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現代 韓醫學 人物史27] 權五震(1899~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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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韓醫學 人物史27] 權五震(1899~1968)
  • 승인 2008.05.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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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김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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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省家誡”로 만들어낸 三世醫業, 계승되어야 할 名言

수년전 필자는 『三省家誡』라는 문집을 입수하고 연구실 귀퉁이 서고에 꽂아 놓고는 아무 생각없이 세월이 흘렀다. 그러던 중 몇달 전 어느 날 1964년 나온 『漢方의 벗』 2호를 보다가 우연히 “漢方界의 老兵은 말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이 기사는 權五震이라는 당시 부산의 유명한 원로 한의사를 취재한 것이었다. 필자는 이 기사를 보다가 이 기사의 주인공이 필자가 수년전부터 보관하고 있던 『三省家誡』란 문집의 저자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더욱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權五震의 집안이 한의학을 전문으로 하는 전통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둘째 아들 권경호(78)는 부산 온천동에서 부친의 한의원 이름과 같은 삼성한의원을 개원하여 의업을 펼치고 있고, 손자인 권택현(49)은 서울에서 한방병원 원장을 하다가 마포에서 삼성한의원을 개원하여 의술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러한 사실을 접하고 너무 감격하여 손자인 권택현 원장에게 면식도 없는데도 무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걸게 되었고, 권택현 원장의 친절한 배려로 그의 부친인 권경호 원장으로부터 權五震의 생애와 학술사상의 顚末을 書面으로 전해들을 수 있게 되었다.

權五震은 1899년 경남 마산시 진전면 오서리에서 출생한 후에 큰 뜻을 품고 日本으로 유학을 떠나 1919년에 日本 東京藥學校를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차별로 인해 뜻을 펼치지 못하고는 1920년 조선으로 귀국한 후에 醫生免許를 취득하게 되었고 이듬해에 경남 진주군의 一班城面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여 30년간 환자를 진료하게 되었다. 그는 1947년 미군정청으로부터 限地醫師 면허를 받아 醫師도 겸하기 시작하여 특히 산부인과에 능력을 발휘하여 그의 손으로 받아낸 아기들만도 수백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權五震의 인생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50년 한국전쟁부터이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전 재산을 버리고 부산으로 이주하여 셋방살이를 해가면서 삼성한의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당시 전쟁으로 피난 나간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여 3년간 소식이 없다가 휴전 후에 다시 돌아와 이후로 열심히 노력하여 10년 만에 가산을 다시 일으켰다. 부산에서 그는 권의수, 이우용, 정원희 등 한의사들과 함께 醫權伸張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1961년에는 부산에서 경상남도 한의사회 회장으로 피선되어 한의계의 정치 최일선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 해에 그는 보건사회부장관의 漢醫學無用論 발언에 대해 抗議文을 작성하여 언론 요로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그는 同 항의문에서 “한의학육성에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라 하였는데 그것은 첫째 국가정책으로 국립한의과대학을 세워서 학술적 현대화를 기도할 수 있는 최고학부를 비롯해 한의학발전에 필요한 각종연구소 등을 설치해서 한의학의 진수를 세계만방에 천명할 수 있도록 하고, 둘째로 한의학자연소멸론을 자진취소할 것” 등을 주장하였다.

그의 삶의 철학을 집약해 놓은 것이 1959년 回甲을 맞아 親知들의 祝文과 祝詩 그리고 그의 글을 모아 놓은 문집 『三省家誡』이다. 여기에서 “三省”을 權五震은 “收身千金, 淸心寡慾, 交友常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것을 필자 나름대로 번역을 한다면 “몸을 천금처럼 소중히 거둠, 마음을 맑혀 욕심을 적게 함, 친구와 사귐에 항상 신중함”의 세가지 덕목일 것이다.

그가 『三省家誡』에서 제일의 훈계로 삼는 것은 “臨淵羨魚는 不如退而結網이니라” 즉, “못에 다다라 고기를 욕심내기만 하는 것은 빨리 물러가서 그물을 뜨기만 같지 못하느니라”이다. 이 훈계는 權五震이 일본의 동경으로 가서 민족 차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와 上野公園不忍池에서 古人이 읊은 구절을 보고 子孫之誡로 삼고자 결심하여 집안의 훈계로 삼게된 내력이 있는 것이다.

『三省家誡』에는 權五震이 정의해 놓은 “三省” 즉 “세가지 살펴볼 일”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計活三省, 立身三省, 齊家三省, 修養三省, 處世三省, 勉學三省, 養志三省, 執務三省, 醫務三省, 處事三省, 持身三省, 貯蓄三省, 警戒三省, 忌避三省, 御人三省, 育兒三省, 敎子三省, 閒居三省, 嫁娶三省, 垂老三省, 揚名三省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醫務三省을 “愼重沈默, 詳察診斷, 無疑施藥”이라 하고 있다.

1968년 7월 1일자 『한의사협보』에는 權五震을 국제적 안목이 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시야를 세계로 돌리고 한의사협회의 일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렇듯 權五震은 일제시대에 醫生이 된 후 고매한 인품과 뛰어난 의술로 당대에 이름을 떨친 한의계에서 기억해야 할 역사속의 인물이다. 그의 의술과 정신은 지금도 그의 아들 권경호와 손자인 권택현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월 1회 게재〉

金南一
경희대 한의대 醫史學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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