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한의원 한약 원산지 표기 방침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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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한의원 한약 원산지 표기 방침을 보며
  • 승인 2008.06.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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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한의원 대기실에는 ‘원내 사용 한약재 목록’이라는 게시판에 “녹용-러시아, 인삼-한국/진안, 용안육-베트남…”이라는 내용을 적어 걸어두어야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약을 투여할 때 몇 가지 주요약재는 원산지를 환자에게 고지해 줘야 할 것 같다.
환자들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먹는 한약에 어떤 한약재가 들어갔는지, 어디 産인지 궁금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른 문제점은 고려하지 않고 이점만 생각하고, “너희가 알아서 하지 않으면, 나라에서 규정을 만들어 주마”라며 한의계를 압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환자의 알권리’라고 하면 ‘처방의 구성’인데 여기에 ‘원산지’가 들어갔다. ‘처방전’ 발급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던 한의계는 이번엔 그냥 슬쩍 넘어가는 듯하다. 청와대에서 내려온 것이라 거부할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처방전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흉내만 내면 그만”이라는 반응도 있는 게 사실이다.
‘처방전 발급’은 일반인들이 한약재를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절대 불가하다”라고 쉽게 주장할 수 있었다. “오남용에 의한 부작용”이란 이유를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내 사용 한약재 목록’에 적힌 내용과 약재실 약의 원산지가 다를 경우를 생각해보자. 법적 규제 사항은 아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高價나 주요약재 3~4종만 원산지를 고시하면 된다고 하는데 “일부를 형식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기만하는 것이 아닐까? 이만큼만, 알아서 공개하는 것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진료의 왜곡을 가져 올 것이라는 점이다.
관리지침에 따라 “고품질 우수한약재를 구매해 사용한다”라고 밝혔지만 이는 현실성 자체가 부족하다. ‘고품질·우수’라는 개념도 모호하지만, 수량이 한정돼 있는 약재 모두를 최상급만으로 쓰는 것도 불가능하다. 환자의 병증에 따라 같은 약재라도 품질이 높은 고가품을, 또는 일반적인 것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규격한약재여야 한다는 것만이 분명하다.

일반 국민의 국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가장 큰 문제다. ‘국산-상품’, ‘중국산-하품’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 사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산지 표기’는 ‘처방의 제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방전을 내어줄 수 없는 이유인 ‘오남용’이나 ‘부작용’과 이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결국 한의사는 마음대로 처방을 할 수 없거나 ‘거짓말쟁이’가 돼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한의계를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한의사는 고기집 주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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