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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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패러다임, 그리고 21세기의 고민(20)
  • 승인 2008.11.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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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

박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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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러드롬(paradrome)의 변환(중) ■

지난 호의 산천대축(山天大畜 : 괘)괘 다음 순서로 역경(易經)에 나오는 괘는 바로 산뢰이(山雷頤 : 괘)괘입니다. 크게 쌓은(大畜) 다음에야 기를(頤 : 기를 이) 수 있기 때문에 산천대축(山天大畜)괘 다음에 산뢰이(山雷頤)괘를 두었다고 주역의 서괘전(序卦傳)에 나옵니다(物畜然後 可養 故 受之以이). 산뢰이(山雷頤)괘는 산(山 : 괘) 아래 우레(雷 : 괘)가 있는 모습(象)입니다. 혹은 우레 위로 산이 있는 모습입니다.

산(山)과 우레(雷)와 기름(頤)이라, 언뜻 연결되기가 어렵습니다. 산뢰이괘의 모양(괘)을 보면은 맨 위와 맨 아래 즉 초효(初爻)와 여섯 번째 효(爻)는 양효(陽爻 : 괘)로서 딱딱한 느낌이며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2, 3, 4, 5 번째의 효는 모두 음효(陰爻 : 괘)로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턱(頤)’을 떠오르게 합니다. 턱은 상악골(上顎骨 : 윗 턱뼈)과 하악골(下顎骨 : 아래 턱뼈)사이에 부드러운 혀(舌)와 빈 공간이 있어서 음식물을 씹어서 삼킬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위, 아래로 딱딱하고 가운데는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산뢰이괘의 모양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음식물을 씹어서 부드럽게 함으로써 우리 몸을 키워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기르는 것’으로 다시 해석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턱’의 의미를 ‘기른다’라는 의미로 변환하였습니다.

이렇듯 주역에서 괘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나타나는 상(象)을 때로는 원인론적으로, 때로는 현재의 모습으로, 때로는 결과론적으로, 때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당위론(當爲論)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뢰이(山雷頤)괘는 결과론적으로 해석된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괘’의 모습(象)을 보고 ‘턱’을 연상하며 ‘턱’을 통하여 ‘기름’을 떠오르게 하는 일종의 연쇄적 ‘연상(聯想)’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기르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방향성’을 논하는 것이 각 효(爻)에 대한 분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실마리(턱)에 의해서 불러 일으켜진 ‘기름’이라는 명제(命題)를 6효라는 ‘6분위가정법(六分位假定法)’에 의해서 다방면(특히 6가지 방면)의 상황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여섯 가지의 방면은 두 개씩 짝을 이루기 때문에 실제로는 3개의 축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즉 ‘세쌍’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경(易經)에서는 첫 번째(초효 : 初爻)와 네 번째 효, 두 번째와 다섯 번째 효, 세 번째와 여섯 번째 효를 서로 응(應)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수학의 3차원 그래프와 연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X축, Y축, Z축의 세 축을 가정하면, 각기 ‘+’ 방면과 ‘-’방면이 있기 때문에 여섯 가지의 방면이 나옵니다. 이 여섯 가지의 방면이 육효(六爻)라는 여섯 가지 ‘가정(假定)’의 사고(思考)와 연관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효(六爻)는 독립적일 수 있습니다.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면에 있어서 X축을 먼저 그리면 평면은 두 개로 나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두 개로 나뉜 평면 위에서 X축에 수직으로 다시 Y축을 그리게 되면 두 개의 평면이 네 개의 평면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평면을 위, 아래로 뚫고 지나는 새로운 축인 Z축을 그리게 되면 4개의 평면이 각기 이등분됨으로 인하여 8개의 입체면으로 나뉘게 됩니다. ‘2→4→8’로 생성·변화되는 원리가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왜 ‘8’에 그치게 되는가 하는 수수께끼에 대한 답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의 공간에서 3차원까지만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X, Y, Z이라는 3개의 축만이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서 8개의 입체면이 최종적으로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경(易經)의 앞부분에 나오는 ‘복희팔괘차서(伏羲八卦次序)’ 그림에서도 태극(太極)→음양(陰陽)→사상(四象)→팔괘(八卦)의 순서로 ‘8’의 개념까지만 나옵니다. 쉽게 생각하면 X축에 의해서 음양(陰陽)으로 나뉘고, Y축이 추가되어 사상(四象)으로 나뉘며, 마지막으로 Z축이 추가되면서 팔괘(八卦)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64괘(卦)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여기에는 ‘시간’의 개념이 도입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즉 3차원까지의 세계가 ‘공간’ 만에 의한 개념이고 여기에 ‘시간’의 개념이 도입된 것이 4차원의 세계라고 한다면 ‘팔괘(八卦)’의 개념에 ‘시간’의 개념이 도입되어 64괘(卦)로 확장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공간’적 위치(지표)에 있더라도 ‘시간’이라는 새로운 변수(지표)에 의해 ‘존재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역경(易經)의 64괘는 그러한 시간적 변화에 대한 ‘존재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반복성(反復性)’과 ‘부동성(不同性)’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매년 찾아오는 ‘봄’은 결코 한 번도 똑 같은 ‘봄’이 아닙니다. 기원전 4500년에도 ‘봄’은 있었을 것이고 2008년 올 해에도 ‘봄’은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봄’은 ‘봄’이라는 때(4~5월)는 같은 것을 의미하지만, 똑 같은 ‘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산뢰이(山雷이)괘는 이 64괘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괘를 해석함에 있어 역경(易經)에서 맨 처음 나오는 이야기가 ‘바르면 길하니, 턱을 보며 스스로 입의 실질됨을 봄이라(頤 貞吉 觀頤 自求口實)’고 하였습니다. 산(山) 밑에 우레(雷)가 있는 데 기름(頤)이 논의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산에 있는 많은 나무와 풀들이 떠오릅니다. 이 나무와 풀들 중에는 먹을 만한 열매를 맺는 것들이 많습니다. 사과나무, 배나무, 포도나무, 다래, 감나무, 밤나무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나무들에 매달려 있는 열매들은 떨어져야, 즉 떨림(震)이 있어야 땅으로 떨어져서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그래서 길러질(頤)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진(震)’은 곧 ‘뢰(雷)’와 통합니다(괘 : 4震雷). 이렇게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가 우수수 떨어지는, 혹은 나무를 떨리게 해서 떨어지는 열매를 취하여 사람들을 기름에 있어서 ‘바르게(貞)’해야 좋다(吉)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먹임에 있어서도 각자의 실상을 잘 파악해서, 예를 들면 입을 다쳐서 많이 먹지 못하는 사람은 조금 주고, 이(齒)가 튼튼한 사람에게는 딱딱한 과일을, 이가 약하거나 빠져서 없는 사람은 부드러운 열매를 주는, 각자의 실상에 맞춰서 길러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기른다(養)’라는 것에는 단지 음식을 먹여서 기르는 것 외에도 말로서 가르치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음식을 잘 가려서 주어 기르듯이 칭찬과 충고를 통한 교육도 ‘기름’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덧붙여 설명하기를 군자는 이로써 말을 삼가고 음식을 조절하니라(君子 以 愼言語 節飮食)고 하였습니다. 받는 이의 상황에 맞추어 주는 것이 달라짐은 한의학의 ‘허하면 보하고 실하면 사함(虛則補 實則瀉)’의 변증시치(辨證施治) 원리와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계속>

박완수
경원대 한의대 병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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