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대발해’의 작가 김홍신 전 의원(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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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대발해’의 작가 김홍신 전 의원(下)
  • 승인 2008.08.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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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보탬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고파”

김홍신 작가의 한의학에 대한 애정은 의정활동 당시에 더욱 돋보였다. 국회의원 한 명 없는 국회에서 김 의원은 한의계의 입장을 대변하며 소수파의 아픔을 달래주었다. 김 전 의원에 대한 한의계의 감회가 각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이 출간될 당시 유기덕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이 소설 ‘대발해’를 여러 질 구입해 한의 각 단체에 배부한 것도 의정활동 당시의 활동에 대한 고마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의계가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선을 긋는다. 우리의 의학인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누군가 디딤돌을 놔야 하는데 그 일을 자신이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의계가 양의에 비해 약자여서 한의계를 더 면밀히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양의에 불리하게 한 것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양의계도 바르게 했다고 인정하고 있지 않나요? 권력에는 무릎 꿇지 않지만 국민 다수가 편안하다면 거들고 돕겠다는 자세로 일을 했어요. 그렇게 뜻을 펴다보니 한약분쟁 당시에 한의계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고, 항생제 남용을 막기 위해 의약분업에 제일 앞장섰던 것이지요.”

■ “국민의 좋은 평가에 무척 행복”

김홍신 작가는 늘 국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인 ‘인간시장’을 삽시간에 1백만 부를 구입해줘 작가로서의 기반을 닦아준 것도 국민이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기 없는 분야인 정치를 8년간 한 뒤에도 같이 사진 찍어주며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준 것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아이들까지 (정치활동을 한) 아빠를 존경한다고 말할 때 “국민들이 좋은 평가를 해주었구나” 하는 생각에 무척 행복하다.

이런 이유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그가 국민의 빚을 갚은 방법은 뭘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오로지 ‘국민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만 봉사하고, 대통령·총재 등 권력에 대해서는 무릎 꿇지 않겠다’는 서원이 바로 그것이다.
“죽었을 때 적어도 그 사람이 따뜻한 인간이었구나, 비겁하지 않았구나, 정의와 진실을 지키려고 애를 썼구나, 세상에 보탬이 되었구나, 세상이 나에게 베푼 은혜를 가능하면 갚으려 했구나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 좋은 스승 만나 자기 단련 중

그는 이런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무지 큰 욕심들이지만 좋은 스승 만나 자신을 단련하고자 채찍질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말하는 ‘좋은 스승’은 수행공동체 정토회 지도법사인 법륜스님을 지칭한다.
스승과의 인연으로 그는 2002년 5월 8일 ‘깨달음의 장’에 입소해 37년 6개월 동안 피워오던 담배를 단숨에 끊었다. 다른 사람은 다 끊어도 김홍신만은 끊지 못할 것이라는 그 담배를 끊은 것 자체가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었다.

최근에는 광우병소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실천행위의 하나로 ‘100일간 쇠고기 안 먹기’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참가하는 행사마다 소고기메뉴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고 세상에 빚을 갚는 방안이라고 여겨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고.
세상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방법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책을 쓰는 일이다. 적어도 4가지 분야의 책을 반드시 쓴다는 계획이다. 첫 번째가 그의 정신적 스승이 주문한 소설 ‘대붓다’이며, 두 번째는 대서사시인 ‘조선상고사’, 세 번째는 정치와 연관된 소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너무나 사랑이 깊어서 너무나 아픈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 “개인은 氣 살리고, 민족은 精氣 가져야”

대발해를 쓴 이후로 강연은 빠질 수 없는 일과가 됐다. 그의 책상 달력에는 강연일정으로 가득 차 있다. 8월달에만 7회가 잡혀 있고 보통 월 10회 정도는 강연을 다닌다. ‘발해사를 통해 본 한민족의 자존심’이 강연의 주제다.
“개인은 氣가 살아야 하고, 국가는 民族精氣 가져야 합니다. 구석에 그린 것을 이제는 가운데로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개인은 기를, 민족은 정기를 가져야 하겠죠.”

유태인이 미국인구의 2.1%밖에 되지 않지만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선민의식을 갖고, 언어와 문자, 역사, 핏줄을 버리지 않은 민족적 자존심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민족의 자존심 회복은 ‘대발해’의 핵심메시지이자 집필동기였다고 덧붙였다.
“잃어버린 민족사를 되살려 우리 민족의 10년, 30년 후를 예견하는 게 국회의원 10번 하는 것보다 옳은 일이다”는 스승의 가르침에 정신을 번쩍 차려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많은 자료 조사를 거쳐 ‘대발해’를 쓰는 동안 그는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과는 별개의 독립된 제국”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료의 수집, 분석을 토대로 소설의 곳곳에 민족의 웅지를 펼치는 한편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 이르렀다. 예상되는 중국의 거대 경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 연해주를 아우르는 ‘발해 경제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는 소신도 그중의 하나다.

지난달 말 대발해 발간 1년 만에 삼국지 5권을 완간한 그는 지금까지 발간한 저작물만 해도 소설, 수필, 시집, 콩트, 중국고전편역 등 120여권에 이른다. 요즘은 수필집 ‘인생을 맛있게 사는 지혜’를 일본어로 출간하는 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의 몸 상태는 좋지 않다. ‘대발해’를 집필할 때 하루 꼬박 12시간, 3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1만 2천매의 원고와 씨름하느라 생긴 체중 감소, 오른손 마비와 요로결석, 불면증, 어깨 결림으로 고생해야 했다. 자그만 체구에서 체중이 무려 1.5㎏나 빠졌다.

지금은 다행히 한의치료를 받고 많이 회복됐다. ‘대발해’가 마무리된 뒤 그가 사는 서초동에서 우면산까지 거의 매일 산행을 다닌 것도 도움이 됐다.
그는 몇 년 전 사별한 부인과의 슬하에 회사원인 아들(29)과 구두디자이너가 꿈인 딸(25)을 두고 있다.

민족의학신문 김승진 기자 sjkim@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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