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규 칼럼] 부메랑을 날리지 말자
상태바
[권영규 칼럼] 부메랑을 날리지 말자
  • 승인 2008.04.11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대학을 졸업할 무렵 서울의 어느 치과대학에서 기초의학에 전념하기 위해 배수진으로 ‘국가시험’도 응시하지 않고 조교의 길을 걷고, 동기들도 그를 지원한다는 이야기에 적잖은 자극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의학계열은 ‘개원하면 되지’라는 표현처럼 기초연구에 전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렇게 부추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부추긴 결과는 부메랑효과를 만들게 된다.

부메랑효과(boomerang effect)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경제원조나 자본투자를 한 결과, 현지생산이 시작되어 마침내 그 제품이 현지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고도 남아 선진국에 역수출되어 선진국의 해당산업과 경합을 벌이는 현상이다.
부메랑이란 본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사용하던 사냥기구로서, 던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도구이다. 사냥도구를 재활용할 수 있는 측면에서 부메랑은 매우 효율적이다. 그런데 경제의 부메랑효과는 심하게 표현하면 ‘삼년 먹여 기른 개가 주인 발등 문다’는 속담처럼 잘 길러 준 은혜를 악으로 갚는다는 식이고, 한의계의 부메랑효과는 한의학의 발목을 잡는다.

협회나 학회에서 중요한 사업을 추진하거나 양방과의 갈등에서 학문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때 개원의들로부터 대학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원망을 듣게 된다. 그런데 대학 경쟁력의 원천은 우수한 교수인데, 기초나 임상가릴 것 없이 교수들에게 ‘힘들면 개원하라’는 말이 부메랑처럼 개원가로 되돌아감을 미처 생각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대학에 있는 교수가 신임교수 뽑는 일에 이사장을 대신하듯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의계의 원망을 제대로 아는지 혼자서 무슨 능력으로 한의계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96년 한약분쟁의 와중에 대학교육협의회에서 주관하였던 한의과대학평가가 올해 한국한의학교육평가원과 공동으로 12년 만에 실시된다. 이 평가지표에서도 교수와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배점이 50점이다. 그만큼 교수와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실제 한의과대학의 교수요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교수확보의 부메랑효과는 교육에서도 되풀이된다. 한의과대학 교육은 최고의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거쳐 국가시험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1차 진료를 담당할 수 있는 한의사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의 현실은 소규모 대학일수록 기초교수도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강의를 과중하게 부담시키거나, 의학교육에 필요한 연구가 아닌 업적평가와 임상교수에게는 병원수입을 평가하면서 강의는 시간강사인 개원 한의사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름대로 임상에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강의하면 ‘임상에 중요하다니까 ☆표’는 치겠지만 기본교육이 흔들릴 수 있다. 그나마 변화된 ‘교육과정’이나 ‘학습목표’에 대한 사전이해를 바탕으로 전공강의를 맡기면 다행이지만, 임상특강식 일회성 강의로는 교육의 표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심지어 표준화된 교재가 없거나, 있더라도 과목간 용어나 개념정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부메랑효과를 만든다.

‘학교에서 배울게 없다’, ‘한의학은 표준화가 안된다’, ‘한의학은 원래 각가학설(各家學說)이 다양한 특성이 있다’는 표현이 난무하여 교육은 점점 부실화되고 사교육이 늘어난다. 사교육이 지나치면 개원의들끼리 혹은 병원과 개원가간의 갈등은 심화된다. 결국에는 ‘그렇게 치료하면 안돼요’라며 자신의 치료기술이 최고인 것처럼 주저없이 부메랑을 던지는 사람들만 늘어날 뿐이다.
교육의 질적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약속된 언어로 정확한 개념을 전달하여 전공한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이 원활하도록 교육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