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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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7)
  • 승인 2008.06.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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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지고이지고이지고이!

티베트의 가을은 들에 곡식이 익고 초목이 물들면서 시작되고, 추수를 하고 난 후 나뭇잎이 떨어지고 서리가 내리면서 가을이 간다. 큰 후라이팬에 떡국을 끓이고 있어 압력밥솥에 옮겨서 끓이니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Chef(주방장)가 불만이다. 고도를 망각한 정신적인 고소증세였다. 압력솥에 끓이니 금방 끓어 에너지가 절약된다.

느긋한 아침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나에게 자전거를 타라고 한다. ‘어제 얘기가 끝났는데 무슨 소리냐?’ ‘자전거를 보내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여태 고생한 김 원장이 안타면 어떻게 하느냐?’ 옳은 판단! 그 김 원장은 다시 復權이 되었다. 그만 먹으려다 남은 음식을 더 뱃속에 집어넣었다.

각자 바이크를 정비하고 출발 준비를 하는데 짐을 잔뜩 실은 자전거를 끌고 마당으로 들어오는 외국인이 있었다. 그는 독일에서 7개월 전에 출발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고 한다. 앞으로 이 자전거를 타고 뉴질랜드까지 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자전거는 타이어, 튜브, 림까지 실려 있다. 이 독일 젊은이와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자전거에는 그의 길고 힘든 노정만큼 땀과 고통이 얼룩져 보인다.

이렇게 자전거의 앞뒤 좌우에 다는 가방을 패니어(Pannier)라고 부른다. 이 패니어를 달고 여행하는 방법도 있고, 트레일러(Trailer)를 뒤에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 가파른 언덕이 많은 비포장 험로 등 땅의 저항이 많은 곳에서는 패니어를 달고 여행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더 낫다.
이때는 무게중심이 6:4로 앞으로 가게 실어야 한다. 트레일러는 길이 좋아 빨리 달려야 하는 평지가 많은 곳에서 유리하다. 여행을 하면서 마주친 많은 장거리 라이더들은 육중한 ‘장갑차(?)’를 몰고 다니는 기갑병들이었다. 그러나 자전거와 짐을 가볍게 하여 오래, 멀리, 빨리 갈 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짐의 무게는 집착의 무게라고 하지 않던가!

오늘 가야할 락파라(Lhakpa La;5220m)는 우정공로에서 가장 높은 고개이다. 라체에서 락파라만 넘으면 뉴 팅그리까지는 아주 쉬운 코스이다. 전날 피로는 풀렸지만 높고 가파른 길이 앞을 막고 있어 약간 긴장이 된다. 잠시 바람이 잠을 자고 고요가 감도는 아침이다.

외인부대출신 김연수가 앞장서서 가다가 잠시 후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시인 김종해는 ‘사라져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했다.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을 남기는가? 그리움은 죽고 외로‘움’과 두려‘움’만 움찔움찔 솟아난다. 그의 나이 28세, 이팔청춘에 프랑스 외인부대 중 가장 힘들다는 산악부대에서 등에 배낭을 메고 산악스키를 타며 몽블랑(4810m) 바로 아래 4천m에서 혹독한 산악 훈련을 했다고 한다. 처음 그를 볼 때 눈매가 날카로워 독! 사 같았다. 그와 나는 꼭 20년 차이가 난다. 이 나이면 힘과 지구력과 의욕이 전성기를 이룰 때로 다양한 가능성과 기회가 열려 있을 때이다.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어울리면서 올라야 하리라.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은 나이테를 거부하고 싶은 좌절의 언어이다. 언덕을 오르며 넓은 개활지를 바라보니 야영을 한 독일팀들의 지원조들이 짐을 싸고 있다. 독일 선수들은 이미 출발해버렸다. 고도를 높일수록 온도는 내려가고 바람은 강하지만 하늘은 맑다.

산악자전거는 첨단 과학의 결정체로 인체공학, 운동역학, 유체역학, 소재과학, 탄성, 강도 등이 치밀하게 계산되어서 만들어진다. 변속기도 앞 크랭크 3단, 뒤 스포라켓 9단으로 3×9=27단이지만 무게가 10kg을 넘지 않고 충격에 몹시 강하다. 현재속도, 평균속도, 최고 속도, 주행거리, 주행시간 등등이 시계만한 작은 컴퓨터에 다 나온다. 장거리 주행은 GPS도 세팅할 수 있다.

얼굴에 선불록을 바르면 지저분하고 씻을 곳도 그렇고 먼지로 금방 더러워지므로 自作한 안면 마스크와 고글과 바라크라바를 쓴 다음 헬멧을 썼다. 바람이 너무 차서 긴팔 저지(Jersey;가볍고 탄력 있는 상의)를 속에 하나 더 입었다. 그리고 반바지 Bike팬츠 위에 롱타이즈를 입었다. 긴 장갑에 약간 두툼한 양말도 신었다. 물 한통을 꽂고 핸들 스템 바로뒤 간식박스에 라샤에서 구입한 건포도를 채웠다.

자전거를 탈 때 입는 알록달록 화려한 상표들이 찍혀있는 저지에는 뒷주머니 3개가 있다. 보통 우측에 핸드폰이나 카메라를 담고, 중간에는 열쇠와 지갑, 왼 쪽에는 간단한 스포츠 푸드와 간식을 담는다. 필자는 주행 중에는 자전거를 멈추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 서부의 총잡이처럼 장갑 낀 손으로 우측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풍경을 향해 Fast Shooting(속사)을 한다.

이제 모든 준비는 다 돼있다. 그냥 계속 페달만 밟으면서 Go하면 된다. 이런 긴 오르막에서 〈Go行〉은 라이더의 〈孤行〉이고 수도승의 〈苦行〉이며 궁극적으로 〈高行〉이 된다. 至高以至孤而至苦已! (지독한 외로움과 지독한 쓰라림으로써 지극히 높아질 수 있을 따름이다.)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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