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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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 승인 2009.02.0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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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키워드로 본 영화

길지 않은 설 연휴가 후딱 지나갔습니다. 강추위에 폭설까지 더해 귀성길은 그야말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던데, 혹 원행(遠行)이 필요 없었던 분들은 짧은 그 며칠 동안 무얼 하며 보내셨나요? 여가 활용의 방법이 다들 다르겠지만, 저는 등산·바둑과 함께 주구장창 영화를 본답니다. ‘삼국지 적벽대전’처럼 장대한 스펙터클의 영화는 꼭 대형 스크린의 극장을 찾아가서, ‘배트맨 다크 나이트’처럼 재분석을 요하는 영화는 되도록 DVD까지 구매해 책상에 앉아서, 유선방송에서 재탕 삼탕 방영되는 그러저러한 킬링타임용 영화는 졸릴 때에 맞추어 안방에 누워 뒹굴면서…….

그런데 가끔씩은, 아니 상당히 자주, ‘보기’만으론 성에 차지 않아 ‘읽기’까지 모색하게 되더군요. 영화 관련 책들을 이리저리 뒤져보는 것입니다.
일반 대중이 손쉽게 접하는 예술, 그만큼 일반 대중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예술이 영화이기 때문일까요? 시중의 도서 매장에서 접할 수 있는 영화 관련 서적들 또한 엄청나게 많더군요. 물론 제가 올곧게 공 들여야 하는 분야는 한의학이므로 이렇게 엉뚱한 곳으로 애정 어린 눈길을 건네선 안되겠지만, 그간의 일탈(?!)에 따른 보상만큼은 톡톡히 받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이진경 님의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7편의 영화』, 정재승 님의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김용규 님의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도 님의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등과 같은 양서들은 영화 관련 책들에 대한 곁눈질이 아니었다면 쉽게 찾아내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이번 설 고향 길의 와중에 재미있게 읽은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은 영화평론가 이상용 님의 글입니다. 내려갈 때 버스 안에서 해치울 가벼운 읽을거리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중 겉 표지의 알프레드 히치콕 삽화와 함께 저자의 이력이 맘에 들어 구입했던 책이지요. 사실 제가 어릴 적부터 워낙 영화보기를 즐겼던지라 고교 때엔 영화평론가가 꿈이었습니다. ㅋㅋ. 일독 후의 느낌은? 글쎄요, 개인적인 견해로는 앞서 언급한 4편의 책들보다는 못해도 박찬욱 감독의 『박찬욱의 오마주』·『박찬욱의 몽타주』에 비견되기엔 충분하더군요.

책은 모두 12장으로 구성됩니다. 저자가 섭렵했던 여러 영화들을 12가지 키워드 - 거짓말·웃음·환상·시간·역사·사이버·관계·세상의 어머니·현대영화 속 얼굴·영웅·복수·알프레드 히치콕 - 로 분류하여 각 영화들의 수준과 가치를 평가해놓은 것입니다. 항상 그렇겠지만, 읽다보면 영화의 단순한 줄거리 나열보다는 내면에 담긴 철학적 함의 해석에 더욱 흥미를 느끼실 겁니다. 가령 「클로저(Closer)」라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타인은 지옥이지만, 어쩔 수 없이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꿈꾸는 낙원이기도 하다”는 사르트르의 말을 덧붙인 대목에서처럼…….

마지막으로 명품 독립영화 한 편을 강추합니다.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이렇게 말씀드렸는데도 안 보시면, 혹 나중에 이런 소리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영화 보셨남? 안 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삼.” <값 1만1천원>

안세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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