토록 처참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당시의 상황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임금은 왕실의 안위를 걱정하고, 대신과 관리는 가렴주구에 급급하고, 양식 있다는 양반은 가문의 안위만 걱정하고, 더 이상 비참할 수조차도 없는 일반 백성은 미래가 없이 안일하다. 아무도 나라를 걱정하는 이가 없는 조선은 열강의 침략이 눈앞에 있는 줄도 모르면서 태풍전야의 고요 속에 그저 잠잠하기만 하다.

이것이 침략을 앞두고 정탐활동을 했던 한 일본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이다. 그에 대해 역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한 후에는 군인과 상인, 일확천금을 노리는 무뢰배, 대아시아주의 실현을 꿈꾸는 낭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통감부나 총독부, 식민지 수탈기구의 관리가 되거나 경제·종교·교육방면에서 활동하고 신문, 잡지를 경영하거나 통신원이 되어 정보원 역할을 하면서 조선 침략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탐활동을 벌였다. 혼마 규스케도 그렇게 활동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1893년부터 일 년 남짓하게 조선 전국을 정탐하여 조선인의 순진하고 무사태평함, 그리고 불결ㆍ나태ㆍ부패로 얼룩진 당시의 상황을 선진문명국 사람으로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의료에 관한 몇 가지 상황묘사도 있으니 그 중 하나를 소개해본다.
<질병자> 여름에 야외를 걸으면 곳곳에 가마니를 가지고 둘러서 벽을 만들어 반 칸 사방의 작은 집에 짚을 깔고 마르고 수척한 사람이 고통스럽게 누워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구걸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전염병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이다. 조선에서는 역병을 죽을병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치유된 사람을 요행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가족을 전염시키는 것을 걱정하여, 야외의 작은 집에 옮겨놓는다. 물론 약을 주는 일이 없으며 대개 버려서 죽이는 것과 같다. 아아, 무정하다. 시체를 야외에 두어 우로를 맞게 하는 풍속, 과연 이것을 말한다.

이처럼 의료혜택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아 그저 요행이나 바라고 있는 민중에게 부패한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라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이 땅의 민족의학은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과 황도연의 『방약합편(方藥合編)』, 그리고 이규준의 『의감중마(醫鑑重磨)』를 배출했다.
이후의 암울했던 시기의 계속되는 침탈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밝히는 등대처럼 한의학의 새로운 도약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값 1만3천원>

金洪均
서울 광진구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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