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그림 속에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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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그림 속에 노닐다
  • 승인 2008.11.2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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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옛 그림의 최고 안내서

우선 국한문 혼용에 익숙한 우리네들에게 가장 적합할 우스개 난센스 퀴즈 하나! ‘홀딱 벗은 남자 그림’을 네 글자의 한자로 줄이면 뭐라 할까요? 설마 너무 오버하여 ‘아연실색’까지 떠올리진 않았겠죠? 그렇습니다. 정답은 ‘전라남도’랍니다. 그렇다면 ‘예쁜 여자 그림’은 뭘까요? 당연히 ‘미인도’입니다.

요즘 한창 드라마와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혜원 신윤복의 걸작, ‘미인도(美人圖)’! 그런데 혹시 여러분들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미인도’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같은 우리 옛 그림들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시나요? 썩 자신 없으시면, 이 책들을 한 번 보세요. 문외한인 저 뿐만 아니라 사계의 평단에서도 인정하는 우리 그림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이니까요.

‘그림 속에 노닐다’는 미술 사학자 오주석 님의 최근간이자 마지막 작품입니다. 1999년 초판 이후 인문예술 분야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와 ‘한국의 미 특강’에 연이은 책이면서도, 백혈병으로 유명을 달리 한 고인(故人)의 3주기(2008년 2월 5일)를 맞아 간행된 ‘유고집(遺稿集)’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고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우리 회화 감상요령만을 터득할 요량이면, 이 중 어느 책을 읽어도 무방합니다. 저자가 항상 강조하는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 -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낄 것 - 은 어느 책에서든 항상 나오니까요.

제 짧은 견해로는, 도입부의 ‘바로 보기의 어려움 1’이란 글이 저자의 모든 면을 웅변합니다. 자기 분야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바탕으로 <전(傳) 이재(李縡) 초상>과 <이채(李采) 초상>이라는 작자 미상의 두 초상화가 사실은 한 인물을 그린 것이라 강력히 의심한 점, 그러면서도 학계의 공통된 인정을 받기 전까지는 계속 사견(私見)으로 삼았던 점,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입증코자 동분서주하며 소위 ‘학제간 연구’ - 서울대 조용진 교수와 아주대 이성낙 교수의 자문 - 까지 추구했던 점, 동일 인물임이 밝혀져 결과적으로 실수한 꼴이 된 동료 선후배 전문가들을 여전히 배려했던 점 등이 속속들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일러준 대로 우리 옛 그림은 세로쓰기를 사용했던 옛사람의 눈에 맞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보아야 합니다. 서양화 보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움직일 경우 그림의 중심 구도와 Ⅹ자 모양으로 부딪히게 마련이고, 몇 폭 병풍이라면 이야기를 마지막부터 거슬러 읽어 나가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우리 한의학도 그렇지 않을까요? 저자의 주장처럼, 시력·관찰력·과학적 증명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영혼·마음의 문제이지 않을까요? “자연이나 생명체가 가진 조화로운 기운,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껴라”는 뜻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이 단지 회화감상에만 적용되는 핵심원리일까요?

1달 여 전 대학원생들과 함께 ‘간송미술관’에 들렀다가 구입한 이정(李霆)의 <풍죽(風竹)> 견본품이 찬바람 탓에 더 썰렁하게 다가옵니다. “에이~, 신윤복의 <미인도> 를 모조품으로 살 걸…….” <값 1만5천원>

안세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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