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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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6)
  • 승인 2008.06.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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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낙엽이 발을 끄는 소리를 아는가?

어두워지면서 센바람이 흙먼지를 일으키고 허름한 라체 호텔의 문짝을 부셔버린다.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이층으로 올라가 짐을 두고 나왔다. 저녁식사는 중국식으로 원탁에 둘러 앉아 요리가 놓인 회전원판을 돌리면서 한다. 이 회전원판은 참 합리적인 발명품이란 생각이 든다.
중국에는 위대한 발명품들이 많다. 漢字는 동양의 Latin語로 수많은 사상가, 철학가, 聖賢들이 자신들의 知와 行에 대한 것과 꿈과 이상을 담았다. 그 용기(容器)는 아주 간결하고 함축적이어서 특히 동양 삼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자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그러나 한자와 달리 중국어는 참 억세고 시끄러운 느낌이 든다.

선사시대의 유적을 보면 가장 먼저 탄생한 도구가 손에 잡기 쉬운 손도끼(Hand ax)라고 생각한다. 도구의 인간(Homo Faber)으로서 데뷔전이 손도끼의 사용이었고, 이것은 곧 文明의 선언이었다. 구석기와 신석기인들은 빗살문토기(櫛文土器)나 무문토기(無文土器)에 文明을 담았다. 중국은 문명을 담을 줄 아는 그릇이었다.
그러나 그 그릇은 오지그릇이 아니라 china(도자기)였다. 그 china는 역대 소수민족의 땅과 문화와 민족을 삼킨 ‘中華型 도가니’이기도 했다. 그리고 풍요로움의 꽃이자 美(羊+大)의 극치인 요리도 당연히 china에 담았다. 그리고 화약, 나침반, 종이, 활자 등 중국의 4대발명품도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목판)이나 직지심체요절(금속활자)이 모두 우리나라가 최고인데 뭔 말인가? 낱글자를 필요에 따라 조립해서 인쇄할 수 있는 ‘활자’는 팔만대장경처럼 자작나무 넓은 판에 여러 글자를 새긴 木版과 구분이 된다.
배의 방향타가 중국에서 전래되기 전 서양의 갤리선(노예선)은 노를 이용해서 방향 전환을 해야 하므로 원양항해가 불가능했다. 방향타(Rudder)와 돛(Sail)과 긴 용골(Keel)이 있어서 대양항해가 가능했다. 범선은 바람의 정면에서 60도 정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므로 지그재그로 바람에 거슬러 오르는 항해가 가능했다. 콜럼버스(1492년), 마젤란(1519년) 등 대항해시대가 열렸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에서는 코페르니쿠스(1543년)의 지동설 주장 이전에 이미 천동설은 폐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오 뒷북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632년)여! 스크루도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단풍나무 씨앗이 떨어질 때 빙빙 선회비행을 하는 것을 보고 발명한 것 같다.
옆에 앉은 외국인들 테이블 위에는 승전기념열병식에 참가한 당당한 병사들이 여러 병(?) 도열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원탁에는 단 두 병만 쩔쩔매고 있었다.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 하던 순국선열들이 우리의 이 연약한 모습을 보았다면 얼마나 가슴을 쳤겠는가? 이 때 술을 버리고 放棄한 대원들은 그 汚辱을 잊었을지 모르지만 역사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고도가 4천m가 넘다보니 모두 긴장하고 있다. 오인환 선배는 다 완주가 어려우니 자전거를 줄여서 라싸로 짐을 부치자고 한다. 그러나 포기하겠다는 사람은 없고 지루한 논쟁만 銳角을 이루며 부딪히고 있었다.
그래서 참 오랫동안 이 원정을 꿈꾸며 숨 가쁘게 달려온 필자가 포기를 선언했다. 이 원정대를 꾸민 선악의 공급자로서 나머지 선수들을 존중하고 이제부터 의료봉사에 전념해야 할 것 같았다. 한편으로 아쉽고 悔恨은 많았지만 버리고 나니 편했다.
숙소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씻은 다음 잠시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 낙엽이 발을 끄는 소리, 비정하게 적시는 달빛은 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험한 산과 거친 황무지 같은 요철(凹凸)에 마음이 빨려들어 가는 것을 Attraction(魅惑)이라고 한다.
서늘한 달빛은 피조물에 부딪혀 미세하게 반사되면서 輪廓을 따라 Aura(물체가 발하는 기운)가 날을 세운다. 표정을 숨긴 어둠 속에는 凋落한 풀과 나무와 흙먼지에서 나는 메마른 후각, 차갑고 거칠며 선듯하게 와 닿는 촉각이 모여서 좌절한 자를 위한 페이소스(Pathos)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진실을 숨긴 달빛 아래 風景은 깊어가고 어둠에 지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도 태양은 떠오르고 바람은 불 것이다.

밤새 불어대던 바람과 황량한 고원을 채워나가는 흙먼지들에도 불구하고 라체의 아침은 상큼하게 밝아오고 있다!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깼다. 이런 산악 지형에서는 고개가 분수령이 되고 문화의 울타리가 된다. 고개(La)를 넘은 만큼 풍습, 음식, 의복, 주거 등 문화가 고개 너머와 달라진다.
늘 느끼는 감성은 眼耳鼻舌身意 六根으로 받아들인 섬세한 다양함이 모여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Now & Here)’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면서 느껴지는 現場感이다. 이런 感性을 微分하는 것은 대단히 섬세한 감각과 예리한 통찰력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런 황량한 자연 속에서 왜 더 많은 외로움과 그리움에 사무칠까? 태양은 떠오르고 있었다. 〈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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