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원전학교실 山東中醫藥大學 探訪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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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원전학교실 山東中醫藥大學 探訪記(2)
  • 승인 2009.02.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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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본 연구 가능성과 숙제 확인은 성과

■ 靈樞 朝鮮版의 행적을 찾아서 ■

예고 드린 대로 오늘은 이번 산동 탐방의 주요 성과로서 ‘太素’와 ‘靈樞 朝鮮版’ 판본에 대한 학술교류 내용을 위주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배경부터 말씀드리겠다.
太素의 경우 ‘미래한의과학자’ 프로그램의 주제로서 ‘杏雨書屋本’을 연구하게 되었음은 지난 기회에 밝힌 바 있다. 사실 太素는 日本 仁和寺에서 12C 丹波雷基의 抄本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연구가 시작되어, 판본 연구의 중심지는 일본이므로 이번 山東行에 특별한 기대는 걸 수 없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靈樞 朝鮮版으로 말하자면 정확히 山東에 가서 물어야 하는 사연이 있었다. 발단은 대한한의학원전학회에서 素問과 靈樞의 원문 교감본 발간을 준비하는 중에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른바 ‘조선판’의 마이크로필름을 확인하게 된 데에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明宗 朝에 금속활자인 乙亥字로 찍은 朝鮮版 素問과 靈樞 가운데, 특히 靈樞는 표제지에 의하면 明代에 山東 歷城縣의 田經이라는 사람에 의해 발간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나름의 목적과 기대를 품고 14일 오전 예의 국제교류원 회의실에서 中醫文獻學의 大家 田代華 선생과 만났다. 미리 연락은 받지 못하였으나 선생의 제자로 보이는 劉更生 교수가 배석하였다. 먼저 백유상 교수가 太素의 희귀본인 ‘杏雨書屋本’을 화두로 말을 꺼내었다. 오래 전 일이라 처음에는 ‘杏雨書屋本’과 ‘缺卷覆刻本’을 혼동하는 듯이 보였으나, 馬繼興 교수의 저서 『中醫文獻學』의 해당 부분을 밑줄 그어 보여주자 이내 문헌학자 특유의 기억력을 회복하여 1980년대에 중국의 문헌학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缺卷覆刻本’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온 사실이 있으며, 자신이 현재 그 책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깜짝 놀라 그 책을 볼 수 있겠냐고 묻자, 댁이 여기서 가깝다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책을 가져 오시는 것 아닌가!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책 전체의 복사를 요청하였으나 중국에서도 소수의 관련 학자만 소장하고 있는 것이라 하며 끝내 거절하여, 사진만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책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缺卷覆刻本’에 대한 중국 측의 연구 작업이 추가된 별도의 판본이 아닌, 日本 盛文堂에서 1971년에 간행한 ‘缺卷覆刻本’을 그대로 영인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를 알 수 있었던 까닭은 사전 연구를 통하여, 국내 대구한의대학교 도서관이 성문당에서 간행한 ‘缺卷覆刻本’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 복사본의 일부를 이미 입수하여 내용 검토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대구한의대학교 소장 盛文堂本 太素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우리가 이번 연구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朝鮮版 靈樞의 경우 사정이 더욱 어려웠다. 田代華 교수께서 직접 참여하신 『黃帝內經靈樞校釋』의 참고문헌으로 인용된 ‘朝鮮版’을 들어 묻자, 선생은 原書를 직접 보았다기보다는 마이크로필름을 보았으리라고 추정하였다. 다시 그 필름이 있겠느냐고 묻자, 필름 관리하시는 분이 최근 수술을 하여 현재로서는 확인이 어렵다고 답하였다. 다시 중국 내에서 朝鮮版 靈樞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보셨느냐고 묻자, 安徽省에서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애매하게 답하였다. 결국 별다른 소득이 없는 셈이었다. 백유상 교수는 두 교수께 朝鮮版 靈樞에 대한 어떠한 정보라도 추후에 알려 주시기를 재삼 부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朝鮮版 靈樞에 대한 조사는 濟南을 떠나는 15일 오전까지 이어졌다. 백유상 교수와 나는 유경생 교수의 조언에 따라 실낱같은 기대를 붙잡고 직접 조사차 산동성 도서관을 찾은 것이다. 4층에 자리한 넓은 古文獻室로 직접 찾아간 우리는 부주임인 唐雲虹 선생의 배려로 도서관이 소장한 靈樞 古本을 볼 수 있었다. 서지정보를 통해 짐작은 하였지만, 이것은 가장 흔한 판본 가운데 하나인 명대의 ‘趙府居敬堂刊本’으로서 우리가 찾던 田經本은 아니어서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은 부수적인 소득이 있었다. 唐 부주임이 고문헌의 검색을 위해 이용하는 上中下 3卷으로 된 커다란 책이 중국 고문헌 善本의 소장 위치를 정리한 자료임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이 책(中國古籍善本書目書名索引)을 구입하여 입수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 이로써 다음에 판본 조사차 중국에 갈 때에는 적어도 목적지를 분명하게 알고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나름의 보람이었다.

이렇게 출국 당일 오전까지 긴박하게 진행되었던 판본과 관련된 접견과 조사는 결과적으로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太素의 경우 한국에서 최초로 수행되는 太素 판본 관련 연구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朝鮮版 靈樞의 경우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 가능성과 숙제에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15일에는 하루의 촉박한 일정으로 泰山과 曲府를 둘러보았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泰山 정상은 인적은 드물고 칼날 같은 바람만 윙윙거렸다. 멀리 한반도가 자리한 동쪽을 향해 함성을 지르고, 준비해 간 보드카 한잔으로 몸을 녹인 후에 바삐 하산하였다. 曲府에서는 孔林의 孔子 묘와 子思 묘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고 孔廟를 둘러보았다.

지금 회고하자니 4박 5일이 마치 하루처럼 흘러가 버렸다. 山東中醫藥大學 人士들은 마치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우리를 맞아 주었다. 게다가 기후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음식 또한 입에 잘 맞아 어느 때보다 순탄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체류하는 동안 우리 일행을 도와주신 현지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끝>

대표필자 장우창
경희대학교 한의대 원전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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