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원전학교실 山東中醫藥大學 探訪記(1)
상태바
경희대 원전학교실 山東中醫藥大學 探訪記(1)
  • 승인 2009.01.28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대가의 신념과 실용지향의 전통 재확인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원전학교실 동계 해외학술탐방단, 즉 교수 2인(백유상, 필자), 조교 3인(김용주, 김종현, 박수현), 학생 4인(박소라, 김건우, 장동환, 박준형)으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2009년 1월 12일에서 16일까지 5일에 걸쳐 中國 山東省 濟南에 머무르며 山東中醫藥大學과 學術交流를 진행하였다. 4박 5일의 일정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적지 않기에 2차례로 나누어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먼저 여행의 배경과 목적, 그리고 黃帝內經 관련 학술교류를 위주로 말씀드리고, 다음에는 이번 탐방의 주요 목적으로서 황제내경 관련 판본에 대한 교류 내용을 집중적으로 말씀드리겠다.

이번 山東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특성화사업단에서 주관하는 2009년도 ‘미래한의과학자’ 프로그램이다. 原典學敎室에서는 세 학생의 지원을 받아 2008년도 11월부터 2009년도 1월까지 2달 동안 黃帝內經太素(이하 太素로 간칭)의 판본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침 우리는 지난 2008년도 대한한의학원전학회 주최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太素의 진귀한 판본인 ‘杏雨書屋本’의 원본 카피 전체를 입수한 터여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써 전 교실원의 참여 하에 작년부터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해외학술탐방의 금년 목적지는 山東으로 결정하였다.

山東은 예로부터 학술이 융성하였던 齊魯의 故土로서 黃老學의 발상지이며, 지금도 철학 특히 易學이 유명하고 中醫學 방면에서는 黃帝內經과 문헌학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곳이므로 이번 탐방지로 적격이었다. 여기에 중요한 목적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黃帝內經靈樞 ‘朝鮮本’ 관련 판본을 확인하고 수집하는 일이 그것이다.

13일 오전 山東中醫藥大學 國際交流院 회의실에 마련된 환영회 자리에서 원장 劉昭純 교수로부터 학교 소개를 들었다. 아쉽게도, 학교가 10배 크기의 新校舍를 지어 이전 중이어서 舊校舍의 기능이 약화된 데다 마침 지난 주 금요일로 학기가 끝난 상태여서 학교가 조용할뿐더러 시설을 견학하기도 어려웠다. 劉 院長은 山東中醫藥大學은 중점과제가 黃帝內經과 中醫基礎 분야라는 강조의 말을 잊지 않았다. 배석한 遲華基 교수는 현재 은퇴한 상태지만 黃帝內經 연구에 평생을 바친 분이시며, 孫廣仁 교수는 中醫基礎 분야를 대표하는 분이다.

1959년에 입학하여 모교에서 봉직하다 퇴임한 山東中醫藥大學 역사의 산 증인인 遲華基 교수의 述懷에 의하면 대학은 1958년에 易經연구실로 출범하여 여러 차례 통폐합을 거친 이래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遲교수께서는 1959년에 입학하여 스승 없이 홀로 黃帝內經 연구를 시작하셨다고 하시니, 한국에서 黃帝內經 연구를 이으신 故 洪元植 선생님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여 先覺의 고단한 노력에 순간 가슴이 뭉클하였다.

遲華基 교수는 黃帝內經 연구에 있어 그 ‘종합적’인 성격을 강조하였다. 말씀하는 바 종합이란 임상과 이론의 종합은 물론이요, 임상과 이론 각각에 있어서도 多學際 간의 종합을 의미하는 종합적, 통찰적 이성임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老大家의 평생 自得이 지금 유행하는 ‘統攝’과 별반 차이가 없으니, 굳이 멀리서 찾을 일도 아님을 새삼 느꼈다.

대화는 자연스레 古文이 익숙하지 않은 지금 세대들에게 어떻게 하면 黃帝內經을 잘 가르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遲 교수께서는 강의하는 사람 자신의 ‘信心’을 강조하였으며, 이해를 돕기 위한 현장감 있는 비유를 요령으로 들었다. 그 바탕에는 大家들에게서 보이는 학문에 대한 깊은 신념과 학생들에의 사랑이 있음을 지척에서 전해오는 낯빛과 숨결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자신의 현재 연구 분야에 대해서는 ‘治未病’, ‘養生’을 말씀하였다.

주최측에서 마련한 오찬에 이어 당일 오후에는 孫廣仁 교수 및 그의 연구생들과 격이 없는 學術討論會가 이어졌다. 孫교수는 본래 서양의학을 전공한 분으로서 중의학 언어의 개념화, 표준화 방면으로 쓴 논문들을 국내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날은 주로 불면증 치료와 관련된 자신의 임상 경험을 집중적으로 설명하였다. 문헌학을 하면서도 약물 하나하나의 특성에 대해서까지 파악하는 임상가적인 면모가 동시에 나타나는 점이 일견 신기하였으며, 이런 것이 바로 중국적인 실용성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이어진 순서에서는 孫 교수의 四象醫學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白裕相 교수의 답변이 주를 이루었다. 周易과 東武의 四象 개념, 臟腑의 五行 배속 상의 차이, 體質의 파악에 있어 관건이 되는 요소의 문제, 예컨대 性情과 體形氣像 등의 연관 문제 그리고 四象醫學과 辨證醫學에서 ‘心’의 의미 등 거의 전 영역에 걸쳐 문제가 제기되고 서로의 견해가 피력되었으나 양자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에서 그쳤다. 이는 辨證論的 전통을 고수하여, 東武 체질의학의 전면적인 전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체질을 다수 변증 요소의 일부로 축소하여 받아들이는 데에 만족하는 중국적 전통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으며, 역으로 그것이 중국식 辨證論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날 학술교류를 통해 황제내경 연구에 평생을 바친 대가의 신념을 체험하고 실용을 지향하는 중국적 전통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山東中醫藥大學 黃帝內經 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자부하는 이들을 만날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아쉬움은 다음날 오전에 마련된 문헌학의 대가 田代華 교수와의 접견으로 돌렸다. 이 만남에는 黃帝內經太素 ‘缺卷覆刻本’의 존재, 靈樞 朝鮮本의 원본인 山東 歷城 田經本에 대한 조사라는 중대 문제가 걸려 있었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