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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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25)
  • 승인 2009.01.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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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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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드롬(paradrome)의 해석(상) ■
천수송(天水訟)

다툰다는 것(송)은 믿음을 두고 하는 것이지만 막힘도 있고 두려움도 있으니 중간에는 길하더라도 마침내는 흉하리라(訟 有孚 窒愓 中吉 終凶).

<본문>

지난 호의 수천수(水天需 : 괘)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천수송(天水訟 : 괘)괘입니다.
천수송(天水訟)괘는 하늘(괘) 밑에 물(괘)이 있는 모양입니다. 천양(天陽)은 위로 올라가려 하고(上行), 물(水)의 성질은 아래로 흐르려 하니 이 두 가지의 움직임이 서로 어긋나는 지라(相違), 그래서 ‘다툼(訟)’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서괘전(序卦傳)에서는 수천수(水天需)괘에서 음식으로 길러짐을 받는 것이 나오는데, 음식에는 반드시 다툼이 있기 때문에 천수송(天水訟)괘가 그 뒤를 잇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序卦 飮食必有訟 故受之以訟 人之所需者 飮食 旣有所須 爭訟所由起也 訟所以次需也).

◆ 다투는 것(訟)에는 막힘도 있고 두려움도 있으니

이 수천수(水天需)괘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다툰다는 것(訟)은 믿음을 두고 하는 것이지만 막힘도 있고 두려움도 있으니 중간에는 길하더라도 마침내는 흉하리라(訟 有孚 窒惕 中吉 終凶)’고 하였습니다.
즉 어떤 이익이나 재물, 권리를 놓고 다투며 송사하는 것은 ‘내가 이길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시작하기 때문에 ‘믿음이 있다(有孚)’라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바탕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툼이나 재판을 하다보면 자신의 논리전개가 막힐 때도 있고(窒) 때로는 웬지 다툼에서 질 것 같은 두려운 마음(惕)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싸우는 중간에는 좋은 것 같지만(中吉) 마침내는 좋지 않은(終凶)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다툼의 시기에는 자신에게 조언을 해줄 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로운 것이요, 큰 내를 건너듯 위험한 일에 도전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利見大人 不利涉大川).

◆ 다툼으로는 사업을 이룰 수가 없다

단사(彖辭;彖曰)에 나오는 글 중 ‘마침내 흉하다는 것은 다툼이 완성되기는 불가하기 때문이라(終凶 訟不可成也)’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어떤 사업이나 일을 제대로, 훌륭히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혹은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추진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믿으면 무조건 저돌적으로 추진하고, 장애물을 만나면 싸워 제거하고, 때로는 재판으로 벌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는 ‘사업의 완성’을 제대로 해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괘의 상을 보고 설명하기로는 ‘하늘과 물이 서로 어긋나서 움직이는 것이 다툼(訟)이니 군자가 이로써 일을 지으매 처음을 잘 생각하는 것이니라(象曰 天與水 違行 訟 君子 以 作事謀始)’고 하였습니다.
즉 하늘과 물이 서로 어긋나는 듯이 서로 다툼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되도록 그 다툼과 재판 혹은 송사가 커지지 않고 적당히 잘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실마리를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른바 ‘중재자’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수송(天水訟)괘의 첫 번째 효(陰爻이므로 初六)에 대한 설명에서는 ‘오래하는 바의 일이 아니라면 조금 말이 있을지언정 마침내는 좋을 것이리라(初六 不永所事 小有言 終吉)’고 하였고 그 상(象)으로 말하기는 ‘다툼은 오래하는 것이 불가하다(象曰 不永所事 訟不可長也)’고 하였습니다. 즉 다툼이나 재판, 송사는 길게 하지 말고 가능한 한 짧게 끝내라는 말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효(陽爻이므로 九二)에 대해서는 ‘다툼을 이기지 못함이니 돌아가서 피하되 사람들이 몇 백 명 정도 되는 곳이면 허물이 없으리라(九二 不克訟 歸而逋 其邑人 三百戶 无眚)’고 하였으며 그 상(象)으로 말하기는 ‘다툼을 이기지 못하여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며 아래로부터 위와 다투는 것에 걱정이 절로 오는 것임이라(象曰 不克訟 歸而逋竄也 自下訟上 患至輟也)’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효(陰爻이므로 六三)에 대해서는 ‘옛 덕에 의지하여 지내되 바르면 위태로우나 마침내는 좋을 것이리라. 혹 왕의 일을 따라가더라도 이룸은 없음이라(六三 食舊德 貞厲 終吉 或從王事 无成)’고 하였고 그 상(象)에 말하기는 ‘옛 덕에 의지함은 위를 따름이 좋은 것이라(象曰 食舊德 從上 吉也)’고 하였습니다. 재판이나 싸움을 하여 무엇을 얻거나 이루는 것(成)을 목표로 하여 행동하지 말것을 다시 강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기지 못하는 다툼에서는 물러나서 마음을 바꾸어야

네 번째 효(陽爻이므로 九四)에 대해서는 ‘다툼을 이기지 못하니 다시 바른 이치를 취하여 마음을 바꾸면 안정되어 좋을 것이리라(九四 不克訟 復卽命 渝 安貞 吉)’고 하였으며 그 상(象)에 말하기는 ‘그렇게 함이 잃지 않는 것이리라(象曰復卽命渝安貞은 不失也)’고 하였습니다. 이기지 못할 다툼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서 싸움을 그만 두고 바른 이치를 실행하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섯 번째 효(陽爻이므로 九五)에 대해서는 ‘다툼에 크게 좋으리라(九五 訟 元吉)’고 하였으며 그 상(象)에 대해서 말하기는 ‘다툼에 크게 좋다고 한 것은 바르고 치우치지 않기 때문이라(象曰 訟元吉 以中正也)’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다툼이나 송사, 재판에 임함에 있어 바르게 하고, 불편부당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크게 좋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대의명분(大義名分)’이 확실한 상황이나 부당하지 않은 주장을 한다면 송사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정의로운 마음으로 떳떳이 재판에 임하면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효(陽爻이므로 上九)에 대해서는 ‘혹시 다툼에 이겨서 상을 받더라도 아침이 되기까지 세 번이나 뺏기리라(上九 或錫之鞶帶 終朝三褫之)’고 했으며 그 상(象)으로 말하기는 ‘재판으로서 복종함을 받더라도 또한 존경받기에는 부족함이라(象曰 以訟受服 亦不足敬也)’고 하였습니다. 즉 재판이나, 송사 혹은 싸움을 통해서 얻은 재물, 권력 혹은 항복 등이 진실로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고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 조화(調和)롭지 못하고 다투어서 생기는 증(證)들 중 하나가 ‘간비불화(肝脾不和)’입니다. 간(肝)의 소설(疏泄)기능과 비(脾)의 운화(運化)기능이 서로 조화롭지 못하고 서로의 힘으로 다툴 때 ‘兩脇脹滿疼痛, 脘腹脹滿, 食慾不振, 煩躁易怒’등의 증상이 나타남으로써 ‘간비불화(肝脾不和)’라는 증(證 ; paradrome)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툼의 화해(和解)와 해결을 위하여 ‘疏肝健脾’의 해법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격주연재>

박완수
경원대 한의대 병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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