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9주년 기념특집] 한의원 한약문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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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9주년 기념특집] 한의원 한약문화①
  • 승인 2008.07.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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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 탕전기, 이제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한의의료계에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양방’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할 때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르면 1개월 이내에 원외 탕전을 규정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고시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한의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원외탕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편집자 주〉

■ 한방의료 확대 1등 공신

탕전기는 한방의료를 확산시킨 1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약은 짓는 사람, 먹는 사람, 달이는 사람의 정성이 합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한약을 먹고 싶어도 달이는 번거로움 때문에 사람들이 회피했었다. 탕전기는 이를 단숨에 해결했다. 덕분에 한의원의 매출도 급격히 상승했다.

탕전기로 약을 한꺼번에 달여 10일, 길게는 한 달까지 놓고 먹을 때 문제가 있다는 것은 모든 한의사들이 알고 있다. 1주일 이상이 지나면 역가가 떨어지고, 산도가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가 있었지만 대안이 없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일부 한의사들이 대형 옹기를 구입해 재래식으로 약을 달이고, 값이 비싼 고급 알루미늄 소재로 파우치를 제작해 탕약을 포장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약의 치료효과와 편리성 때문에 탕전기의 문제점을 묵인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 불필요한 것까지 한꺼번에

약탕관의 두께는 다른 그릇에 비해 매우 두껍다. 약이 잘 우러나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많은 한의원은 편리성 또는 효율성을 이유로 이를 생각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한약재는 세포로 구성된 생물체이다. 세포는 세포벽과 세포질로 구성돼 있고, 우리가 요구하는 유효성분은 세포질 속에 포함돼 있음으로 세포벽을 파괴하고 용매에 녹여야 한다. 이 세포벽을 파괴하는 수단이 고온이다. 그러나 세포질 속에는 한의사들이 요구하지 않은 물질도 다량 함유돼 있고, 이것이 용출되는 양을 최소화하기 위해 위한 것이 약탕관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모든 한약재에 가장 많이 들어있는 것은 녹말이다. 녹말은 식용이라면 모를까 약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오히려 약물의 흡수를 방해만 할 뿐이다. 이 녹말은 고온과 고압에서 다량 용출된다.
재래식 약탕관은 두께가 두꺼울 뿐만이 아니라 입구도 넓다. 약을 넣기 편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두께는 열이 천천히 전달되고, 급격히 달아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입구는 왜 이리 크게 만든 것일까?

물이 수증기가 될 때 부피가 160배나 늘어난다. 약을 탕전하면서 압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입구를 넓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날아가는 氣味를 잡기 위해 한지를 씌운 것이다.
탕전기에 약 한제를 달일 때 보통 4~5리터의 물을 넣는다. 이 물이 수증기가 될 때 부피가 160배 늘어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압력식’은 말할 것도 없고, ‘무압’이라고 나온 제품도 어떨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氣’ ‘味’가 사라지고 있다

한 연구기관에서 재래식 탕전관을 시험해본 결과 탕전을 하는 내내 온도가 97℃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한의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탕전기는 105℃에서 심지어 115℃까지 올라간다. 얼마 전 숙지황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된 사건도 있었지만 열은 한약의 약효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녹말이다. 약을 먹는 이유는 약효 때문이지 밥을 먹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고온의 압력 탕전기로 약을 달이면 걸쭉해 지는 것이 녹말 때문이다. 녹말은 약의 흡수를 방해 한다. 어떻게 달여도 녹말은 나온다. 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고온에서 달여 녹말을 80~90% 이상 머금은 원액에 옥수수 가루를 넣어 만든 한방보험제제가 약효도 별로 없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맛도 바꾼다. 고삼과 같은 쓴 약이 들어갔다면 모르지만 苦味약이 전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쓴 맛이 난다. 탕전시간을 줄인 초고속 약탕기일수록 정도가 심하다. 고온에서 탄닌류가 생성됐기 때문이다. 음양오행, 오미, 오상을 말하는 한의학에서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 의문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한약을 차처럼 마시는 중국문화가 한약의 전탕 및 복용방법에서는 더 적절할 것이라고 평가된다.

경희대 한의대 김병운 전학장은 퇴임 후 개원을 하며 전탕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자신이 내린 처방의 약 맛이 생각과 달랐던 것이다. 고민 끝에 찾아 낸 것은 무압력식의 중탕집 탕전기였고, 지금은 이를 개량해 사용하고 있다.

전창선 원장(서울 강남구 튼튼마디한의원)은 “한의사를 자편가(赭鞭家)라고 부르는 이유는 각종 氣味의 약초를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해 처방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편가는 신농이 산야를 누비며 풀과 나무의 성질을 파악하기 위해 붉은 회초리를 휘둘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지금 한의사들은 알려진 약재의 기미도 제대로 지키고,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한의원 탕전실의 탕전기가 ‘氣’는 사라지게 하고, ‘味’는 변질시키고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계속〉

민족의학신문 이제민 기자 jemin@mj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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