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터뷰1] 경희대 한의대 김윤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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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인터뷰1] 경희대 한의대 김윤범 교수
  • 승인 2008.12.2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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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학의 새 좌표를 세우자 -
경희대 한의대 안이비인후피부과 김윤범 교수


“위기요? 오히려 지금이 기회죠”

민족의학신문은 686호(2008년 11월 17일자)에 실린 윤상협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단법의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그의 연구방법론을 들어보았다. 한의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본지에서는 윤 교수처럼 한의학이 한의학다움을 견지하고, 국민들에게 의료의 한 축으로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객관적인 연구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여러 인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 기획은 본지 창간 20주년을 맞아 발전적인 한의학의 미래를 제안하기 위해 마련됐다. <편집자 주>

경희한방병원 10층에는 동물연구실험실이 있다. 이곳에 있는 실험쥐들은 아토피 피부염, 축농증, 알러지 피부염, 이명 등 질환별 병태모델별로 분류돼 있으며 김윤범 교수의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원이 된다. 환자를 보거나 연구실에 있을 때 외에는 수시로 들러 실험을 하고, 모든 연구결과를 객관화된 데이터를 통해 밝히곤 한다.

■ 병태모델 실험을 통한 연구방법 제시

5년여 전부터 동물실험을 직접 해온 김윤범 교수는 그간 다양한 병태모델을 통해 여러 약재들의 효능을 확인하고 안전성을 검토해왔다. 이같은 연구방법을 통해 써야 할 한약재와 아닌 한약재를 구분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청열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황련같은 경우는 아토피피부염에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실험결과를 통해 밝혔다. (2008년 대한한방내과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논문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 실제’)

여러 외용제도 개발했는데 그가 만든 미백고·진정고는 현재 경희대 한방병원 한방피부과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물론 관련 특허도 받았다.
산·학연구에도 활발한 성과를 내놓고 있다. 코리아나(자인), 태평양(설화수 리뉴얼 라인) 등과 손잡고 한방화장품을 공동 개발하면서 흔한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개발비 보다 한의학에 대한 이미지가 제고되면서 영역을 넓히는 데 일조한 것이 더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가시적인 결과물 외에 그는 자신의 연구방법을 통해 세 가지 성과물을 얻었다고 한다. 첫째, 예전과 달리 지금은 치료결과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면서 환자를 선도하게 된 점, 둘째 실험을 위해 타학문을 공부 하다보니 대화 및 설득이 가능해지고 한의학에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된 점, 셋째 다른 사람들의 치료법이나 신 의약품들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긴 점 등이다.

실험을 통해 자체기술을 보유할 수 있게 됐고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힘이 됐다며 최근 어려움에 봉착한 한의사들도 자체 연구를 통해 스스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깨닫는 과정을 체감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한의사들이 주의해야 할 게 “연구의 핵심을 흐르고 있는 논조, 즉 한의학적인 마인드를 절대 잃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 한약재 표준화 작업 시급

실험연구를 하다보니 부딪치는 어려움도 있었다. ‘한약재의 표준화’가 그것으로, 그는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었다. “국가적으로도 대대적인 지원이 있었고, 쯔무라 같은 거대한 제약사도 투자비를 쏟아부으면서 2006년에서야 약재 표준화를 이뤘다”면서 국내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미래를 위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방고유이론에 의해 정의를 내리고 판단할 수 있는 툴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한의학적인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해외에서나 양의학계, 심지어는 국민들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쪽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내면 한의학적이지 않다고 비난받는다”고 하소연하면서 한방이론에 대한 정의와 그에 준하는 정량·정성적 분석이 가능한 실험툴을 한의계 내부에서 개발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 진단기기 사용 등 허용범위 넓혀야

김 교수는 그의 삶의 방식을 “천천히 전진하되 결코 후퇴하지 않았다”고 반추했다. 지금의 어려운 시기 역시 마찬가지라면서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가장 어려울 때 단결력을 발휘해 단계적으로 전진하면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며, 구체적으로는 제도권 하에서 한약, 진단기기, 치료기기의 범위를 폭넓게 허용해주도록 범한의계가 단합된 목소리로 정부에 건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약의 경우 조금이라도 가공을 거치는 순간 약사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의사들의 영역은 좁아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진단기기에 있어서도 “한의계 내외부에서 객관화된 방법과 수치를 내놓으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진단기기의 폭넓은 사용을 허용해야 할 것”이라며 비침습적인 방법이거나, 수가를 발생하지 않고 연구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선에서 허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약을 복용해야 한다면, 맥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근거를 가지고 권해야하는데 무조건 좋다고만 해서 지금 건기식이 득세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는 그는 한의사들도 자기쇄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의서에 나오니까 무조건 좋다’가 아니라 외국이든 국내든 근거 데이터를 찾던가, 아니면 스스로 실험을 통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한의사 스스로 역량을 키우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동의보감’에도 효능있는 약재도, 또 나쁜 약재도 있을 수 있다. 모든 데이터를 한의계가 나서서 분류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이러한 분류작업을 “한약의 좌표값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위기가 경기탓만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혹 경기가 좋아진다 해도 우리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다면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위기의 한의계에 희망은 있는가? 그는 이 질문에 “한의학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한의사들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의학계가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가 그들의 의료근거를 만들어주었듯, 우리 역시 더욱 연구에 매진해야 나가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의 말처럼 한의계 스스로가 생존해야 할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 해나간다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갈 길이 멀 뿐, 희망은 분명 있다.

민족의학신문 이지연 기자 leejy7685@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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