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33] 金定濟(1916~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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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33] 金定濟(1916~1988)
  • 승인 2008.11.2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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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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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의학의 정체성을 정립한 巨木

근현대 한의학 인물 가운데 제도화, 세계화, 국제화, 학술발전 등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金定濟라는 巨木이 있다.
金定濟는 호가 운계(雲溪)로 1916년 황해도 신계군 마서면 갈현리에서 부친 김상일과 모친 홍사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학 교육을 받아 여러 경전들을 두루 섭렵하였고, 황해도 평산군의 대성학교에서는 신학문도 배웠다.
어릴 때 어머니가 병환으로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한의학에 뜻을 두어 17세가 되던 해에 황해도 송림시에 위치한 東洋醫學院을 찾아가 당시 의술로 유명했던 金泰希에게서 韓醫學을 전수받았다. 여기에서 5년간 의술연마를 받은 후에 醫生試驗에 합격하여 한의사가 되었다.

그 후 그는 황해도 사리원시에서 한의원을 개설하여 환자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그의 스승인 金泰希가 은퇴하면서 그가 경영하던 송림시의 聖濟局韓醫院의 운영을 부탁하자 한국전쟁 때까지 15년간 이곳에서 환자를 진료하였다.
이후 한국전쟁이 나면서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와 군산에 소규모 한방진료소를 차려놓고 5년 간 진료를 하기도 하였다. 1956년에는 서울로 상경하여 종로에서 聖濟局韓醫院을 개설하여 진료를 다시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1963년에는 대한한의사협회장으로 당선되어 의료법의 개정을 추진하여 6년제 한의과대학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東洋醫藥大學의 관선이사장직을 맡으면서 후진양성에도 힘썼다.
1965년에는 동양의약대학이 경희대학교로 합병되자 경희대학교의 교수로 취임하여 후학들의 교육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1977년에는 의과대학 한의학과가 한의과대학으로 개편되면서 초대학장에 취임하였고 부속한방병원장까지 겸임하였다.

1973년에는 사재를 출연하여 東洋醫學硏究所라는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한의학 연구에 이바지 하였으며, 『診療要鑑』이라는 저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974년 출판된 『診療要鑑』은 주위의 권유로 저자 자신이 집필한 그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그의 『東醫寶鑑』에 대한 깊은 연구의 결과로 나온 노작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처방은 그의 오랜 임상경험의 소산으로서 지금도 임상가에서 애용되고 있는 것들이다.

金定濟는 학문적으로 『東醫寶鑑』에 정통하여 평생 동안 『東醫寶鑑』 연구자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東醫寶鑑』 전체를 다 암송하고 있었고 이것은 강의시에 그대로 발휘되었다. 金秉雲(전 경희대 한의대 학장)은 金定濟의 『東醫寶鑑』 강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안암동 구교사에 학생이 빽빽이 들어앉아 숨을 죽인 채 선생님의 물 흐르 듯 해박한 암송강의에 저희 모두는 참 스승을 만난 감격에 그저 탄복할 뿐이었습니다.”

1975년에는 계간 학술지 『東洋醫學』의 발행인으로 참가하여 학술발전에 기여하였다. 이 잡지를 발행한 東洋醫學硏究院은 한의학의 학술 진작을 위해 이 잡지가 나오기 2년 전에 창립된 학술단체로서 金定濟는 동 연구원의 원장과 동 잡지의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金定濟는 창간사에서 “동양의학의 이론체계를 정비하며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할 수 있게끔 학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사계 석학 대가들의 연구와 협심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청하는 단계에 이러한 과제의 해결에 길잡이가 되고 또한 학술연구의 광장이 되고자 본지를 창간하여 고고의 성을 발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창간의 감회를 적고 있다.

同誌에는 특히 당시에 한의계에서 명망 있는 인물들이 모여 “동양의학의 진흥발전을 위한 학술적과제”라는 특집좌담이 게재되어 있다. 이 좌담에 참석한 인물은 金永萬, 金完熙, 文濬典, 裵元植, 安秉國, 陸昌洙, 李聖宿, 李鍾馨, 崔衡鍾, 韓堯頊, 洪淳用, 洪元植 등이었다.
동 좌담에서는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는데, 한의학을 한의학적인 방법론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새로운 지식을 도입하는 기풍을 조성하자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1965년부터 대한기독한의사회를 조직하여 장학금 지급, 무의촌 진료, 국내외 의료선교 등의 업적을 쌓기도 하였고, 1978년에는 원광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980년에는 경희대학교에서 한국 최초로 명예한의학박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 후에도 계속적인 후진양성과 진료활동으로 여생을 보내다가, 1988년 오랜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월 1회 게재>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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