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4)
상태바
김규만의 티베트 이야기(14)
  • 승인 2008.05.23 1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14. 바람처럼 자유롭게!

멀고 아득한 고원, 희박한 공간 속으로 바이크는 ‘바람처럼 자유롭게’달리고 있다.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Wind)’는 영화 빠삐용(Papillon)의 OST이다.
한의학에서 가을의 맥상을 毛라고 한다. 추맥은 폐(秋脈者 肺也)인데, 폐의 정상맥이 輕虛以浮 來急去散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毛는 깃털 같다. Wool이나 Down이나 Hair는 너무 부드러워 뜨는 맛이 없으나 깃털(Feather)은 가볍고 비어있으면서 떠 있는 맛이 있다. 오늘 이 가을 깃털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Feather) 달리고 있다.

합동 라이딩을 할 때 손발이 잘 맞고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하면 가일층 시너지효과가 나온다. 손발이 안 맞으면 수준이 가장 낮은 사람이 그 팀의 표준이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최악의 조합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Tour de France’, 이탈리아의 ‘Giro de Italia’, 스페인의 ‘Vuelta a Espana’와 같은 세계 3대 사이클 대회 역시 팀별 라이딩 형식이다. 이 3대 대회는 광란에 가까운 대중적 인기와 더불어 유럽 로드 바이크의 전통을 이끌고 있다. 세 대회 모두 신문사가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개최한 대회이다.

이 지역의 나무들은 거의 다 버드나무과이다. 목마른 고원에서 만나는 나무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정답다.
버드나무, 수양버들, 은사시나무, 포퓰러, 백양나무 등은 주로 건조하고 일교차가 크며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대가족 씨족사회를 형성하며 살고 있다.
신작로는 아주 잘 나있고 포장상태도 최상급에 가깝다. 티베트에 와서 성공한 한족들은 고급차를 타고 달리고 있다. 경제적 성공을 자축하듯 개선장군처럼 그들만의 길을 질주하며 팡파르를 울리고 있었다. 漢族들도 한 때 이민족의 침입을 받았다.

여진족이 베이징을 접수하고 청나라가 肇國하게 된다. 그 당시 조선(인조 때)은 崇明反淸을 하다가 새우등이 터지듯 청나라에게 호되게 당했다. 근세 난경대학살 때 중국인 35만명이 학살되었다. 느낌이 안 오면 35만명 학살과 광주학살을 비교해 보라!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사무친 시각을 이해할 수 있다.
易地思之! 그런 아픈 역사적 경험을 한 국민들이 자기들과 비교도 안 되는 힘없는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무시하고 탄압하고 있다. 티베트인은 35만명이 아닌 100만명이 살해되었다. 티베트는 원주민이 600만인데 한족 800만을 이주시켜 中華化하고 있다. 이런 베이징 패권주의자들이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를 반성하라고 요구한다?!

누구보다 국제적인 사고와 균형 감각이 있다고 생각되는 유학생들이 다른 나라에서 사람들을 패대기치는 자신감은 중국의 오천년 역사의 자존심을 패대기치고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의에 대한 알량한 자부심이 아닐까? 그들이 ‘오성기 휘날리며’ 애국적 광란을 벌일 때 반성하는 소수는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다수와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는 소수의 균형이 그 사회 건강의 지표가 된다. 필자는 이런 소수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중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오후에는 필자와 김연수, 서성준 3명이 라이딩 멤버가 되었다. 오후 3시가 넘어가면서 20km가고 5분 쉬는 식으로 이끌어나갔다. 아이언맨(鐵人)대회에 참가했던 서성준과 김연수가 얄룽창포강을 보고 수영타령을 한다. 그래서 필자는 두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도록 허락했다. ‘티베트에 와서 수영 한번 안하고 가면 되겠는가?’, ‘철인들이 그렇게 연약한 모습을 보이지마라!’, ‘역사적 기록으로 후세에 남기자!’ 등 가장 좋은 설득수단인 당근과 채찍을 동원했다. 결국 50%는 성공했다. 한 사람은 물속에 집어넣었고 한 사람은 물가에 가는 것으로 끝났다. 아무튼 호흡이 잘 맞는다. 그냥 충분히 시가체까지 타고갈 수 있는 거리이고 체력도 충분하다.

이런 강물의 흐름을 보면서 배운다. 강물은 넓은 강폭 중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부드러운 곳을 선택하여 물길을 만들고 흐른다. 사람들은 세상의 法을 이렇게 물이 흘러가는 것(氵去)을 보고 배운다.
그렇게 순응하면서 굽이굽이 흐르는 강에 감화되어 강변에는 군데군데 넓은 여백의 모래톱을 남긴다. 모래톱은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기고(弱之勝强), 부드러움은 굳센 것을 이긴다(柔之勝剛)”는 군대의 전리품처럼 말이 없다.

여울을 돌아 급하게 흐르는 강은 소리를 낳고 단조로운 풍경의 고요함을 깨고 활력을 준다. 맑고 투명하게 깊고 천천히 흐르는 강은 가을의 서정과 함께 幽長하게 흘러간다. 눈이 시릴 정도로 맑은 가을 날 아름다운 水채화나 水묵화 같이 水水하게 흐르는 강은 길과 함께 그리고 두개의 바퀴와 함께 가고 있다.
老子는 왜 上善若水라고 했을까? 물은 角이 유난히 많은 인생의 영원한 화두이다. 때로는‘Free as the Wind’, 때로는 ‘上善若水’를 꿈꾸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고 불륜은 아닐까?〈계속〉

김규만
서울 은평구 굿모닝한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