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 정보부족에 여건·경제성 여부로 무관심
약사 - 가격 맞지 않는데다가 전문성 없어 난감
약사법에 한약제제에 대한 정의는 있으나 과연 실체는 있는 것일까?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약사들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나 채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한의사는 약효와 한방건강보험 급여대상이 아니어서 환자부담 때문에 쉽게 투약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약제제가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양질의 한약제제는 계속 출시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현실적 대안마련과 행동이 필요한 상황이다.
■ 한약제제 수요 저조의 원인은 ‘신뢰성’
의약분업으로 인해 약국은 처방전을 소화해 내는데 주력하다보니 한약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한약제제도 동네 약국에서나 조금 관심을 가질 뿐이다.
약국은 한약분쟁을 치러가며 100처방을 가져갔지만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해 탕약 판매는 그리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11개 기성한약서에 따른 여러 가지 한약제제가 출시됐지만 활용도는 미흡하다. 감기 등 일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환자들이 왔을 때 판매하는 수준이다.
한의사들은 국내에서 출시되는 한약제제는 약효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모 학회 관계자는 “‘마황’이 들어간 한약제제들을 성분 검사해본 결과 에페드린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며 “이러한 약을 가지고 한의서에서 말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 한의사는 또 “국내에 나와 있는 한약제제 중 임상 데이터를 하나라도 내 놓은 것이 있느냐”며 불신을 나타냈다.
환자들이 장기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한약제제가 필요하지만 선뜻 내어줄 만한 제제가 없다는 것이다.
■ 필요성 있으나 여건이 문제
약효를 기대하기 어려운 제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의계에 출시돼 있는 일본 쯔무라제약과 중국에서 만든 한약제제는 임상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고, 약효에 대한 신뢰성도 확보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요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이러한 제제들을 약국에서 활용하고 있지 못한 이유는 첫째 가격이 맞지 않고 둘째, 전문성이 부족해 환자에게 쉽게 권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의계도 활용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쯔무라제약에서 만든 계지복령환·소청룡탕과 같은 과립제는 60% 이상이 대학한방병원에서 활용하고 있으며, 일반 개원가의 관심은 저조하다. 중국에서 국제시장을 겨냥해 개발해낸 통심락·화타재조환과 같은 한방복합제제의 활용은 극히 미진한 상태다.
개원한의사들의 이들 수입 제제 활용도가 적은 이유는 관심 부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해본 경험이 없고, 정보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막연한 추정에 의한 경제성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2~3개월 정도 장기간 투약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약 효능만 뒷받침 된다면 첩약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개원한의사는 “탕전비와 약재관리비·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첩약과 큰 차이가 없고, 환자 부담도 줄일 수 있어 경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한약제제 활용 이유 중 하나는 효능이나 편리성 이외에 안전성 문제도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대형 제약회사의 제품으로 잔류농약·중금속 등의 시비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 많이 소개된 심적환이 한의계에 조금 공급되고 있으나 나머지 복합제제는 활용도가 극히 미진하다.
결국 한약제제는 약효나 유용성과는 관계없이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주체인 한의사·약사들의 현실적 한계로 인해 임자 없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얼마전 창립된 대한한의통증제형학회의 회원 수가 1천명을 돌파했다. 회원 가입에 큰 비용이 들지 않고, 쉽게 가입할 수 있어 이렇게 빠른 기간에 늘어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들 한의사들이 전부 학회에서 공동조제 한 한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의사들이 쉽게 투약할 수 있고, 약효가 유지된 제형의 한약을 얼마나 필요로 하고 있는지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유효성·편리성 갖춘 한약 절실”
통증제형학회 김경환 회장은 “3일분 투약하면서 환자에게 얼마를 받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러한 환자들이 계속 유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장기간 투약해야 하는 환자진료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어요. 이래야지만 한의학의 치료 영역이 넓어지고, 대중 속에 자리 잡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제형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약제제의 필요성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개발되는 한약제제는 시장의 논리에 의해 양의계나 약국을 대상으로 출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현실이다.
살사라진-방풍통성산, 위령선·과루근·하고초 등의 추출물인 조인스정은 한약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시장만을 바라보고 제약사들이 ‘한의학’이라고 못 박지는 않는다. 한의사들이 지금까지와 같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면 새로 개발되고, 품질이 개선된 한약제제는 계속 거리가 멀어질 뿐이다.
구체적으로 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에서 개발된 제제와 같이 양방에서는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어렵고, 가격부담 때문에 쓰기 어려운 한약제제가 존재한다.
아직은 11개 기성한약서 처방에 한정돼 있지만 한의사들의 요구에 의해 약 효능을 높여 임상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다. 한의사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안들이 존재해 있는 것이다.
물론 양질의 복합제제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가격부담을 받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건강보험에 포함돼야만 하며 이는 제제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의계는 한약제제에 대한 정보를 한의사들에게 정확히 알릴 수 있는 시스템구축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범 한의계 차원의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는 일선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민족의학신문 이제민 기자 jemin@mjmedi.com
저작권자 © 민족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