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칼럼] 절처봉생(絶處逢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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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칼럼] 절처봉생(絶處逢生)
  • 승인 2008.04.1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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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봄 내음이 진동한다. 산수유·목련·개나리·진달래·벚꽃 등등 새 봄을 대표하는 꽃들이 다투어 향기를 뿜어대는 덕택이다. 이 ‘발진(發陳)’의 계절에 어울리게 우리 한의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면 너무 좋으련만….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각 시도지부의 장은 물론, 협회의 수장까지도 새로 바뀌지 않았는가?(연임도 좋은 현상이다. 특히 공산당 마냥 100% 찬성으로 연임된 경우는 더욱 바람직하다. 요즘의 민주사회에서는 그만큼 능력과 신뢰를 갖추었다는 반증이니까….) 게다가 선배 한의사 한 분은 국회의원에까지 당선되지 않았는가?

‘경기가 예년만 못하다’는 이야기는 졸업 이후 20년 동안 내내 듣던 말이었지만, 최근 1~2년처럼 혹독하게 겪은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병원급에서는 입원실을 줄인다, 진료인력을 감축한다 등으로 경영난 타개를 모색하고, 의원급에서는 프랜차이즈다, 전문 클리닉 표방이다 등으로 동료와의 차별화를 돌파구 삼는다. 시쳇말로 “먹고살기 힘든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면 그 또한 수긍되는 바 없지 않지만, 적어도 ‘인신소우주(人身小宇宙)’를 입에 달고 사는 우리 한의사들은 ‘우주’를 논하는 학문적 특성에 걸맞게 좀 더 높은 차원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의 임무 혹은 기능이 교육·연구·사회봉사 - 얼마나 충실히 이루어지는 가는 또다른 문제이다 - 임을 재차 상기하면, 그리고 우리 모두 한의과대학을 졸업했음을 거듭 돌이키면, 우리들 본연의 역할은 명약관화하게 드러난다. 부단한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을 ‘교육’을 통해 주고받고, 주고받은 지식을 활용하여 ‘사회봉사’를 수행하는 것이 한의사의 본 모습이기 때문이다. 좋은 차 굴리고, 좋은 집 사는데 필요한 경제적 이득·성패를 가르는 세속적 잣대로 통용되는 중요한 문제임에 분명하지만, 그건 절대 본질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기에, 돈은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와중에 자연스레 얻어지는 부수물, 소위 콩고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신입생들의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한의원 권리금이 ×값이다 등도 마찬가지이다. 『동사강목』의 주인공 안정복(安鼎福)이 “흰 구름 일어났다 사라졌다 해도 푸른 산의 모습 바뀔 때 없네(白雲有起滅 靑山無改時)”라고 노래한 한시(漢詩)처럼, 그런 몇몇 현상이 한의학의 외양을 흐리긴 할지라도 본질을 변화시키진 못하기 때문이다. 근자의 모습이 발전적인 조짐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의기소침하여 풀 죽어 지낼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은, 우리 학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법과 제도에 관여한다면 환자와 한의사 모두 ‘윈-윈’ 하는 방안을 짜내기에 박차를 가해야 하고, 로컬에서 진료의 최전선을 담당한다면 아무래도 실력을 더욱 업그레이드시키도록 애써야 하며, 강단에 서 있다면 역시 논문발표와 저술에 힘써야 할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한의학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대정신을 충실히 반영하는 방법론에 온갖 정성을 기울인다면, 현재의 위기 상황은 오히려 쓰디쓴 양약(良藥)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절처봉생(絶處逢生)이라 하였다. 익숙한 한의학 용어로 극즉반(極則反)이며, 궁즉통(窮則通)인 것이다. 음양의 원리에 세상 누구보다 정통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인데, 그 무엇을 두려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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