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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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 승인 2008.09.1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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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부터 얻는 삶의 지혜

완연한 가을입니다. 이른바 ‘독서의 계절’이 다가온 셈인데, 여러분들은 어떤 책을 읽으실 건가요? 취향 따라 다르겠지만, 어지간하면 이 책도 읽을거리에 추가해 보세요. 한의사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테니까……. 물론 ‘헤르만 헤세’라는 저자에 대한 소개는 필요 없겠지요? 성장소설의 백미 『데미안』을 언급하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로 화답할 테고, 구도소설의 극치 『싯다르타』로 화제를 바꾸면 “진리는 가르칠 수 없다”로 즉시 답할 테니까요.

으레 제목은 내용을 규정하는 법이기에, 제목만으로는 이 문학의 거장이 독자들에게 책 읽는 방법이나 기술을 특별히 알려줄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고백컨대, 저는 약간 그렇게 낚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내용은 전혀 없으며, 단지 ‘헤르만 헤세’가 신문·잡지 등 이곳저곳에 투고했던 여러 가지 짧은 글들을 한데 모아놓은 것입니다. 시·소설·언어·작가·독서·장서(臧書)·문학사조(文學思潮) 등을 소재로 삼은 글들의 묶음인 만큼, 서책(書冊)과 관련된 이모저모에 대한 평소의 단상(斷想) 모음집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제목과 내용이 좀 다르긴 해도, 이 책은 20세기 대 문학가의 사상 및 그 사상적 기반을 속속들이 살피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관심이 다르기에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감흥은 각기 다를 것입니다. 학교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는 “모든 언어들은 근본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작품은 소재와 무관하게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작업의 질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성과 신의, 정확성과 치밀함이다”, “최고로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형편없는 시를 짓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등이 아픈 채찍으로 다가왔습니다. 질 좋은 논문과 역·저서를 부지런히 내는 게 의무이자 권리라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한의사 입장으로는 그가 본인의 서고에 꽂아놓은 서목(書目)들을 거론하면서 “나는 여씨춘추·공자·맹자·장자·노자·주역 등을 늘 가까이 두고 이따금씩 신탁을 묻듯 읽곤 한다”라는 대목과 책 읽는 사람의 세 가지 유형을 설명하면서 “모든 정신의 입장은 하나의 극(極)이며, 거기에는 등가(等價)의 반대 극이 항상 존재한다”라는 글귀가 제일 감동적이었습니다. 세계의 지성으로 꼽히는 인물이 음양론에 깊이 매료당한 든든한 우군(友軍)이었음을 직접 목도(目睹)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책만큼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토록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물건은 없을 것입니다. 책 한 권으로 인생을 바꾸진 않더라도, 흔히 말하는 교양을 위해서도 우리들은 꼭 책을 읽곤 하니까요. 그리고 교양의 목표란 헤세가 지적한대로, 특정 능력이나 기능의 향상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를 이해하며 준비된 자세로 두려움 없이 미래를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겠지만…….

책(헤르만 헤세)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 그대에게 필요한 건 모두 거기에 있지/ 해와 달과 별/ 그대가 찾던 빛은/ 그대 자신 속에 깃들어 있으니// 그대가 오랫동안 책 속에 파묻혀/ 구하던 지혜/ 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 이제는 그대의 것이리// <값 1만 2천원>

안세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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